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드리-한강버스

나는 서울의 물결 위를 걷고 있다

by 신현창

모처럼 만의 문화생활을 했다.
하루는 한강공원에서 새로 출발한 ‘한강버스’를 타고, 또 하루는 예술의전당 미술관을 찾았다. 유료 전시를 관람한 것은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번 주는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 서울집에 이틀을 더 머물렀다. 월요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 하여 하루를 더 머물렀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문득 한강이 떠올랐다. 최근 ‘커피 팔아서 배 띄운다’는 말로 화제가 된 한강버스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유람선이 아니라, 마곡에서 잠실까지 8개의 선착장을 잇는 ‘한강버스’. 편도 127분, 요금은 3천 원. 지난 9월 정식 운행을 했다가 기술상 문제가 있어 최근 얼마 전부터 다시 운행을 재개했다고 했다.

그 대표적 정차지 중 하나가 여의도라 하여, 평소 러닝이나 라이딩으로 자주 찾던 익숙한 곳이기도 하고 예전 근무지와도 가까워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사실 얼마 전 어머니와 가족이 대구에서 올라왔을 때 한강버스를 타보려 했지만, 위치를 잘못 알아 먼발치에서 선착장만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었다. 이번에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만차’ 표시. 다행히 이 일대는 한때 내 근무 구역이었기에, 인근 순복음교회 쪽 한강주차장으로 차를 옮겼다.

바람이 거의 없고 햇살이 따스했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걷는 길, 잠시 옛 추억이 되살아났다.


한적한 공원에서 아내와 팔짱을 끼고 걷는데, 주변엔 사람도 드물었다. 마치 유럽의 한 공원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멀리 거대한 건물이 한강 위에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한강버스 선착장은 아니고 ‘서울크루즈 유람선터미널’였다. 외형은 완공된 듯했지만 실내는 아직 정돈 중이었다. 그 옆으로 드디어 ‘한강버스’ 선착장이 보였다. 기대하던 스타벅스 간판이 함께있다

KakaoTalk_20251112_115045469.jpg 한강버스 여의도 선착장

평일이라 그런지 강가를 바라보는 좋은 자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이렌오더로 주문을 하고, 미리 챙겨온 책을 꺼내 창가에 앉았다.
커피 향이 퍼지고, 창밖으로 한강이 흐르고, 우리는 오랜만에 여유라는 것을 온전히 누렸다.
예전 같으면 이런 평일 오후, 이렇게 호사스러운 시간을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후배들에게 미안해 하루 휴가조차 쉽게 내지 못하고, 내가 없으면 지구가 안 도는 줄만 알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세상이 이제는 정말 내게서 멀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 가져간 책은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라는 이유로 선택한 책이었다.
2000년대만 해도 아내가 독서가였지만 나는 일과 사람에만 매달리며 책은 집안 관상용 소품쯤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대부도로 주간 생활을 옮기고부터는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책을 한 권씩 꺼내 읽고,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날도 그렇게 두어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창밖을 보니 한강버스가 천천히 선착장을 떠나고 있었다.

KakaoTalk_20251112_115045469_02.jpg 한강 버스 실물 모습

승객은 아직 많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이 또한 서울의 명물이 될 것이라 믿는다.
마곡에서 잠실까지 3천 원으로 두 시간 넘게 한강을 따라 천천히 흐르는 물길 위를 달릴 수 있다니,
유람선보다 더 생활에 가까운 ‘가성비 있는 낭만’이 아닐까.
나는 응원 한다. 빨리 대중들에게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그날 저녁은 소박하게 마무리했다.
가성비의 하루를 이어가자는 뜻으로 동네 단골 아구찜집에서 소주 한잔 곁들이며 데이트를 했다.
기분 좋게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와,
“내일은 미술관으로 가자.”
그렇게 문화생활 이틀째의 약속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보낸 이틀,
모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서울 나드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