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경험을 탈탈 털어먹는 방법
자소서의 마지막 특성으로 무엇을 쓸지 고민에 잠겼다. 연속성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일관성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나 역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뭔가 -성(姓)으로 끝내야 라임도 맞고 그것이 진짜 특성 같은 착각이랄까? 그래서 마지막 특성에는 굳이 -성이란 말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앞에 두 가지 못지않게 중요한 담론을 던져 보고자 한다. 내가 선택한 자소서의 마지막 요소는 경험이다. 이전에 이미 경험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취업 준비생들이 흔히 경험을 쓸 때, 내가 제시하는 것처럼 경험을 분석해서 접근하는지 점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학생들이 하는 경험의 대부분은 크게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선배들의 포트폴리오 참고 > 더 나은 결과 창출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의 도전 > 중간 결과 > 최종 달성” 이다. 내가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자기 소개서를 써 온 결과물을 보면 대개 경험을 나열식으로만 써 놓는다. 그리 써 놓은 뒤, 이 경험 덕분에 이런 의미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약간 우기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그 경험을 통해 여러분들이 그런 의미(예: 창의성, 소통 능력, 열정 등)를 얻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에도 말했지만 인사 담당자들은 수천 장의 자기 소개서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여러분들의 글 한 편을 심도 있게 읽어 줄 정도의 시간이 없다. 내 눈 앞에 있는 글만 보고도 이 친구가 왜 이런 행동을 했고, 이 행동이 이런 의미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직관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게 2주 전에 말한 “가독성”의 다른 의미이기도 하고.
1단계부터 얘기해 보겠다. 당신들의 모든 활동(교내 활동이든 교외 활동이든) 이전에 선배들이 똑같은 프로젝트를 했던 경우가 많다. 아르바이트라면 당신이 일하던 그 자리에서 누군가 일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 곳에서 운영되던 나름대로의 매뉴얼이 있었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으로부터 지시받는 과제는 말할 나위 없다. 선배들이 같은 주제로 했던 결과물들이 있고, 우리는 대개 그것들을 레퍼런스 삼아 과제를 한다. 내가 여기서 잡아내는 포인트는 바로 “도전”이다. 같은 방식으로 일하거나 활동한다면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가 있다. 그런 결과가 물론 최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민하고 이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결과 여하에 상관없이 내가 도전했다고 말할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예를 들면 공대생의 경우에는 실험을 주로 한다. 전제에 얼마나 근접하게 다가가는지가 실험의 주된 포인트 중 하나인데 그 오차율을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줄여 본다는 식의 목표 설정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둘째,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말하는 문제란 두어 가지 정도로 축약해 볼 수 있다. 우선 팀원들 간의 갈등이다. 무슨 일이든 다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사안을 두고 팀원들 간에 둘로 갈려서 의견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내가 중재자 역할을 한다면, 중간에서 둘의 의견을 모두 청취해 최적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식의 경험 표현이 가능하다. 혹은 내가 어느 한 쪽에 서 있다면, 상대를 적절한 근거를 들어 설득해 내 편으로 끌어 들인다. 한편으로는 무임승차를 하는 팀원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친구를 배제해야 한다는 다른 팀원들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를 포용해 우리 프로젝트에서 열심히 활동하게끔 유도하는 역할을 내가 해야 한다는 썰을 푼다면 배려심까지 갖춘 나의 모습을 인사 담당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렵사리 1차 시도를 통해 결과를 냈다 치더라도 우리가 처음에 예상한 결과대로 안 나올 확률이 크다. 오차의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도 다른 친구들과 내가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고, 결국 내 말이 맞았다는 식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것도 풀어 낼 만한 경험 썰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들을 거쳐 결과를 낸다면 이것이 나에게 준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경험이라도 여러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하는 만큼 그 요소 요소마다 나에게 주는 의미가 각각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모든 활동을 하면서 분명히 문제에 직면해 있어야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내가 얻은 의미가 무엇인가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의 당사자가 내가 되어야 한다. 물론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여러분이 쓰는 글은 “자기”소개서이다. 에세이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모든 현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글을 쓸 수도 있지만, 이 장르의 글은 필연적으로 나의 매력을 어필해야 이 글의 집필 의도가 살아난다. 여러분들이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이런 점들을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경험은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 시간부터는 그 주의 가장 인기 있는 기업 채용 공고를 붙잡고 심화/분석하고 나의 경험을 소재로 모범 사례를 만드는 칼럼을 써 보고자 한다. 많은 관심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