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다시 타오르는 대회

시대의 봉황대기고교야구 대회

by 신현창

제12장

8월의 결전이 돌아왔다.
숨이 막힐 듯한 열기와 함께 봉황대기가 시작된다.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1971년 창설된 전국 규모의 고교야구대회다. 지역 예선 없이 전국 고교 팀이 폭넓게 참가할 수 있는 ‘열린 대회’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와 함께 고교야구 4대 대회로 꼽히며, 이변과 반전이 끊이지 않는 무대로 유명하다.

특히 1980년대 고교야구 전성기에는 숨은 유망주가 등장하고 3학년 선수들이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던 드라마의 무대였다.

72개 학교.
전국의 강호들이 모두 모였다. 4강에 들기 위해서는 최소 4연승. 단 한 번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여름이었다.

창수의 학교는 투수층이 탄탄했다. 창수는 1선발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 무서운 카드였다.

3학년 중심의 조직력은 완성 단계.
1학년 유격수는 이미 서울 주요 대학에서 연락이 올 만큼 이름이 알려진 ‘괴물’이었다.

올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공기. 그 압박이 선수단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다섯 개의 색

대회를 앞둔 팀에는 결이 다른 다섯 명의 축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는 단순한 전력이 아니라, 팀의 색을 규정하는 방향이었다.

창수 ― 설계하는 이도류(二刀流)

정통 오버핸드 투수.
185센티의 큰 키에서 내려꽂히는 130킬로 전후의 직구.

압도적인 강속구는 아니었다.
대신 코너워크와 타자의 심리를 읽는 눈.

그는 이도류(二刀流),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선수였다.
좌우 타석을 모두 소화하는 스위치 히터.
장타를 양산하는 유형은 아니지만, 공을 결대로 밀어치고 당겨치는 정교함이 있었다.

마운드에서는 타자의 조급함을 설계했고,
타석에서는 투수의 습관을 파고들었다.

장타력의 폭발력은 부족했고,
컨디션 기복이라는 약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기를 읽고, 짜고, 완성하는
‘설계자’였다.


현욱 ― 낙차로 승부하는 언더핸드

188센티의 장신.
언더핸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130킬로에 육박하는 직구.

낙차가 컸다.
고교 무대에서 보기 드문 궤적.

타자들은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다.

타격 능력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전문 투수’라는 선명한 정체성이 있었다.

흐름을 끊어야 할 때,
현욱의 공은 경기의 온도를 낮추는 냉수와 같았다.


병창 ― 1루를 묶는 좌완

2학년 좌완.
완성형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무기가 있었다.

역모션 견제.
1루 주자를 묶어두는 능력은 팀 내 최고였다.

왼손 투수 특유의 각도,
타이밍을 빼앗는 교묘한 동작.

병창이 마운드에 서면
상대의 작전 야구는 자연히 위축되었다.


진성 ― 중심을 잡는 주장 포수

두터운 체격.
묵직한 목소리.
학년을 아우르는 통솔력.

타율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그의 방망이는 침묵하지 않았다.
중요한 고비마다 터지는 홈런.

투수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다가가 등을 두드리는 사람.

그의 미트는
단순한 포구 장비가 아니라
팀의 심장을 지키는 방패였다.


윤호 ― 괴물이라 불린 1학년

175센티의 유연한 체구.
넓은 수비 범위.
번개 같은 발.

유격수로서 그라운드의 절반을 지배했다.

1번 타자.
출루. 교란. 필요하면 장타.

정교함과 파워를 동시에 지닌 드문 유형.

선배들의 시선 속에서도
당당히 선발 자리를 꿰찼다.

이미 프로급이라는 평가.
훗날 한국 야구의 한 시대를 풍미할 재목이라는 예감이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다섯 개의 색.

설계하는 창수.
낙차의 현욱.
견제의 병창.
중심의 진성.
질주의 윤호.

그들의 여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라운드 위에는 뜨거운 기류가 맴돌고 있었다.


1회전 ― 72강

예상보다 싱거웠다.

3학년 에이스가 7이닝을 무난히 막고,
타선은 초반 대량 득점.

7대1 승리.

벤치는 차분했다.
“아직 시작이다.”


2회전 ― 32강

중반까지 2대2.

7회, 창수 구원 등판.

직구 두 개로 삼진.
슬라이더로 병살.

짧은 2이닝이 흐름을 완전히 끊었다.

4대2 승리.


3회전 ― 16강 진출전

초반 타선 폭발.
윤호의 3루타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8대3 승리.

그리고 16강.


16강 ― 뜻밖의 패배

지역 라이벌.

초반 3실점.
타선 침묵.

6회, 창수 등판. 무실점.
그러나 점수 차를 뒤집지 못했다.

3대5 패배.

더그아웃은 침묵.

그러나 이번 봉황대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패자부활전

16강부터 2패 탈락제.

한 번 패한 팀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두 번 패해야 탈락.

패자조 우승팀은 결승에서 무패 팀을 두 번 이겨야 우승 가능.
가장 가혹한 길.


패자부활전

1차전 ― 3대1 승리.
창수 8회 등판, 9회까지 무실점.

2차전 ― 창수 선발.
7이닝 1실점. 5대1 승리.

준결승 ― 6대6 접전.
9회 초 윤호 결승타.
창수 9회 말 삼진 두 개. 7대6.

결승 ― 16강 패배 팀과 재회.
초반 2실점.
5회 역전.
창수 완투. 4대2.

설욕.
결승 진출.


최종 결승전

상대는 승자조 무패 팀.
창수고는 1패.

두 번 이겨야 했다.


결승 1차전

창수 선발.

7회까지 2대1.

8회 초, 2사 2루.
스코어 2대1, 1점 차 열세.

진성의 타구는 투수와 중견수 사이에 떨어지는 행운의 안타였다.

창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홈으로 달렸다. 외야 송구. 포수와의 충돌.

쾅.

왼쪽 발목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심판의 외침. “세이프!”

그러나 창수는 일어나지 못했다.

전국 중계 화면에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더그아웃은 얼어붙었다.
관중석은 숨을 삼켰다. “창수… 괜찮을 거야.” 진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쓰러진 자리 위로 팀의 투혼이 이어졌다. 9회 말, 2사 1·3루. 3대3 동점.

윤호의 타구가 좌중간을 갈랐다.

결승점.

창수는 그라운드에 없었지만, 그의 전력 질주는 팀의 불씨가 되어 있었다.


최종전

양 팀 모두 1패.
이 경기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창수는 출전하지 못했다. 벤치에서, 붕대로 감긴 발목을 붙든 채 동료들을 바라봤다.

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3대0. 마침내 우승.

환호.
눈물.
포옹.

그러나 한쪽에는 조용한 침묵이 있었다. 창수의 발목. 그날의 충돌이 그의 미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시간만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인터루드 (Interlude)

1980년대 후반 고교야구에서 패자부활전이 사라진 것은 선수 보호와 대회 운영 효율성 때문이었다. 연전으로 인한 혹사와 부상 위험이 커졌고, 학업 부담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또한 대회 기간이 길어지며 운영 비용과 일정 조정의 어려움이 커져 단판 승부 중심 체제로 개편되었다.

월요일 연재
이전 11화다가오는 결전의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