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 장
창수는 전국고교야구대회의 우승과 맞바꾼 부상으로, 몇 차례의 수술과 재활을 견디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시간의 무게는 멀리 떨어진 민재에게도 조용히 전해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민재는 어느덧 고교 생활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한마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던 시간은 이제 희미해지고 있었다.
서툴던 소통은 점차 자연스러워졌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중심에 서 있다고 느낄 만큼 깊어졌다.
이제는 친구들의 진학을 두고 의견을 나눌 정도로, 그는 이 사회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몸은 레슬링으로 단단해졌고, 마음은 수없이 부딪히며 더욱 단단해졌다.
그 결과였다.
학교에서는 몇몇 대학을 추천해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고, 선택의 폭은 생각보다 넓어졌다.
한편으로 민재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체육관 메트에서 보여준 열정과 대학교의 추천이라는 것은 어쩌면 한국사회나 민재가 생각엔 좀 어리둥절 했었다.
도움을 준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나 얼마 후 문화를 이해를 하고 나니 그것은 바로 이해가 되었다.
끈질긴 체력과 정신력이면 대학의 어떠한 과정도 충실히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사회적 합의 같은 것이었다. 아쉽게 여전히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체육특기생과 학업은 여전히 분리가 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사회적 손실일 수 있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선택과 집중으로 넓어진 선택의 폭에서
결정은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민재는 처음 이 땅에 도착했을 때를 생각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소통’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축소되고 또 하나의 고통의 느낌이었다.
겉으로는 배려가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존재했다.
때로는 드러나지 않는 선, 어쩌면 노골적인 시선.
백인 중심의 문화 속에서,
이방인은 언제나 설명을 요구받는 존재였다.
누군가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재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그 민재는 해내고 있었다.
고교 시절, 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처음에는 레슬링이었다.
말 대신 몸으로 부딪히며 오해를 넘어섰다.
힘으로 버티고, 기술로 증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회’였고 ‘운’이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이 서툴고, 몸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
억울해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돈도 아니라,
지식과 언어였다.
그리고 그 끝에는 ‘법’이 있다.
민재는 스스로 정리해 보았다.
검사는 국가를 대신해 범죄를 기소한다.
판사는 그 사이에서 법과 사실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그렇다면 변호사는 무엇인가.
누군가의 편에 서서,
그 부족한 사람의 이야기를 대신 말해주는 존재.
그는 그 역할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싸우되, 주먹이 아니라 언어로 싸우고
힘이 아니라 논리로 균형을 맞추는 그런 사람.
민재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변호사. **미국의 변호사**
학교 선택은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California State University, Long Beach와
Loyola Marymount University.
하나는 안정적인 사립대학으로,
교수와의 밀착된 교육과 탄탄한 법조 네트워크가 강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주립대학교로,
다양한 인종과 환경 속에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민재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부딪히며 넓혀가는 길.
그는 결국 Loyola Marymount University를 선택했다.
추천서를 바탕으로 큰 무리 없이 합격 통보를 받았고,
Loyola Marymount University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가톨릭계 사립대학으로, 인문·사회 분야와 법학 진학 준비 과정이 강점이다. 소규모 교육 환경 속에서 교수와의 긴밀한 교류가 가능하며, LA 법조계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로스쿨 진학에 유리한 기반의 장점이 있는 학교이다.
그는 담담하게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입학을 앞둔 어느 날,
민재는 캠퍼스를 미리 찾았다.
넓은 강의동, 분주한 학생들,
다양한 언어와 표정들.
그 속에서 그는 낯설지 않은 자신을 느꼈다.
‘이제 시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Some students just get in… you know, for diversity.”
(어떤 학생들은 그냥 들어온 거야... 알잖아, '다양성' 때문에. - 결국은 실력보다는 단순히 ‘다양성 배당’이나 ‘구색 맞추기’로 학교에 온 것이라는 것)
짧은 말이었다.
누군가를 특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향한 말임은 분명했다.
민재는 잠시 멈춰 섰다.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말이 여전히 사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예전 같았으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시작되고 있었고 언어와 논리로 상대를 해야 한다
캘리포니아의 햇빛은 여전히 눈부셨다.
그리고 그 빛 아래에서,
민재의 또 다른 다툼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