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이정표

by 신현창

제 6 장


서울은 어린 창수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거대하고 큰 도시였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힌 지하철 노선 사이에서
손에 쥔 것이라곤 ‘서울대 경영학과’라는 이름과
자취방 전화번호가 적힌 낡은 메모지 한 장뿐.

서울역 앞 버스 정류장.


파란색과 빨간색 버스가 수없이 지나갔지만
그가 찾는 번호는 지나질 않는다.

그렇게 약 한 시간 넘게 멍하니 서 있던 창수에게
하얀 머리띠를 한 누군가 말을 건넸다.

“너, 여기서 뭐 하니?”

첼로처럼 커다란 악기 가방을 메고 있던 어떤 누나였다.
그녀는 서툰 창수의 설명을 듣더니
간선버스와 지선버스의 차이를 차근차근 설명해 하다가,
마침 자신도 학교(서울대)로 가는 길이라며 창수를 이끌었다.


낯선 이의 호의에 몸을 맡긴 채 도착한 학교 건물 앞.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전하기 전에
그녀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좀 무심하다고 생각을 했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허기가 몰려왔다.
막막함이 다시 차오르던 그때,
등 뒤에서 친근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창수야.”

그 형이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꾹 참았던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참았다.



형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창수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근처의 작은 중국집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 곱빼기.
그것은 창수가 평생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맛이었다.


형은 물잔에 소주를 따르고는
물컵 반잔 정도를 단숨에 비웠다.

난 요정도가 딱 좋아 하면서
그리고 나직하게 입을 뗐다.

“이제, 네 차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해봐.”


사실 창수는 그것 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자신을 단번에 어떻게 찾았는지

분명 선희는 따로 오빠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형이 자신을 한 번에 찾아냈는지,
그리고 무심한 줄만 알았던 형이
내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표현은 하질

않았지만 알고 싶었다.


알고 보니 기적 같은 우연이 겹쳐 있었다.
첼로를 멘 누나가 과 사무실에 메모를 남겼고,
그 형은 교과 과정 과제장 제출로 과사무실에 있었고

그 메모는 그렇게 빛의 속도로 전달된 것이다.

그리고 운좋게도 형은 근처를 헤매던 창수의 뒷모습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창수는 그동안 가슴 속에 쌓아두었던
부모님과의 갈등, 답답한 현실,
그리고 무작정 서울까지 오게 된 이유를
전부 털어놓았다.

형은 묵묵히 들어주었다.

형은 창수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모습,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늘 칭찬받던 창수의 재능과
그러한 이야기들을 귀가달도록 듣곤 했었던
누구보다도 좋은 아이로 기억 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형이
담담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말을 이어가기엔
그리 많은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첫째, 지금 바로 부모님께 전화해라.
내가 같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걱정부터 덜어드려.

둘째, 무조건적인 도망 대신
'거래' 아니 ‘제안’을 해.

외고나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공부해 보겠다고 말씀드려봐.

네가 공부로 성과를 보이면
아버지도 네가 좋아하는 운동을
응원해 주실 거다.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증명할 시간을 버는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창수의 마음을 짓누르던 거대한 돌덩이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이제 도망칠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창수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서울의 풍경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느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실패한 도망자라 생각했지만,
버스에 앉아 있는 지금의 그는 달랐다.

이제는 단순히 도망친 하루가 아니었다.

길을 잃고 헤매다
마침내 인생의 새로운 이정표를 발견한,
가장 소중한 전환점이었고

어제의 그 길고긴 하루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차장 너머의 지나가는 거리 모습과 사람들
모두가 즐거워 보이고 좋아 보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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