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운동장

by 신현창

제 5 장


지난 줄거리

흙먼지 날리던 공터에서 아이들은 축구와 야구로 유년을 보냈다. 중심에는 키 크고 재능 넘친 창수가 있었고, 가장자리에 선 민재는 언제나 친구들에 둘러싸여 웃음을 만들던 아이였다. 성장의 갈림길에서 창수는 운동장의 주인공이 되었고, 민재는 입담과 재주로 존재감을 키워갔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무대에서의 실수로 깁스, 그리고 선희와의 만남은 민재를 한 단계 어른으로 만들었다.

이번 장은 창수의 중학교 시절, 운동과 학업 사이에서 아버지와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야기다.


창수는 중학교 야구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또래보다 월등한 신체 조건과 실력 덕분에 학교는 그의 입학을 위해 적잖이 공을 들였다.

입학 후에도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맡아온 투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냈고, 학업 역시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부모의 생각은 달랐다.

대학병원에서 교수직을 겸하며 지역 병원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창수가 가업을 이어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운동은 운동일 뿐이라며, 창수에게 운동을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하라는 말이 반복되었다.

창수의 바람은 단순했다.

운동도, 공부도 둘 다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도 깨닫고 있었다.

이제는 둘을 동시에 붙잡기엔 너무 컸다는 것을.


마음은 여전히 운동장에 있었고, 성적은 조금씩 흐트러졌다.

결국 부모는 학교를 찾아와 진로 문제를 강하게 주장했고, 창수는 운동을 내려놓게 되었다.

마음이 이미 떠난 뒤의 학업은 쉽지 않았다.

운동장에도, 책상 앞에도 온전히 설 수 없는 채로 1학년과 2학년을 보냈다.

그럴 때면 그는 민재와 동네 공터에서 글러브를 끼고 공을 주고받던 시절을 떠올렸다.

잠시나마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었다.


2학년 기말고사를 한 달 앞둔 어느 일요일 저녁,

창수는 방에 있는 작은 벨을 눌렀다.

어릴 적부터 민재 집의 거실과 창수의 방으로 연결되는 둘만의 핫라인 같은 벨이었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오래된 신호장치였다.

사용한 지가 오래되어 벨 소리가 날지 의문이었으나,

“삐—, 삐—” 소리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서로 장난처럼 신호를 주고받다 집 앞에서 만난 두 사람.

“야, 그 벨소리가 지금도 쩌렁 쩌렁 난다..?”

그리고 한참 지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창수가 갑자기 말했다.

“나… 자퇴할 거야. 그리고 내일 집을 나갈 거야.”

그는 서울로 전학 간 동진이 이야기를 꺼냈다.

서울엔 외삼촌도 있고 도움받을 사람도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보내는 일종의 시위이기도 했다.

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요일 저녁 무렵 갑자기 보자더니

한다는 소리가 돌연 선언이라도 하듯 집을 나가겠다니,

뭐라고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운동을 그만두고 힘들어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까지 몰려 있는 줄은 몰랐다.

응원을 해야 할지 말려야 할지,

민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민재는 선희의 오빠를 떠올렸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동네형이었다.

친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지난여름 동생(선희)과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대학교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던 좋은 기억이 있는 형이었다.

창수 역시 그 형이라면

분명히 내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야기 중에 어느덧 옆자리엔

선희도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희는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가출’이라는 말이 낯설고 두려웠다.

그러나 창수가 내일 당장 서울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결국 연락처만 건네주고

오빠에겐 미리 알리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날 밤,

세 사람은 말없이 헤어졌다.

마음속으로만 창수를 응원하며.

다음 날 아침,

창수는 학교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발걸음은

서울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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