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기 전 하루

남양성모성지와 제부도 걷기

by Blue paper

남양성모성지에서의 하루

2025년 10월 17일 금요일.
아침 8시 반, 나는 남양성모성지를 향해 길을 나섰다.
지난 9월, 어머니와 함께 왔을 때 미사에 참석하지 못해 대성당 안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았다.
오늘은 그 아쉬움을 풀고자, 천천히 걸으며 그 공간을 온전히 느껴보기로 했다.

9시 반, 성지에 도착했다.


11시 미사 전이라 여유가 있었다. 문을 열고 돌아서 들어가는 데 2층으로 올라가는데 마치 천국으로 가는 계단과 같은 모습의 계단과 시야를 가득 채운 대성당의 위엄에 숨이 멎었다.

2층 대성당 오르는 계단

한 걸음 한 걸음 오를수록 공기는 차분히 가라앉고, 그 정적 속에서 커다란 십자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위치에서 보아도 예수의 시선은 내게 닿아 있었다.
그 눈빛은 꾸짖음도, 위로도 아닌, 오랜 기다림 같았다.

벽면 양쪽에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유리 성화가 있었다.
왼쪽은 ‘수태고지’와 ‘엘리사벳의 방문’, 오른쪽은 ‘최후의 만찬’.
빛이 스며들며 그 장면들이 천천히 숨을 쉬듯 흔들렸다.
유리의 투명함 사이로 동양의 얼굴들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믿음도 언어도 모두 하나로 녹아드는 듯했다.

대성장 좌측 엘리사벳방문 우측 최우의 만찬

미사를 마치고 돌아 나오려던 순간, 신부님이 내게 말을 건넸다.
“경당을 꼭 보고 가세요. 천주교 신자가 아닌 건축가도 그곳에 들어섰을 때 눈물을 흘렸답니다. 너무 감동스러워서요.”

그 말에 발길을 옮겼다.
경당은 대성당과는 달리 조용하고 낮은 숨결의 공간이었다.
빛이 천천히 벽을 타고 흐르고, 공기 속에는 한 줌의 침묵이 고요히 앉아 있었다.
화려함 대신 절제된 빛, 장식 대신 평화.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가 제안한 ‘티채플(Tea Chapel)’ 개념에서 구상되었다고 한다. 그곳은 기도보다 ‘머묾’이 먼저였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혼자여도 괜찮을 것 같은 온기가 그 안에 있었다.

경당 밖 십자가를 한참을 보고 있다

성지를 나와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푸른 하늘은 정오로 향하며 빛의 색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길가에는 들국화가 피어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하얀 꽃잎들이 작은 숨결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그 소박한 아름다움에 문득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그 꽃들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이게 신의 손길일까.”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깊었다.


12시 반, 성지를 떠나 제부도로 향했다.
오늘은 만조가 2시라 했다. 지난번 간조 때의 텅 빈 바다를 떠올리며, 이번엔 다른 얼굴을 보고 싶었다.
도착하니 바다는 가득 차 있었다.
바다와 바닷길, 하늘이 한 폭의 청푸른 빛으로 이어지고,
그 위를 지나가는 작은 병정놀이 장난감의 차들과
햇살에 반짝이는 별들이 이미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행진을 하고 있었다.

제부도 모세의 길에서 병정놀이

그 위로 해상 케이블카가 떠 있었고, 반짝이는 햇살이 그 아래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하늘과 바다가 손을 맞잡은 순간 같은 느낌이었다.

하늘과 바닫가 손을 맞잡은 마차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두 시.
배는 고팠지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고구마 수확.
허리보호대를 차고 낫과 갈고리를 들었다.
지나던 옆집 할머니가 또 훈수를 든다... 가르쳐주신 대로 순부터 정리하고 하나씩 땅을 파냈다.
두 시간쯤 지나자 흙 속에서 붉은 고구마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햇볕에 닿은 고구마의 껍질이 따뜻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순간, 흙냄새와 땀냄새가 섞인 공기가 이상하게도 평화로웠다.

작업을 마치고 밭을 둘러보니
이제는 말라버린 오이넝쿨, 그리고 덩굴 끝에 매달린 마지막 호박 하나가 있었다.
이것이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네 작고 예쁜 애호박.
“올해의 마지막 선물이구나.”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그늘에 고구마를 펴 말리다 보니, 하나가 사람의 엉덩이처럼 생겼다.
마치 인삼 같은 모양이기도 했다.
그 웃긴 모습이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조금 녹여주었다.

해가 기울어 갈 무렵, 나는 밭에서 도구를 챙기고 집으로 향했다.
허리는 뻐근했고, 손끝에는 흙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막걸리 한 잔 해야겠다.”
그 말이 입 안에서 맴돌며 웃음이 났다.


그날의 하루는 길고도 짧았다.
성모성지의 침묵, 들국화의 바람, 바다의 빛, 그리고 흙 속의 고구마까지.
모두가 하나의 기도로 이어진 듯했다.
밤이 내려앉을 무렵, 나는 깨달았다.

“신은 성당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흙과 바람, 그리고 오늘의 노동 속에도 계신다.”


올 가을은 왜 이리 비가 많이 오는지 수확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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