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드리 - 2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관람 이야기

by 신현창

어제 여의도 한강버스 나드리에 이어, 오늘은 생애 첫 유료 미술관 관람을 하게 되었다. 평소 그림에 대한 조예도 상식도 거의 없고, 작년에 아내의 성화로 무료관람을 한 번 따라갔을 때도 솔직히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번 해보자’는 마음 아닌 마음을 먹었고, 다행히 아내가 늦가을의 낙엽 떨어지는 오후를 함께해 준다 하여 길을 나섰다.


예술의전당은 출퇴근길에 늘 지나던 곳이다. 서울의 대표적 랜드마크라 너무나 익숙한 장소지만, 이렇게 사전 예매까지 해서 정식 방문을 한다니 묘하게 어색하고, 남의 옷을 입은 듯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다. 곧 도착 안내판이 보인다.

늘 스쳐 지나기만 하던 안내판인데, 오늘은 괜히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이내 주차장이 보이고,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간다.

11월 11일, 빼빼로데이라고도 가래떡데이라고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기념일을 챙기기보다 가을날 하루를 폼나게 보내는 것이 더 좋은 나이가 되었다. 오래전 직원 한 명이 이 근처에 산다며 ‘공연이나 관람이 아니더라도 산책만으로도 정말 좋은 곳이니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해 준 적이 있다. 아마 10년은 훌쩍 지난 이야기다.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길, 늦가을의 바짝 마른 가지와 붉게 물든 단풍잎이 마치 나를 초대하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도 북적이지 않아 적당히 좋았다. 특히 한 중년 아저씨가 멋지게 차려입은 바버리 코트를 휘날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가 오늘 하루의 ‘최고의 패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미술관이 눈앞에 들어왔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의 세잔(Cézanne)과 르누아르(Renoir) 작품이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감상했지만 사실 작품의 깊은 의미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싶어 그냥 돌아서려는 순간, 멀리서 도슨트의 설명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졌고, 설명을 들으며 아까 보았던 작품들을 다시 바라보니 처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또 한 겹의 재미가 생겨났다.

그림의 위대함을 다시 깨달을 수는 없었지만,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이야기, 탄생 과정 같은 ‘그림의 히스토리’가 하나의 영화 장면처럼 다가왔고,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관람을 마친 후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굿즈샵을 다시 들어갔다. 작품을 떠올리며 보니 기념품 하나하나가 아까보다 훨씬 친근하게 와닿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어느새 그 흐름에 섞여 있었다.

대부도 작업실 한 공간을 채워줄 작은 포스터 한 장을 골랐고, 아내는 자석 스티커를 하나 선택했다.

KakaoTalk_20251117_145328304.jpg Villa de Charlotte 앞에서 뜨거운 커피 한잔을

전시관 옆 식당 앞 실외 자리에 마침 빈자리가 있어서 잠시 앉았다. 포스터를 손에 들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이야기 나누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며 가벼운 평도 하며, 떠나기 아쉬운 마음을 한참 품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부도 작업실로 돌아와 포스터를 다시 펼쳐보았다. 결국 액자까지 구입해 벽 한편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그리고 또다른 세잔(Cézanne)을 만나는 다음날을 기대하며 그날을 다시 한 번 기억을 조용히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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