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helbel’s Canon에 대하여

자정이 다가오는 겨울밤의 한 페이지

by Blue paper

2025.12.1

자정이 가까워지는 이 시간, 유튜브에서 흘러나온 연속 재생 음악 중 익숙한 한 곡이 나를 붙잡았다. 수많은 영화음악과 광고음악 속에서 흔히 들을 수 있어 ‘익숙하다’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흔히"라는 표현을 하기에는 과히 유쾌하지 않다. 이곡은 나에게서 특별한 사건이나 기억이 있었던 곡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소장되어 있는, 묘한 친밀감을 가진 음악. Pachelbel’s Canon이다.


어릴 적 잠시 피아노를 배웠던 덕에, 40년 만에 전자피아노를 다시 들였을 때 가장 먼저 악보를 사서 도전하겠다고 한 곡도 바로 이 Canon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페이지에서 다음페이지로 넘기지 못한채 어느새 반 년이 지나 버렸다. 그럼에도 첫 곡으로 Canon을 고른 건, 그만큼 이 곡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곡을 떠올릴 것이다.

KakaoTalk_20251202_002508845.jpg 1991.5 구입한 LP

내가 가지고 있는 George Winston의 ‘December’ LP는 1982년 발매작이지만, 내가 직접 구입한 시기는 아마 1989년에서 1990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경제생활을 막 시작했던 무렵, 군 입대를 앞두고 소소하게 모은 돈으로 사 왔던 기억. 지금 확인해보니 내가 가진 LP는 1991년 5월 제작으로 찍혀 있다. 결국 그 시절의 나와 함께 있었던 하나의 장면이었다는 뜻이겠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추억과 청춘이 이 음반과 함께 새겨져 있다.

Canon을 들을 때면 하얗게 눈 내린 풍경 위로 한 줄의 서정적인 선율이 천천히 흐르다가, 어느 순간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는 힘을 느끼게 한다. 마치 무언가를 찾아 달려가는 듯한, 혹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전율이 온몸을 지나가는 듯한 감각. 두 줄의 선율이 절묘하게 얽혀 올라가며 만들어내는 화성은 파도가 서로 부딪히며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는 모습 같고, 폭포의 물보라처럼 웅장하게 확장된다. 고조되는 전율이 높아지다가, 연주자의 마지막 현란한 기교와 함께 단단하게 마무리되는 그 느낌까지—언제 들어도 새롭다.


밖갓 바람이 너무 거세어 불안한 마음에 잠시 순찰하고 돌아오니 영하 가까운 1.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해 겨울바람 특유의 거친 소리와 주변의 적막하다 할 만큼 고요한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그 속에서 이 한 곡이 잔잔히 흐르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마음을 꽉 채워주는 느낌이 든다.
겨울 바다와 어울리는 음악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요즘의 화려하고 복잡하고 거대한 음향장비로 만들어진 현대음악과 단 하나의 피아노 선율만으로 이 정도의 깊이를 선사하기에는 드물것이다. 오히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단아한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이 음악이 오랫동안, 그리고 후세대까지 더 사랑받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든다.


오늘처럼 자정이 가까워오는 겨울밤, 무심코 흘러들어온 Canon 한 곡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음악은 내 기억 속 한 켠에 소중히 자리한, 어쩌면 내 ‘최애곡’ 중 하나였다는 사실.
그래서 이렇게 오늘 하루의 끝을 조금 더 분위기 있게 닫기 위해, 한 줄의 글로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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