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월천 여사’의 꿈을 막을 수 없다

프리한가(可)

by 친절한 마녀
자유를 만끽하며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때, 파리에서 어느 날


대책 없이 뛰어든 프리의 세계. 얼렁뚱땅 1년이 지나고 프리 2년 차를 맞이하며 나는 착각의 늪에 빠졌었다. 많은 프리의 바람처럼 나 역시 한 달에 천만 원씩 벌면 소원이 없겠노라 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월천 여사’로 불러달라 했다. 그러다 연이은 마케팅 서비스 계약과 매월 몇 건씩 진행된 교육과 강의로 나는 드디어 월천 여사의 꿈을 이뤘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 같아 신이 났다. 사실 이때만 해도 소위 월천이 개인이 이루기에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 몰랐다.


장기 고객을 두세 곳 더 유치하고, 틈틈이 강의나 번역, 콘텐츠 작업을 하면 그대로 쭈~욱 자유와 경제적 독립을 원하는 대로 누리며 살 줄 알았다. 그러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 혹은 프로젝트에는 한계가 있다. 기간을 막론하고 고객이 두 곳만 있어도 정신이 없다. 매일같이 처리하고 보고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 외에 약속한 임무와 성과를 달성하는 데 예상외의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 회사 다닐 때는 회사 일만 하면 되었는데, 프리가 되니 고객 혹은 프로젝트 수에 비례해 에너지와 업무 부담이 늘어났다. 밤낮없이 일하다 너덜너덜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종종 프리랜서들이 팀을 만들고 창업하는 수순을 밟는 이유일 것이다.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내 화려한 봄날은 짧고 굵게 가버렸고 이내 쪽박을 차고 말았다. 연륜이고 경력이고 다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나의 아둔한 생각은 빛보다 빠르게 모든 일을 멈춰 세우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일을 이끄는 게 아니라 일이 날 이끌고 있다는 생각에 좀 쉬면서 스스로 재정비하고 새로운 일에 더 나은 역량으로 전력투구하리라 멋진 다짐을 하며 앞날을 계획했다. 말 한대로 이루어졌으니 미래도 내 뜻대로 되리라 자신했다. 그 이후 일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고, 단발성으로 들어오던 일도 그간 거절했던 탓에 나는 말 그대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다.


다시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는데, 올 연초부터 세상이 날 도와주지 않는다.


sticker sticker

(세상아, 대체 나한테 왜 그래?)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는 복병처럼 나타나 내 고객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당연히 내 밥그릇도 온전할 리 없었다.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객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돈을 포기하고 고객과의 신뢰를 지키기로 했다. 그런데 밀려오는 착잡 더하기 씁쓸함은 또 뭔지… 산수를 하는 기분이었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 백신을 준비하자


코로나19 충격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국민을 대상으로 정부가 각종 생활안정지원 정책을 내놓고, 프리랜서 지원 정책도 발표되어 그나마 가뭄의 단비처럼 다행스러웠지만 제한적인 부분이 여전히 존재해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스스로 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 코로나19는 특수한 경우다. 예상치 못한 변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매번 정부의 지원이 있을 수 없다. 자의든 타의든 일단 프리한 삶을 살아야 한다면 변수에 휘청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한 경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평소 잘 다져놓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이 기회다.(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 중..) 스스로 백신을 만들어 주사를 놓을 준비를 하자. 그래야 앞으로 진정한 경제 독립을 통해 원하는 만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우선, 내 일의 포트폴리오를 쫘~악 펼쳐놓고 살펴보자. 펼쳐 볼 것도 대단할 것도 없다고 무시하자 말자. 아직 갈 길이 먼 4년 차 프리지만 짧은 경험에서 배운 교훈은 다음과 같다.


당장 돈 되는 일을 챙기자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할 일. 웬만한 변수에 쉽게 타격을 받지 않는 일이 제일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좋고 싫고 다 떠나서 당장 내 통장의 현금 흐름을 원활하게 해 줄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법에 저촉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점에 집중하자. 이런 유형의 일을 마다하면 위기 시 다른 대안을 만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게 된다.


파생 상품을 만들자

주업에서 확장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나 따져보자. 여러 개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그러고 나서 주변에 계속 소문을 내자. 제안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성인이 된 후 누가 밥을 떠 먹여 준 기억이 거의 없다. 내 경우에, 애정 하던 오프라인 강의와 교육은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지만, 번역과 온라인 콘텐츠 작성 관련 외주 작업은 재택과 온라인 진행이 가능해 그 충격에서 운 좋게 비껴갔다. 큰돈은 아니지만, 현재 주업인 B2B 마케팅 서비스를 대체하며 내 경제 포트폴리오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동안 지인을 비롯해 여기저기 알리고 개인 브랜딩을 꾸준히 한 결과다. 일의 대가가 적은 일, 혹은 단발성이라도 좋다. 합치면 적금 통장 하나 만들 수 있고, 위기 시 비상금이 될 수 있다. 80%의 사소한 다수가 상위 20%의 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만든다는 롱테일 법칙((Long Tail Theory)을 기억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자.


롱테이크(long take) 전략을 짜자

한 고객 혹은 하나의 일을 길게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장기 계약이나 프로젝트를 유도하는 노력을 하자. 업무 분야, 고객의 특성, 일의 성격 등 고려 사항도 많고 특수한 상황도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힘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주어지는 대로 일을 하고 끝내면 불안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가급적 계약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일을 추가로 만들어 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계속 창출하며 고객과 신뢰 있는 관계를 구축하도록 애써 보자. 일이 끊긴다는 불안감도 없애고 돌발 변수가 생길 때 비교적 안정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다. 힘에 부치거나 필요하다면 뜻 맞는 사람들과 연합작전을 펴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한 지인이 요즘 일이 없으니 한 걸음에 1원, 일 최대 100원을 벌 수 있는 건강 앱을 찾아 실행하고, 영수증 리뷰를 하면 현금을 적립해 주는 페이앱을 매일 챙기고 있다고 한다. 웃긴 데 웃을 수가 없었다. 요즘말로 웃픈 상황이다. 불경기에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천부적인 재테크 재능이 없다면 열심히 차곡차곡 잘 쌓는 습관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바이러스가 침입해 나의 경제와 생활을 뒤흔들 때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이 생기고 백신도 챙길 수 있다.


웬만해선 월천 여사의 꿈을 막을 수 없다.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계속 나는 꿈꿀 테니까.


친절한 마녀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 원하는 조건, 원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며 프리한 삶이 지속 가능한지 실험 중이다. 천국 같은 프리의 세계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 본 글은 친절한 마녀가 IT조선에 기고한 [김정희의 프리한가(可)]의 원문으로 업데이트해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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