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와 사랑해의 차이

본격 금사빠 변호글

by 하리하리

어떤 문장도 삶의 진실을 완전히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어떤 사람도 상대방을 완전히 정확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中


어떤 단어나 문장이 내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나에게 있어 '사랑해'란 단어/문장이 아마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사랑해란 단어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자주 쓴다(사실 내가 약간 그렇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해란 단어가 매우 조심스럽다. 가슴이 벅찬 순간, 탄식처럼 내뱉는 말이

사랑해

다. 그만큼 소중하고 거룩한 말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사랑해를 자주 입에 올리는 친구에게 사랑이 가벼운 의미일까?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나는 금사빠에 대해 약간 쉴드 아닌 쉴드를 쳐 주려고 한다(이는 자기 변호일 수도 있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자기를 던지는 일이고, 그 사랑이 결실을 맺을 거라는 걸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전체 삶 속에서 숱한 사랑에 나를 던져 왔다. 이제 나이가 들면, 그 전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고 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게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운이 좋은 건지, 미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동나이대에 비해서는 금사빠다.


그렇지만, 여전히 금사빠일 수 있는 건, 내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를 오랫동안 봐 왔던 친구가 말해줬다. 네가 이전에 비해 달라진 건, 너를 챙기면서 다른 이를 사랑하는 거라고. 그렇기에 이전과 똑같은 금사빠이지만, 좀 더 단단해졌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약간 뿌듯했다.


그렇지만, 사랑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해의 정의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보니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위에서 작가님께서는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건 고통이라고 했지만, 그 고통도 꽤나 감내할 만한다.

물론 내가 나 자신을 누구보다 확고하게 사랑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이 사랑인지를 완벽히 간파하기 쉽지 않지만, 그 마음이 사랑이라고 상상하는 것, 이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그 상상이 맞아 떨어질 때의 쾌감은 더욱 크다. 어차피 인생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데, 그럴 바에는 조금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겠는가?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고, 상대의 기준에 나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노력을 상대방도 알아봐 주고, 그 역시 나에게 맞춰 주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3의 지점에서 하나가 된다.


만일 상대가 이런 나의 진심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과감히 선을 그어도 좋다. 그 사람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금사빠는 조금씩 나이를 먹고, 세상 풍파를 겪으면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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