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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Oct 13. 2018

인공지능과 글쓰기

퇴사 후, 내 밥벌이를 위협하는 녀석

현재 나는 글을 쓰며 약간의 돈을 벌고 있다. 먹고 살 만큼 벌고 있고, 꾸준히 나의 글을 사람들이 찾는다. 글의 주제를 넘어 글이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할 때도 있다. 흔히들 글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지은이의 생각과 감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인공지능이 쓸 수 있을 거라고 단 몇 년 전만 해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바둑을 이긴 모습을 보고 나서 인공지능도 글쓰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 이후, 2년 뒤 세상은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 못지않게 글을 쓰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국내외를 막론하고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미 디즈니, 넷플릭스 등 세계적 콘텐츠 업체들은 AI와 시나리오의 결합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유형의 시나리오가 시청자들의 반응을 더 이끌어 내는지 데이터화해 분석을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인기를 끌었던 시나리오들을 AI에 학습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것이 무서운 게 구글도 이런 식으로 바둑의 수만 가지 수를 알파고에게 주입시켰다. 그러더니 자기 내부적으로 학습한 수들을 조합해 진화해 이세돌을 이겼다. 넷플릭스의 AI가 시청자별 맞춤형 시나리오를 양산해 제작 및 송출되는 데까지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면 저처럼 카페에 앉아 한 땀 한 땀 고민하며 글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세계적 회사들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국내 유수의 IT기업들도 인공지능과 글쓰기가 결합되는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KT가 올 초, 인공지능으로 쓴 소설을 공모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저 역시도 인공지능이 만들어 갈 미래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 그 기술이 농익지 않았다.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 있는 신문 기사, 그 중에서도 주식 시장의 시황 분석과 같은 글은 이제 인공지능이 실제로 쓰고 발행 중이다. 지금이야 어색하지만, 곧 그들의 글이 인간의 글을 뛰어넘을 것임은 시간 문제다. 학부생 시절, 영어강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구글 번역을 이용했지만 직역 위주의 결과물로 전혀 쓸모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같이 살던 후배가 팀 프로젝트를 할 때, 옆에서 구글 번역을 쓰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번역이 되어 깜짝 놀랐다. 정확한 통역을 해 주는 네이버의 파파고 덕분에 해외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 없이도 어렵지 않게 주변을 돌아다녔다. 바로 신경기계번역 기술이 통/번역의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사람처럼 문장을 인식해 번역하는 이 기술이 자연스러운 통/번역을 만든 것처럼 글쓰기 역시 그렇지 못할 거라는 보장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


인공지능과 글을 이어주는 다리는 빅데이터이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쓰는 글이 좋은 퀄리티를 보장할 지는 모르겠다. 빅데이터가 별 게 아니다. 사람들이 썼던 글을 데이터 저장소에 모아 두면 그게 곧 빅데이터가 된다. 내가 주로 쓰는 글인 자기소개서를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자소설닷컴을 운영하는 앵커리어 역시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 플랫폼이면서 그 데이터들을 분석, 활용해 취준생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자기소개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려고 노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시나리오가 작가의 생각과 시청자들의 취향 사이에서 교점을 찾아야 한다면 자기소개서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와 나라는 사람 사이에서 교점을 찾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취업 시장은 현재 기형적 구조이고, 웬만한 취업 준비생들은 자신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 회사 한 군데라도 더 쓰는 것에 의의를 부여하는 형국이다. 게다가 시중에 돌고 있는 가이드나 책 등이 일부 합격생들의 자기소개서 샘플 몇 개를 가지고 이것이 정답인 양 알리고 있고, 취준생들도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추세다. (정답이라고 인식되고 있는)샘플 속 메시지와 지원자들 생각이 충돌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텐데 지금의 친구들이라면 자기 목소리를 죽이고 기업에 맞추기 급급해 한다. 물론 회사 측에서 그 자료들을 어떻게 매만지느냐에 따라 향방은 달라지겠지만 자소설닷컴의 빅데이터 분석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그 곳을 이용하는 유저들의 글쓰기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 더, 인공지능은 무언가를 학습할 때 인간들처럼 학습량의 편차가 없다. 나만 해도 아무리 글 쓰기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매 순간 같은 집중력으로 글을 만들지 못한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몸이 아플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분명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내 재능이라고 설파하는 '글 빨리 쓰기'는 현재 자기소개서에만 국한되어 있다. 내가 쓰고 있는 '인공지능과 글쓰기'란 주제도 지금껏 다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한 자 한 자 쓰는 게 매우 힘들다. 이런 인공지능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뭐, 사실 같은 인간인 나에게도 자기소개서를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만 봐도 가히 짐작 가능하다. 편리함은 필연적으로 게으름과 이어진다. 인공지능 때문에 인간들은 사고하는 일마저 귀찮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직까지 나는 글 쓰는 게 좋고,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수고로움이 좋다. 글쓰기 외 다른 영역에는 나 역시 AI에 의지할 확률이 크지만,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AI의 손을 빌리지 않겠다.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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