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에서의 기도

매주 같은 버스를 기다리던, 우산 속의 첫사랑

by 신현창


Chapter 2 – 정류장에서의 기도


그해 중학교 2학년, 청명한 하늘이 높았던 가을이었다. 성당 마당의 가장자리, 주일 미사가 끝난 직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던 혼잡함 속에서였다. 현수는 늘 혼자였고, 그녀는 언제나 무리 속에 섞여 빛났다. 회색빛이 도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까만 머리를 단정히 땋아 늘어뜨린 채 성당을 나서던 옆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현수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았다.


그때 현수는 사랑이 뭔지도, 감정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도 몰랐다. 다만 매주 일요일 아침, 교복 바지에 후줄근한 외투를 걸치고 무거운 눈으로 향하던 그 길에 갑자기 어떤 ‘명백한 이유’가 생겼다. 그녀를 보기 위한 미사 참석이 신앙심보다 훨씬 뜨거웠다는 사실을, 훗날에서야 그는 스스로에게 고백할 수 있었다.


매일 등굣길, 동네에선 거의 유일한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섰다. 놀랍게도 그 정류장에 그녀도 있었다. 어느새 같은 시간, 같은 버스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되었다. 현수는 늘 오른쪽 끝, 낡은 광고판이 붙어 있는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책을 펼쳐 읽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녀가 저 코너를 돌아 나타나는 순간만을 계산하고 기다렸다.


그녀는 자주 지각할 듯 아슬아슬하게 나타났다. 숨이 찬 듯 두세 걸음 빠르게 다가와 정류장 나무 의자에 앉으면, 현수는 그때마다 괜히 숨을 죽였다. 그녀가 입는 옷의 색깔, 가방에 달린 닳아버린 작은 열쇠고리, 손에 꼭 쥔 책 한 권과 캘린더 수첩——그 섬세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그의 하루의 전부이자 일주일의 예습이 되었다.


한 번은 큰 결심을 했다. 오늘만은, 기필코 말을 걸어보자고. 비가 흩뿌리던 10월의 어느 아침, 우산을 잘 챙겨 일부러 그녀가 비를 맞고 서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혹시, 우산… 같이 쓰실래요?”
입술 끝까지 올라온 그 세 마디는 정류장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묻혔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버스에 올랐고, 현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손에 쥔 우산은 끝내 펼쳐지지 않은 채 무겁게 남았다.


그날 밤, 그는 잉크가 번진 일기장에 적었다.
“그녀는 오늘도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고, 나는 오늘도 그녀를 말없이 좋아하는 벙어리 바보. 이 무성한 고백은 언제쯤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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