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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리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언컨대,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좋습니다.

by 하리하리


안녕하세요?

하리하리입니다.


위에 기사를 보고, 제가 묵히고 묵혔던 글을 써야 할 때가 도래한 것 같아서

이렇게 키보드 앞에 앉았습니다.

한게임과 카카오를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스타트업의 대부가 된 김범수 의장이 직접 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제 업의 시대라고, 직업으로, 특히 직업 하나가 평생 자기를 지켜주는 시대는 끝났다고.


저 역시 LG 계열사였던 서브원을 2년 반 가량 다니다가 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한 마디로 정의가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범수 의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가 정의가 어려운 건 직업이지 업이 아닌 거죠.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용기가 샘솟았습니다.


네,

저는 자기소개서나 면접대본을 써 주는 사람입니다. 소위 말해 대필입니다.

보수적 관점에서 보면, 제 직업은 취업 컨설턴트입니다.

그런데 취업 컨설턴트라 하기엔 좀 애매한 일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초반에는 어떻게 해야 기성세대의 눈으로 봤을 때, 납득 갈 일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필 대신 리모델링이란 단어를 써 보기도 하고,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제는 별로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일단 저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계속 있습니다.

고객 분들이 계시다는 건 제 업의 가치가 있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기준으로 550건(올해는 더 늘고 있습니다)이 저에게 의뢰해서 실제 계약으로 이어졌습니다. 웃기는 건, 고객들에게 인정받은 제 스킬을 VOD 강의로 제작하려고 몇 군데에 노크를 해 봤지만, 실제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몇 번의 계약 불발을 겪으면서 그냥 지금처럼 가장 일선에서 만나는 최종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이를 통해 윈윈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제 업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을까요?

원래 저는 정신과 의사를 잠시간 꿈꿨을 정도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공감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물리를 못하는 치명적 한계를 극복 못하고, 문과를 택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수능 공부를 해서 어렵게 대학에 갔고, 한 학기만 마친 채 급하게 군대를 갔습니다.


제대 후, 이런 제가 세상 속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장이 마련되었던 거였죠. 바로 sns 세상이 그것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열심히 소위 말하는 '똥글'을 썼습니다. 글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만족감을 느낀 거죠. 사실 이건 저도 몰랐던 건데, 현재 페이스북에 다니는 제 후배가 "오빠는 오래 전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고 하면서 이 말을 해 줬습니다. 그래서 국문과를 이중전공했는지도 모릅니다.


앞에서 제가 수능을 오래 봤다고 했죠? 네. 제가 수능을 4번이나 보면서 대한민국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환경상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죠. 대학 재학 중에 교육 멘토링 비즈니스로 도전장을 던졌지만, 변변한 비즈니스 모델도 찾지 못한 채 후배에게 넘겨주고 급하게 회사에 들어갑니다. 자, 여기서부터가 시작입니다.


제 취업 준비과정을 일부 카페(스펙업, 독취사 등)에 올려 놨습니다.

그걸 보고, 한 친구가 연락이 옵니다. LG생활건강 영업관리에 가고 싶다고요(당시, 저는 LG 계열사 세 개에 붙어서 그게 그 친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물론, 이 친구가 가고 싶어했던 이 곳도 서류와 인적성을 다 합격했었습니다). 만났고, 당시 엘지 뽕에 취해 있던 저는 이게 이렇게까지 크게 저를 지탱해 줄 거라는 생각은 1도 안 한 채 과외 형태로 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친구는 녹십자를 갔습니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자소서와 면접대본을 봐 주는 것이 제 적성에도 맞고, 그 사람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는 제 흥미와도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지요. 회사를 다니면서 했으니까 햇수로 5년은 족히 넘어갑니다.


이게 5년을 자소서, 면접대본만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 안에서 고도화가 됐습니다. 자정작용이라고 하죠? 제 콘텐츠를 계속 연마하게 만들더라구요. 제2의 분기점을 만납니다. 그건 바로 아프리카TV MCN자회사였던 프릭 김영종 대표님과의 조우입니다.


저도 몰랐었는데, 페이스북 친구셨더라구요.

그 분께서 지금은 다른 회사를 설립하셨지만, 그 때는 아프리카TV 소속으로서 다양한 파트너사들과 협업을 맺고 계셨습니다. 그 중 하나가 캠퍼스잡앤조이(한국경제신문의 자회사로서 대학생들의 취업준비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신문)였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불현듯 제가 아프리카TV에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송을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잘 쓰지만, 당시에도 500자를 10분 내에 뽀개는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갖고 있었거든요. 이 방송을 배포해서 저를 마케팅한다면, 매력적일 거라고 본 겁니다. 이 내용을 정리해 대표님께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더니 바로 만나자고 답을 하셨고, 저는 그렇게 아프리카TV에서의 BJ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드문드문 아프리카TV에 올린 방송을 유튜브에도 업로드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TV 산하 프릭과 계약을 맺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유튜브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에 제 자소서 방송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저에게 신의 한수가 됩니다.


그 때, 느낀 거죠? 방송을 통해 쓴 글을 정리해서 브런치와 블로그, 포스트에 올리면 효율적으로 콘텐츠를 쌓아 나갈 수 있겠구나 라는 사실을요. 이게 저를 마케팅해 주면서 추가적 매출을 올리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패턴이 어느 정도 자리잡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안주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껏 이 일(자소서, 면접 대본 크리에이터)을 하면서 매 시즌마다 조금씩 변화를 줘 왔습니다. 그 변화 덕분에 이 일을 지루해 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맨 위의 기사를 보고, 필이 꽂혀서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많은 분들이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욕구도 많고, 그러지 못한 현실에 자괴감도 느낀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어줍짢은 삶의 궤적을 따라오신 분들께 정리를 한 번 해 드리자면,


첫째,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세요.

결국,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장기적으로 하다 보면 그게 빛을 발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을 사람들이 '잘 한다'고 치켜세워 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하는 것에 대한 정의가 좀 더 분명히 필요해 보입니다.


<잘 하는 일이란>

1. 그 결과물에 사람들이 돈을 내야 합니다.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니까요.

2. 그 결과물에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사람 모이는 곳에서 돈이 나옵니다.

3. 기존 유사품 대비 한 가지라도 확실한 차별화를 모색해 보세요. 현 사회에서는 깃발 안 꽂힌 구역이 없습니다. 기존에 터 잡고 있는 이들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몇 년 간의 커리어를 돌이켜 보니, 바로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 하나 더! 좋아하는 일이 잘 하는 일이 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즉, 바로 그게 돈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렇기에 회사에 몸담는 게 의미가 있습니다.


단, 들어간 회사에서 인정받고, 거기서 재미를 느낀다면, 굳이 울타리 밖에 나와서 고생하지 마세요. 삶의 모든 순간은 본인의 선택이고, 그 결과는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을 즐기고, 그 선택이 여러분들을 행복한 곳으로 이끌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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