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글쓰기가 자소서로만 국한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던 찰나, 발견해서 한창 열정을 바치고 있는 동화스터디 두 번째 세션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순수하게 동화에 대한 생각, 새로운 글쓰기 영역을 개척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거였는데, 알고 보니 스터디를 이끄시는 두 분이 짱 유명한 분들이더라구요 ㄷㄷ 사실 내색은 잘 안 하지만,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시간에 앨리스로 오셨던 분이 또 스터디를 찾으셨습니다. 뭔가 이런 늪 같은 매력을 가진 스터디에 속해 있다는 게 뿌듯하기도 했구요.
저 날의 주제는 '사랑과 욕망', 놀랍게도 1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이 얘기인즉슨, 두 번째 시간이 있다는 거죠? 이 스터디는 리더님께서 주제를 하나 정하시고, 그 주제와 이어질 만한 동화를 가져오시거든요. 덕분에 저도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동화 스토리를 귓가에 적실 수 있었습니다. 리더님께서 가져오신 건 두 편, '엄지공주'랑 '미녀와 야수'였습니다.
엄지공주에서는 남과 여의 묘사가 너무 극단적으로 되어 있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자는 약하고, 남자는 여자를 탐하려고 하는 어리석고 못난 존재들로 그려져 있었어요.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감히! 이런 생각을 했다가 아 이거 몇백 년 전 작품이지 라는 생각에 분노를 접었더랬죠. 게다가 작가인 안데르센이 애석하게도 추남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자기 못 생겨서 여자한테 까이는 걸 책 속에서 그렇게 풀다니, 좀 너무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긴, 안데르센도 자기의 책이 이렇게 대대손손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겠죠? 뭐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지 절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음으로 소개해 주신 작품은 미녀와 야수였습니다. 저는 워낙 천성이 게으르고, 글만 쓰는지라 보지는 않았는데, 그 곳의 많은 스터디원 분들이 실사화된 미녀와 야수(엠마 왓슨이 주연으로 나온, 디즈니 작품)를 보셨더라구요. 엠마왓슨이 스크린 바깥에서도 워낙 진취적이고 주도적인 행보를 이어오는 만큼 그 영화에도 그런 냄새가 잔뜩 배어 있었나 봅니다. 원래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만화, 미녀와 야수에 비해 벨이 삶을 끌어가는 게 영화의 골자라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이 이야기에도 결국 벨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유약한 존재라는 게 전제로 깔려 있었습니다. 슬펐습니다.
이렇게 두 편을 보고 나서 리더님께서 제시한 타이틀은 '사랑과 운명'이었습니다. 뭐랄까? 내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굴레 같은 걸 생각해 보게끔 유도하시길래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런데 이 비슷한 주제를 갖고, 얼마 전에도 여자친구와 얘기를 나눠봤고, 친한 동생의 고민(역시, 사랑 고민이겠죠?)을 들어주다가 이 주제로 귀결됐었거든요. 아래는 제가 당시 스터디에서 써 내려간 의식의 흐름입니다.
내 지난 연애를 돌이켜 봤다. 나는 왠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내 손을 거치면 뭐라도 나아질 것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게 됐던 것 같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들은 멋지지만, 마음이 가지 않았다. 바깥에 보이는 나는 더없이 강하지만, 사실 내면은 그리 강하지 못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유약한 이들과의 연애(혹은 사랑의 시작)는 끝이 안 좋았다. 진짜 어렸을 때는 좀만 바람이 불어도 뿌리가 흔들거리는 이에 마음을 빼앗겨 왔다. 나이가 좀 들고 나니까 이런 사랑이 날 갉아먹는 짓이란 걸 깨닫고 두 가지 솔루션을 생각했다. 아직까지 이 솔루션들은 나에게 성공적으로 먹혔던 것 같다.
#1. 유약한 특성을 가진 이를 외면하는 건, 내 본성상 어렵다. 하지만, 그런 이들 중에서 자기 마음 한켠을 또 다른 이에게 기꺼이 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쳐다보면 자신이 보인다. 서로를 보며 자신의 부족한 점, 간과했던 점을 깨닫고 보완한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의 모진 풍파에 맞설 힘이 생긴다.
#2. 나에게 집중을 더 한다. 작년 이맘때, 나를 상담해 줬던 동생이 이번에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도 연애하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싶다는 연민이 그 연애를 시작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웃기는 건, 그 친구도 대입 수시 쪽에서 돈을 번다. 즉, 나처럼 교육 일을 하는 거다. 내가 딱 작년에 그 친구에게 한 말을 그대로 해 줬다. "야, 그거 메시아 증후군이네." 수화기 너머로 서로 키득거린다. 연애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한 마디 있다. 우리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연애를 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채워줘야 하는데, 이 연애가 자신의 행복을 갉아먹는다면 놔야 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행복을 남(연애하는 상대)에게 찾지 않는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여러 각도로 고민하다가 내 일로 인정받아 나의 자존감을 채우기로 했다. 운이 좋게도 사람들이 현재 하는 '나의 일'을 인정해 주고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발전한다. 게다가 여러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고, 그들과 대화를 한다. 그 대화를 하는 순간순간이 즐겁다. 꼭 그들이 돈을 주지 않고 상담만 해도 괜찮다. 그런데 운 좋게도 많은 이들이 나에게 돈까지 지불한다. 그러다 보니 삶에 대한 만족감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다.
흔들리는 상대와 연애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이 연애로 인해 나까지 스트레스받고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다. 나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