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TFT 프로젝트, 우연처럼 돌아온 가은의 이름
Chapter 9 – 다시 만난 이름
매년 신년이 되면 직장인들은 어김없이 기대와 두려움 사이를 오간다.
그건 새로운 기회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불안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입사 2년 차 봄, 현수의 부서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회사 내 여러 부서를 묶는 별도 조직, 이름하여 TFT. 형식상 ‘비상근 참여’였지만,
모두들 달가워하지 않았다. 기존 업무에 그대로 얹혀지는 추가 일거리였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막내인 현수에게 차례가 돌아왔다.
며칠 뒤, 첫 번째 킥오프 회의 날.
각 부서와 계열사에서 총 아홉 명이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TFT 팀장은 현수가 속한 부서의 부장이었다. 그 사실에 현수는 마음을 놓았다.
회의 전날, 인사팀에서 받은 참석자 명단을 정리하던 중 그의 손가락이 어느 한 줄에서 멈췄다.
김가은 – 사원 / 대풍기업 홍보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이름은, 그토록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대풍기업이 계열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이 프로젝트에 함께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건 단순한 우연 이상의 일이었다.
며칠 뒤, 복도 끝 자판기 옆.
그녀가 먼저 다가왔다.
“현수 씨?”
그는 놀라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가은 씨… 진짜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이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한결 차분했고, 미소는 여전히 따뜻했다.
잠깐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대화는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말이 많지 않았고, 현수는 오히려 그 침묵이 편안했다.
그날 이후,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짧은 인사를 나누었고,
가끔은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이 시간엔 이게 제일 달아요.”
그 웃음 한 번에 현수의 하루가 달라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출근 시간이 빨라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그녀가 먼저 타고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아침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TFT는 비상근 팀이었기에, 실제로 마주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계열사와의 협업은 낯설고 어려웠고, 기존 업무에 더해진 부담은 생각보다 컸다.
그래서 선배들이 회피하려 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현수에게는 이 일이 좋았다.
가은과의 전화 통화, 짧은 이메일 한 통이 하루의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몇주뒤 대면 회의를 마치고,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 퇴근 날. 가은은 사복 차림으로 회사를 나섰다.
청색 멜빵 청바지에 흰 민소매 티셔츠, 단정히 묶은 단발. 티셔츠 옆선 아래로 흰 브래지어의 실루엣이 보일 듯 말 듯 평소의 단정함과 달리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그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현수의 시선은 조용히, 깊이 머물렀다.
봄이 저물 무렵, 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회사 생활, 어때요?”
“뭐… 버텨보는 거죠.”
그녀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스쳤다.
그 순간, 오래전 장면이 되살아났다.
빗속 정류장, 하얀 코트, 그리고 그날의 눈빛.
그날 밤, 현수는 일기를 썼다.
“우연처럼 다시 만났지만, 이번엔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창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회색 건물의 창마다 불빛이 번져 있었다.
그 빛 사이로, 현수의 마음은 오래된 기억의 한 장면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다시 본다는 건,
그 이름이 내 안에서 아직도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봄이 저물고, 우리의 TF도 마지막 단계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또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