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과 매트에서 나를 설명한다.
제 10 (2-2)장
민재는 조금씩 친구들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점심시간에는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나 교실 안에서만큼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다.
특히 생물 시간은 절벽과도 같았다. 교사의 설명은 빠르게 흘러갔고, 전문 용어들은 귀에 닿자마자 튕겨 나갔다.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노트만 채워가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수학과 사회는 오히려 자신 있었다. 하지만 생물은 달랐다. 단어 하나하나가 장벽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한국에 있는 선희에게 그동안의 안부 인사와 친구들의 소식을 물으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메일로 보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답답함을 털어놓고 싶었다.
며칠 뒤 도착한 답장은 예상 밖이었다.
“이해가 안 되면, 통째로 집어삼켜.”
선희는 단순했다. 오래전 민재가 팔을 다쳤을 때 자기가 영어를 문장 통채로 위워본 실력을 자랑하듯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민재 너, 외우는 건 누구보다 잘하잖아. 통으로 외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수없이 많은 시험을 통째로 암기하며 통과해 온 사람이었다. 영어 단어도, 역사 연표도, 공식도, 그는 반복으로 정복해 왔다.
과정보다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는 시험 범위를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매트 위에서 같은 동작을 수천 번 반복하듯, 교과서의 문장과 쉼표 위치까지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처음에는 뜻도 모른 채 외웠다.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사진을 찍듯 기억 속에 저장했다.
이 방식이 올바른 공부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페이지가 쌓일수록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뜻을 모르고 외웠던 문장들이 어느 순간 문맥을 만들었다. 사흘 만에 그는 시험 범위를 거의 완벽히 재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시험 날, 그는 교과서를 그대로 옮겨 적듯 답안을 써 내려갔다.
손이 아플 만큼 썼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웠다.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감각이 분명했다.
그러나 성적이 발표되었을 때, 그의 이름 옆에는 0점이 적혀 있었다.
담당 교사인 Dr. Munio는 부정행위를 의심했다.
“I memorized it… all.” (모든 것을 외웠어요)
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으로는 자신의 과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교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다시 써보자.”
시험 이후 사흘이 지난 뒤였다. 그동안 그는 외운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이르렀다.
빈 교실.
종이 한 장.
민재는 숨을 고르고 펜을 들었다.
매트 위에서 기술을 재현하듯, 기억의 문장들이 정확한 순서로 흘러나왔다. 멈춤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며칠 뒤, 성적표에는 선명한 **A+**가 찍혀 있었다.
“I was wrong.”
Dr. Munio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시는 네 노력을 의심하지 않겠다.”
아이들은 장난스럽게 그를 ‘암기왕’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별명 속에는 분명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매트 위에서는 상대의 중심을 빼앗아 넘어뜨렸고, 교실에서는 기억력으로 편견을 뒤집었다. 방법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상대의 힘을 흘려 균형을 무너뜨리듯, 세상의 의심 또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되받아칠 수 있다는 것.
시간은 지나, 대학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가을 시즌(Fall)의 미식축구를 마치고, 그는 가장 좋아하는 겨울 시즌으로 돌아왔다.
Wrestling.
상급생들과의 스파링에서 그는 번번이 매트에 등을 내주었다. 힘의 차이는 분명했다. 그러나 그 거친 충돌이 좋았다.
“Don’t fight strength with strength!” (힘으로 맞서지 마!)”
코치의 외침이 체육관을 울렸다.
그 순간, 민재의 머릿속에 한국의 모래판이 떠올랐다.
샅바를 움켜쥐고 상대의 중심을 읽던 기억.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힘으로 맞서지 말라는 말은 민재의 머릿속에서 뜻밖의 기억을 소환했다. 씨름의 감각이었다. 우리의 학교 운동장 어느 한 곳에는 언제나 모래판이 있었다. 그곳은 학교 수업을 마치거나 점심시간에는 늘 그날의 승자를 가리기 위하여 아이들은 줄어 서듯 모래판에서 씨름을 하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순간 되살아 나면서 여기 레슬링에서 상대의 힘을 이용하면서 다리를 살짝 속임수의 기술들이 한국에서의 모레판의 기억들을 되살려 상대가 거칠게 파고드는 순간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허리를 낮추고 체중을 옆으로 슬쩍 비틀었다. 그리고 씨름의 기술을 실어 다리를 걸어 회전시켰다.
‘쿵.’
거구의 상급생이 매트에 떨어졌다.
다시 한번.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응용했다.
코치가 다가왔다.
“Where did you learn that?”
“Korean wrestling… Ssireum.”
Ssireum.
그날 이후 시선이 달라졌다.
코치는 선수들에게 말했다.
“민재를 봐라.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법을 안다.”
그것은 실력으로 얻어낸 인정이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한 학부모가 다가왔다. 그는 단순한 부모가 아니었다. 지역 체육 행정에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자 학교 레슬링 프로그램과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레슬링을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은 없니? 내가 추천서를 써주겠다.”
제안은 현실이 되었다.
낮은 리그인 디비전 12에서 시작했지만, 그는 매일 매트 위에서 자신을 증명했다. 결국 카운티 대회 3위. 1부 리그급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인연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그 시각, 창수도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다.
창수는 체육특기생으로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그 현실 앞에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학업은 창수가 집에서 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창수는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와서 책을 보는 것에 그렇게 싫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뭐 학교학업성적에 대단한 성적을 내는 것은 분명히 아니지만 창수는 책을 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