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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마녀 Jun 05. 2024

The LITTLE THINGS: 아주 사소한 것들

앤디 앤드루스 ㅣ국내서 '리틀씽' 원서 읽기

#시작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라?

사람이 배포가 있어야지

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어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에서

그리 세세한 것에 신경 쓰다 보면

속병이나 걸리지


사람이 말이야 큰 일을 하려면

사소한 것들에 일일이 연연하면 안 돼

대의를 위해선 작은 것들쯤은 그냥 넘겨야 한다고


'Think Big'이라든지 'Next Big Thing'이라든지

종종 우리는 큰 그림을 그리고, 큰 것들을 갈망하며

크게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

크게 되기 위한 처음 시작의 크기는?

얼마나 크든 그 시작은 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요즘 팔자에 있는 제자를 대하면서

자주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의 너의 모습을 상상해 봐'


상상하는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묻곤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대답은 하나다.


그런데 공부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하려고 해도 딱히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것.


그러다 보니 꾀를 부리고 늑장을 부린다.

생활머리가 좋은 제자는 공부에도

요령을 피우기 일쑤다.


영어 공부의 첫 시작이 뭐겠는가?

영단어를 아는 것부터인데

도통 영단어 공부는 나 몰라라 한다.  


단어를 모르고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런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고 싶다.


영어 공부를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데

그런 비법이나 묘수가 있다면 공부하지 않고도

단박에 영어 성적이 오르지 않겠는가


나는 공부하란 잔소리 안 해서 좋고

제자는 잔소리 안 들어서 좋고

그런데 그 좋은 방법이 없으니 애통할 뿐이다.


제자 녀석에게 다시 세뇌를 반복한다.

'네가 원하는 모습을 그려봐'

'와~ 멋지겠다, 너무 좋겠다'


그러니 '지금 네게 필요한 건 뭐?'

'공부', '뭐부터 시작하지?'

'영어 단어부터'


이 도돌이표 같은 대화를 반복하면서

제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하나다.

'기본'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기본

제자가 스스로 그리고 원하는 모습에 다가서려면

요령이란 통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이야기를 전했던

앤디 앤드루스는 'The LITTLE THINGS'에서

'작은 것들에 땀을 흘려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움직임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고개를 들어볼 때 자신이 있던 곳에서 항상 꿈꿔 왔던 곳으로
정확히 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In fact, when small moves are repeated consistently over time,
you'll one day look up and realize you've traveled all the way from
where you were to exactly where you ahvays dreamed you'd be."

- The LITTLE THINGS, P



제자와의 도돌이표 대화를 생각하며

사소해 보이지만 위대한 결과를 낳는 기본을 생각하며

두 손 모아 책장을 넘겨본다.



#중에


바나나 먹을 때 어느 쪽부터 껍질을 까는가?

줄기 달린 굵은 쪽 vs 코가 뾰족한 작은 쪽

실제로 난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논쟁을 한적이 있다.


사실 논쟁이라기보다 이상한 웃음이 섞인

질의응답을 한 적이 있다고 해야 정확할 거다.

그때는 내가 정말 이상한가? 싶었다.


시드니에서 잠시 생활할 때 같은 학원에

다닌 일본인 친구와 어느날 바나나를

먹을 일이 있었다.


친구는 내가 바나나 껍질을 까는 모습을 보더니

"줄리, 너 왜 거기서부터 껍질을 까?"하며

물었다.


(오잉?)"무슨 소리야?"


"너 왜 바나나를 뾰족한 부분에서 껍질을 까냐고?"

"어? 글쎄, 늘 그렇게 까서 먹었는데,

그걸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럼 넌 어떻게 껍질을 까는데?"

"여기 두꺼운 쪽에서.  줄기 잡고 벗겨내면 쉽잖아.

뾰촉한 쪽에서 벗기면 불편하지 않아?"


"그런가? 글쎄, 원래부터 이렇게 까와서 잘 모르겠는데."

친구는 나처럼 바나나 껍질을 까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웃었다.  비웃음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그냥 신기했던듯


난 내가 이상한가 싶어 주변에 물었다.

그랬더니 진짜 주변인 모두 줄기달린

쪽부터 벗긴다고 했다.  이런...


내가 이상한 거였구나, 싶어 이후 난

바나나를 먹을 때면 의식적으로 줄기달린

굵은 쪽부터 벗기려 했다.  영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방식이 옳았다는 거 아닙니까!

모두의 논리와 당연함에 위축되어 내 방식이

잘못된 거라 생각해 고쳐보려 애를 썼던 것이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나나를 굵은 쪽 끝에서 벗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논리가 그러라고 하니까! 바나나 껍질을 벗기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지금껏 논쟁이 된 적은 없다. 어쨌든, 바나나의 굵은 쪽 끝은 우리가
바나나를 집거나 아니면 매다는 쪽이다. 즉 손잡이란 말이다!

It does seem like such a little thing, but why do we open a banana at the large end?
Because logic dictates that we must! The proper way to peel a banana has never been disputed. After all, the large end of the banana is where we pick it up. Or hang it.
It's the handle!
.
.
.
분명한 것은, 바나나의 굵은 쪽 끝은 어떤 목적에 맞게 그렇게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은 바나나 껍질을 벗겨 안쪽에 들어있는 과육을 먹기 위에 입을
갖다 대는 진입점이 아니란 것이다. 바나나를 구조적으로 지지하고 지탱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To be clear, the large end of the banana was created for a purpose.
But that purpose is not as an entry point to the edible fruit inside.
Its purpose is to hold up the banana.

- The LITTLE THINGS, P56-P57 중에서



앤디의 이 책이 더 빨리 나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그랬더라면 그 친구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줬을텐데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진실이라고 뭔가를
믿게 되면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은 채 평생을 살아간다는 슬픈 사실이다.
새로운 사고방식을 기회로 보는 사람은 참으로 가치 있는 귀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까다롭고 어려운 수술을 하든 일상적이고 평범한 작업을 하든 상관없다.
기존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통용되던 케케묵은 사고 한 귀퉁이에 빛을 비추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고, 종종 놀랍다 못해 눈부신 결과를 낳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다.

Before we move on, allow me to point out the sad fact that most people
live their entire lives without ever thinking beyond what they have come
to believe is true.
It is a valuable person indeed who manages to see a new way of thinking
as an opportunity.
It does not matter whether that person is performing a delicate surgical
procedure or an everyday, mundane task. By shining a light into the dusty
corners of accepted thinking, new possibilities can be discovered, yielding
different methods that quite often produce extraordinary-even astonishing- results.


-The LITTLE THINGS, P59

 


지금도 종종 내가 아는 기본과 원칙이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주변의 통념이나 일반화에 놓일 때면 그렇다.


그것들이 설령 모두 당시의 정답일지라도

내가 뭔가를 대할 때 취하는 기본이나 원칙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답일 수 있음을

한번 더 생각해 보기로 한다.



#마침 


친애하는 친구 님들 어디 가셨어요?

왜 안 오시나요?

그리워요~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소통하고 있는 소셜 미디어로 자연스레 생각이

꼬리를 타고 이어졌다.


새로운 친구들과 소통을 늘려가는 사이

친애하는 나의 오랜 친구들은?

문득 스치는 생각에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글도 자주 못 본 것 같고

알림도 안 온 것 같고

내가 놓치고 있는 건가?, 싶어


소셜 미디어를 처음 시작할 당시부터 맺어온

친구 계정들을 방문해 보았는데

지난해 이후로 쭈욱 활동이 멈춘 분들이 많다.


혹시나 싶어 내가 놓쳤던 게시물에

'좋아요'를 꾹 누르고, 궁금한 분에게는

메시지도 남겨 보았다.


각각의 이유로 활동을 멈춘 소셜미디어 친구들

한때 서로 소통하며 응원하고 지지했던

나의 친애하는 친구 님들이여, 어서 돌아오세요!


새로운 친구들이 너무 설레고 기쁘지만

오래된 친구들과의 진심 어린 소통에

결코 소홀하고 싶지 않다.


소셜미디어를 하면서 사소한 일 같지만

내가 놓쳐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그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래된 인연이 당연하지 않도록,

처음 친구를 맺을 때의 그 기쁨과

감사함을 잊지 않는 것.


서로 친구하자 앞으로 자주 오래 소통을

이어가자고 한 약속 아닌 약속을

최선을 다해 지켜나가고 싶다.


기꺼이 이미 나의 친구가 되어준

친애하는 친구 님들과의 소통이

그립다~ 친구 님들 어서 돌아오세요!


소셜 친구들의 계정에서 얻는 인사이트를 통해

나는 매일 정보와 교훈을 얻고 또 인간의

다정함을 배우며 내 일에 적용해 나갈 수 있었다.


다양한 친구들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맹목보다는 비판적 관점을

비판적 관점보다는 다양성과 포용을 배우면서


'A Little Thing, like opening our eyes to what is already there'

"관점은 우리가 어떤 것을 보기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맹목(盲目)은 그것을 전혀 보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부정적인 관점을 선택하면 한계가 있다.
하지만 맹목을 선택하는 것은 비극이다."

"Perspective is how we decide to see a thing.
Blindness is the decision not to see it at all.
Choosing a negative perspective is limiting,
but choosing blindness is a tragedy."

- The LITTLE THINGS, P137



삶의 변화의 시작점은 언제나 작다.

그 작은 점에서 차근차근 쌓아 올린 점들이

선을 이루고 도형을 만들며 큰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러니

이미 존재하는 것에 눈을 크게 뜨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 삶은 책, 읽어가는 날에 'The LITTLE THINGS'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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