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모습의 경기장
제11장
창수는 원하던 고등학교 진학에는 성공했지만, 주전 자리는 아직 그의 것이 아니었다. 1년이 넘는 공백은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남달랐다. 빠른 몸놀림과 타고난 신체 조건,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읽어내는 감각이 있었다.
한 번 맞붙은 선수의 타격 습관, 투구 폼, 미묘한 버릇까지 그는 거의 기억해냈다. 기록장을 들춰보지 않아도 상대의 성향이 떠올랐다. 동료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른쪽 볼, 두 번째 공 노려봐.”
그리고 그것은 자주 적중했다.
감독은 어느 날 넌지시 물었다.
“따로 적는 노트가 있나?”
창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기록장은 머릿속에 있었다.
출전 기회는 조금씩 늘어났다. 타율은 서서히 올랐고, 투구 스피드는 130km를 넘기기 시작했다. 정교함도 잡혀갔다. 연습이 쌓이며 그는 스스로 경기를 설계하는 법을 익혔다.
정규 연습이 끝나면 그는 포수 마스크를 썼다. 투수의 입장이 아닌 포수의 시선으로 경기를 읽었다. 공의 변화와 속도, 타자의 심리, 시간을 빼앗는 법까지. 그렇게 그는 투수로서의 깊이를 더해갔다.
3학년이 되던 해, 팀은 전년도 부진의 부담을 안고 있었다. 2학년 때 선배 중 대학에 진학한 선수는 단 두 명뿐이었다. 이제는 동기들이 팀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새로 부임한 감독 아래, 팀은 공격과 수비에서 재정비를 마쳤다. 창수는 오버핸드 투수이자 좌우 타석을 모두 설 수 있는 카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첫 전국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서 지역 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으며 팀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찾아온 기회가 바로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였다.
대구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전국 규모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영남권 강호들이 중심이 되는 결전의 무대였다. 규모는 메이저 대회보다 작았지만, 지역의 자존심이 걸린 대회였다. 특히 대구·경북 팀들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 두고 짧게 말했다.
“이번 대회는 기술보다 집중력이다. 실수하는 쪽이 진다.”
1회전에서 창수는 선발로 나섰다.
초반 긴장으로 볼넷을 허용했지만 곧 리듬을 찾았다. 빠른 직구에 슬라이더를 섞어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5이닝 1실점. 타선은 초반부터 폭발해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었다.
2회전에서는 동기인 188cm 언더핸드 투수가 선발로 나섰다.
큰 낙차의 공이 타자의 방망이를 번번이 헛돌게 했다. 낮게 깔리는 공은 내야 땅볼을 양산했고, 수비는 안정됐다. 또 한 번의 콜드게임. 팀은 점점 자신감을 되찾았다.
4강전은 접전이었다. 상대는 기동력이 좋은 팀이었다.
감독은 과감히 계투 작전을 택했다. 선발 3이닝 후, 창수가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창수는 타자들의 노림수를 읽고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을 높였다. 빠른 카운트 싸움으로 승부를 단순화했다. 7회, 1점 차 리드 상황에서 위기가 왔지만 포수와의 사인 교환 끝에 몸쪽 직구로 병살을 유도했다.
그 순간, 더그아웃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올해는 다르다.”는 확신이 생겼다.
결승 상대는 대구의 전통 강호였다.
경기 초반은 악몽 같았다. 수비 실책 하나가 도화선이 되어 연속 안타와 대량 실점으로 이어졌다.
1회에 5실점. 3회까지 7대0. 응원석의 함성은 점점 무거워졌다. 창수는 관중석 어딘가에 있을 부모를 떠올렸다.8회 초, 창수의 학교가 공격에 나섰다. 점수는 7대1. 창수는 좌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투수는 우완이었다. 작년에 보았던 그의 투구 모습이 머릿속에 그대로 떠올랐다.
연습 스윙을 윙―윙 돌리며 그는 생각했다. 이번 공은 몸쪽으로 붙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그 투수의 성향이 또렷이 기억났다. 점수 차가 많이 나는 상황이었기에 무엇보다 살아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평소보다 배트를 조금 짧게 잡았다.
공이 날아왔다. 예상했던 변화구의 구질과 코스였다. 이미 준비된 자세였다. 창수는 가볍게 가격했고, 부드러운 스윙 끝에 타구는 우측 3루 베이스 쪽을 살짝 스쳐 지나가는 빨랫줄과 같은 타구가 되었다.
전력 질주. 단숨에 2루까지 내달렸다. 안정적으로 2루에 도착했다.
2루타. 그 한 번의 출루가 흐름을 바꾸었다.
그 순간, 관중석의 동기 학생들과 후배들이 갑자기 웃통을 벗어 던지며 모두 일어섰다. 학교 교가와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5월의 그 뜨거운 초여름 날씨조차 모두 잊은 듯했다.
야구는 분위기의 경기였다. 창수가 선두로 살아 나가자 경기 흐름이 올라왔다. 연속 안타가 이어졌고, 어느새 점수는 7대5까지 좁혀졌다.
타순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온 타석. 이번에는 동점을 넘어설 기회였다. 중학교 시절부터 함께 운동했던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의 커브 궤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떨어지는 공을 끌어당겼다. 타구는 우측을 가르며 날아갔다. 동점, 그리고 역전. 7대8.
그날, 팀은 대붕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창수와 동기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전국의 무대, 마지막 여름이 남아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예선 없이 전국 팀이 모이는 가장 드라마틱한 무대. 70여 개 팀이 참가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숨은 유망주가 등장하고, 3학년 선수들의 투혼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대회.
창수는 알고 있었다.
이 대회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라는 것을.
야구를 설계해 온 시간들,
아버지의 시선,
자신의 지난 방황까지.
모든 것이 그 여름 한 경기로 모여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