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당신에게 의도치 않은 순간, 갑작스레 찾아온다.
너무 인터뷰가 인상적이라서 가져왔다.
나 역시 관찰, 쓰기 등을 물과 공기처럼 느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물론 쓰기의 영역이나 그 결과물의 대상은 지극히 한정적이지만 말이다.
장기하 님은 인터뷰에서 단념을 말한다. 인터뷰를 꼼꼼히 읽고 나서 최근에 내가 단념한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단념의 반대말이 뭘까? 집착이다.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순간, 확실히 편안해진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고 갈망하는데, 그걸 반드시 손에 쥐고 싶어 한다. 그걸 얻지 못하기에 괴로워한다. 근 반 년 간의 내가 그랬다. 하지만, 세상사라는 게 어찌 내 맘대로 되겠는가? 세상은 나 혼자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얻고 싶은 무언가를 손에 쥐려면, 필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성이 나고, 서운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서운해 한다고 해서 그 상대는 나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열쇠를 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원해야 주는 것 아니겠는가? 그걸 알면서도 항상 놓친다. 그렇기에 나 역시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한다.
장기하 님이 잃었다는 '기괴한 즐거움'. 나는 역설적으로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얻게 되었다. 기대했던 뭔가를 정확하게 얻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느낌이 서서히 내 안에 스며든다. 내가 얻고 싶어 하던 것에 비해 그 크기가 작더라도 선선히 그로 인한 기쁨을 즐길 줄 알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어느 날, 그 모습에 기괴한 현타를 느낀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아 한다. 이미 나는 철저하게 낮아진 눈높이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혹시나?' 하는 기대가 깔리게 된다. 소소하면서 기괴한 즐거움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원하는 목표치가 완성되어 있을 지도 모를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하지만, 확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냥 나는 눈앞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로 인해 얻어지는 크고 작은 결과물, 그것에만 기쁨을 누리면 되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는 또 다른 단념을 해 본 적이 있다. 바로 약점을 굳이 극복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났다. 이것 역시 일종의 단념이다. 이전 회사는 B2B 구매 아웃소싱 회사였다. 그 곳에서는 매달 마감 정산을 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나의 도전적인 성향이나 과감한 도전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물론,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다 보면 이런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있었겠지만, 그 기회를 받기란 요원해 보였다). 그 당시, 감사하게도 나는 나의 맞지 않는 옷과는 상반된(진짜 나를 담는) 옷을 제단해 왔다. 그게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자소서/글 쓰는 일이었다. 이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조직에서 나에게 가하는 (꼼꼼해지라는)압박에 의무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보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퇴사를 한 후, 내가 진짜 입고 싶은 옷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면서 이전 회사에서 거두던 수익의 배를 매출로 올리게 되었다. 사실 이보다 더 행복한 건, 꼼꼼함을 몸에 갖추기 위해 후천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뭐든지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스트레스가 더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원하는 걸 얻지 못했는가? 뭐 언젠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만 아닐 뿐이다. 단념하자.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용을 쓰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변화가 필요한 당신의 현재 위치가 당신에게 맞지 않는 옷일 수 있다. 단념하고, 새 옷을 입어보자. 그 옷을 발견해 그걸 입는 순간, 새로운 행복이 펼쳐질 거다. 현재에 단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