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우리가 되길
안녕하세요? 하리하리입니다.
오늘은 그저께 다녀 온 3회차 동화 스터디의 후기를 정리한 글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주제는 욕망이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말로 다하지는 못하지만, 욕망이 서려 있습니다. 사실 욕망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생산적으로 살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욕망도 꺼낼 수 있는 욕망, 꺼내면 안 되는 욕망이 있습니다. 어제 스터디에서 다뤘던 작품 두 개는 백설공주와 빨간 모자였습니다. (리더님께서 그림을 보여주시면서 무슨 작품인지 물었을 때, 빨간망토 차차가 떠오른 거 보면 저는 아직 문학 감수성이 많이 모자란 듯 합니다...)
백설공주는 그닥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아 리뷰를 생략하겠습니다(제 개인 생각을 말하는 브런치니까 그래도 되겠죠?). 두 번째 작품이었던 빨간모자를 중심으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빨간모자에서 인상깊게 봤던 상징, 그리고 그 상징과 관련해서 어제 sns 상에 조금은 회자가 됐던 얘기가 있거든요.
건드려서는 안 될 욕망
빨간 망토?모자?를 쓴 소녀, 주인공을 보고 접근하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으니 늑대였습니다. 물론 늑대 녀석, 잠깐 할머니와 소녀를 모두 잡아먹는 기쁨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 기쁨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우물에 빠지는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리더님께서 저희에게 빨간색의 여러 상징 중 하나로 말씀하신 게 금기였습니다. 그리고 요새 버전으로 이 금기라는 단어에 맞아 떨어지는 상징물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교복.
교복은 10대, 아직 미성년인 이들이 입는 유니폼입니다. 교복을 입은 이들을 우리는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건 사회적 약속인 거죠. 그런데 지금 제가 바로 아래 드릴 캡쳐 화면처럼 아직 이런 미성숙한 생각을 갖고 있는 어른들이 참 많습니다. 답답합니다.
사실 이 사진을 올리기 위해 이걸 다시 보는데도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없더군요. 저걸 쳐 보는 대다수 얼굴 없는 분들(특정 성을 지칭하지는 않겠습니다.)의 의중이 정말 궁금합니다. 이런 걸 쳐서 검색해서 보는 게 금지된, 아니죠 봐서는 안 될 욕망에 도전하는 격이란 걸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인생사라는 게 보통 우리가 예상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허다하죠. 쇠고랑 찬다는 뜻입니다. 그런 걸 알면서도 이걸 검색한다는 건 얼마나 우리들이 욕망에 굴복하는 나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주아주 넓게 봐서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검색이란 행동을 하는 건 자제하셔야 돼요. 이런 흔적들이 다 본인에게 부메랑이 됩니다. 우리 좀 더 합리적이고 식견을 갖춘 사회인이 됩시다. 이 글을 빌어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작품, 작품 속 상징을 공부한 뒤, 리더님께서 제시하신 화두는 '욕망'이었습니다. 나의 욕망. 지금부터 쓰는 글은 제 욕망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1. 사람에 대한 욕망
기대라는 표현이 좋겠다. 이제 나는 사람에 기대하지 않는다. 욕망, 기대 이런 표현 모두 굉장히 이기적으로 생각된다. 사실 내가 뭔가를 누군가와 하는 것도 이런 저런 말로 포장해 보지만, 결국 나를 위한 경우가 많다. 대개의 팀워크도 보면 각자의 이기심이 보기 좋게 맞물려져 만들어진 이상적 결과물의 일종이다. 당연하게도 팀으로 활동하다 보면 그 사람들은 절대 내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내 의도대로 따라주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보는 게 맞다. 진짜로 감사해 해야 한다). 그럼 난 누군가에게 기대하는가(욕망을 느끼는가)? 나 자신이다.
지금까지 쉽게 규정짓기 어려운 나의 일을 2~3년간 지속하고, 이미 깃발을 꽂고 있었던 경쟁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으며 얻은 결론이다(살아남았다는 건, 이 일을 통해 내 생계를 이어올 수 있었고, 밝은 미래를 봤단 것의 반증이기도 하겠지? 이 역시 감사할 일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나는 다른 사람을 믿기 전에 나부터 확실히 믿겠다는 미신이 자리잡게 되었다. 간혹 나도 혼자 하는 일이 어렵고, 외롭다. 오죽하면 요즘에 현대사회의 젊은이들 사이에 외로움이 사회적 질병이라고 하는가?
그러다 보니 나도 누군가랑 같이 내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왜냐고? 그 누군가가 나와 판박이(고객들이 돈을 지불하고 받고 싶은 콘텐츠, 기대했던 콘텐츠는 그간 내가 브런치/블로그/유튜브를 통해 펼쳐 보였던 콘텐츠다. 그런데 이 콘텐츠를 만드는 데 특별한 왕도가 있는 게 절대 아니다. 나 역시도 몇 년간의 훈련을 통해 세밀하게 가다듬어진 결정체이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사람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내 눈높이와 딱 맞는 사람 찾겠다고 시간을 허비할 바에는 내가 혼자서 브런치에 자기소개서 예시나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연재하는 게 효율적이란 생각을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런 사람을 찾아서 함께 하는 게 이득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그럴 자신/여유/용기가 (아직까지는) 없다.
#2. 일(커리어)에 대한 욕망
사실상의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비즈니스(나의 일)란 뭔가 생각해 봤다. 시간을 물샐틈 없이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욕망(이번에 나의 욕망은 원칙으로 치환해 보겠다)이 있다.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유일하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건 시간이다(물론, 다른 게 있을 수도 있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른다면, 댓글 좀 부탁한다). 24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24시간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리던 뭔가를 얻을 지도 모른다.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매출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4년여 간의 꾸준함(본격적 꾸준함을 발산한 건 작년 초부터)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내 일의 흐름/주기를 잘 알게 되었다. 내성도 생겼다(물론 여전히 조금씩 불안하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을 한다. 내 일에 대한 욕마잉라고 소제목을 달았지만, 감사하게도 내 일은 잘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으로 굴러간다기보다 내가 꾸준히 축적해 온(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오고 있는)노동이 내 일을 굴러가게 만들고 있다. 나는 이 일이 동력을 잃지 않도록 1일 1글이란 기름칠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 사업을 끌고 가는 건 한계가 있다. AOMG처럼 자기가 벌 돈, 알아서 벌고 느슨한 연대를 만들고 싶다. 욕심이려나? 이런 생각도 드는 게 내 성에 차는 글쟁이가 없다. 이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이해하면서 수요자의 입맛을 만족시킬 크리에이터의 존재를 찾고 있지만, 성에 안 찬다. 머리도 아프니 글이나 더 써야겠다.
비유와 상징에 대해 다각도로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 뇌를 찌르는 상징이란 자극이 저에게 글을 쓰는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줬습니다. 사실 다음 주에도 가고 싶었는데, 일정상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스터디를 기점으로 비유와 상징을 찾는 저만의 여행을 떠나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은 겁이 나지만, 비유와 상징이란 수단에 몸을 의탁해 새로운 글에 도전하는 저로 거듭나 보려고 합니다. 이 스터디에 불러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