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치료를 받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by Stacey

한국에서 원어민 수업 보조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여러 시설에서 다양한 원어민과 호흡을 맞추며 아이들 영어 수업을 보조했다. 모로코에서 온 외국인, 아름다운 세부 섬에서 온 필리핀, 이란에서 캐나다로 이민가서 영어를 배운 외국인 등등 다양한 배경의 외국인들과 일을 했다. 그중에 나에게 큰 교훈을 준 외국인 교사가 있었으니 그는 캐나다에서 온 한국살이 23년차 외국인이었다.

첫날 그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많은 이야기… 많은 불평이라고 하자.

“ 넌 한국이 좋아서 다시 한국온거야?” 그가 물었다.

“응 한국이 너무 그리웠어.”

“그래?? 한국이 뭐가 좋아? 한국인들 인종차별도 심하고 노동자 대우도 좋지 않고 사람들은 불친절해서 싫어”

“ 아….. 인정. 근데 천국은 어디에도 없어. 싫다고 생각하면 나만 힘들어”

“ 근데 말이야 내가 제일 싫은게 뭔줄 알아? 버스야. 운전을 거지같이 한단말이지. 게중에 마을버스는 최악이지. ”

“아… 인정. 근데 한국은 교통시스템이 잘되어있어서 자차가 없어도 사는데 문제없어. 차없이도 난 출퇴근 늦지 않게 할 수있고 지하철 버스 택시 등등 언제든 선택가능한 옵션이 있어서 편리해”

“ 근데 말이야 내가 봤을 땐 한국 곧 위험해 처해 질거야. 전쟁이 날지도 몰라. 내 직감을 믿어”

대화가 극단적으로 이어지자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 근데 넌 어쩌다 (이 지옥같은) 한국에서 23년이나 산거야?“라고 나는 물었다.

” 아내를 만나고 자식을 낳고 살고있으니 이곳이 이제 내 집이지. 근데 난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국이 너무 싫어”

“ 음… 가족들과 상의해서 캐나다 이민 고려해보는게 어때?” 나는 진지했다. 한국이 이렇게나 싫은데 진심으로 다른 옵션도 있다는 걸 조언하고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

“ Well… 캐나다 월세가 너무 비싸. 인플레이션도 심하고. 내 아내가 일을 안하는데 거기서는 한사람 인컴으로 살긴 힘들어”


여기까지다. 더이상 일관성없는 그의 불평을 들어줄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고 바쁜 척 자리를 떴다.


그는 기분이 저기압일 땐 아이들에게 험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강압적인 말투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본인도 저기압일 땐 이실직고를 했다.

”너도 보시다시피 내가 오늘 기분이 아주 안좋아 근데 최선을 다해볼께. “ 라는 등 스스로를 컨트롤 해보려고 하기도 했지만 기분이 저기압인 날에는 한국에 대한 불평이 극에 치달았는데 제발 니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줄래?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때가 수십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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