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의 중학교 수학여행 시절
제 4 장
그 시절 중학교 배정은 시험도, 추천도 필요 없었다.
주소를 기준으로 한 무작위 전산 추첨,
우리는 그것을 **‘뺑뺑이’**라 불렀다.
잘되면 운이었고,
못해도 역시 운이었다.
누구도 항의하지 않았고,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통지서에 적힌 이름과 학교를 보고
정해진 날 그 학교로 등교를 했다.
그렇게 민재와 창수는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서로를 선택한 적은 없었지만,
같은 시간표 안에 놓이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학교는 그해부터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어 첫 학기를 시작했다.
겉으로는 다들 무덤덤한 척했지만,
소년들의 속마음에는
부러움과 기대가 뒤섞인 설렘이 가득했다.
초등학교 시절,
책상 한가운데 줄을 긋고
여학생과 영토 전쟁을 벌이던 민재에게도
이는 낯설지만 기분 좋은 변화였다.
창수는 야구 특기생이라는
어쩌면 조건부 입학일수 있었겠지만,
민재는 순전히 ‘운’ 하나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민재는 그의 특유의 친화력과
열정, 뛰어난 입담과
성적 또한 늘 상위권을 유지하며,
튀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발휘하는 그런 아이였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민재에게 그날은
잊지 못할 한 친구를 만나는데
첫 여친
‘여사친’과의 인연의 시작
수학여행 마지막 밤,
학급 대항 페스티벌이 열렸다.
노래와 장기자랑이 뒤섞인
소란스러운 무대 위에서
민재는 학생주임 선생님의 지명으로
사회자가 되었다.
스스로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마이크를 잡은 민재의 진행은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웠다.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완급을 조절했고,
웃음이 터질 때는
억지로 말을 잇지 않고
기다릴 줄도 알았다.
아이들은 그런 그를
마이크, 마이크, 마이클
**'마이클'**라 부르며 환호했다.
하지만 진짜 무대는 따로 있었다.
민재와 친구 셋은 한 달 전부터
‘소방차’를 따라 하는
**‘소방수’**라는 팀을 결성해 연습해왔다.
방과 후 빈 교실과 친구의 거실을 누비며,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백댄서들의 동작을 따냈다.
민재는 춤꾼은 아니었지만,
박자 감각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무대를 즐길 줄 아는
강심장이었다.
마지막 순서,
익숙한 전주가 흐르자
환호가 터졌다.
사회자였던 민재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본 무대를 올라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이자
열기는 극에 달한다
연예인 부럽지 않은 환호 속에서
민재는 묘한 흥분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그 절정의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몸이 공중으로 ...
“퍽—”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통증이 밀려왔다.
민재는 애써 웃어 보이려 했지만,
오른쪽 팔에서 전해지는 감각은
그보다 칼로 베듯 훨씬 날카로웠다.
화려했던 무대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고,
선생님들의 급박한 통제 속에
그날의 축제는
부산하게 막을 내렸다.
팔 골절이었다.
다행히 다른 후유증은 없었지만,
민재는 한동안
무거운 깁스를 단 채 생활해야 했다.
그런데 이 불편한 깁스가
요상하게도
선한 영향력을 몰고 왔다.
친구들이 앞다투어
가방을 들어주었고,
그 따뜻한 배려 속에서
민재는 부상마저
훈장처럼 느끼며
즐거운 추억을 쌓아갔다.
그 중심에 선희가 있었다.
선희는 수학만큼은 모든 친구에게 인정받는
차분하지만 명석한 아이였다.
반면 민재는
수학에는 통 흥미가 없었지만,
영어 단어 암기와 회화에는
‘언어 천재’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재능이 있었다.
깁스 때문에
필기가 어려워진 민재 곁에서
선희는 우연히 필기노트와
지난 시험문제 풀이로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다.
선희는 복잡한 수식의 원리를 설명했고,
민재는 딱딱한 영어 문장을
이야기로 풀어주었다.
“수학은 정답이 정해져 있어서 편해.”
(선희)
“영어는 생각을 전하는 도구라서 재밌어.”
(민재)
서로의 공백을 채우는
조용한 균형 속에서
민재의 성적은
하루 하루가 달랐고
상위권을 맴돌던 숫자는
이제 전교 순위를 다투는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 무렵,
운동장 한쪽에서는
창수가 흙먼지를 마시며
고민에 잠겨 있었다.
운동과 학업,
그 멀어지는 두 갈래 길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