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H
2024/12/16/16:00
스무 해가 흘렀다. 긴 세월이었다.
그동안 나의 삶도, 세상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다시 밟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첫인상은 초라하다 못해 낡은 느낌이었다. 기억 속에서 거대하고 미래적으로 느껴졌던 이 공간이, 이제는 놀랍도록 작아 보였다. 마치 어릴 적 뛰놀던 골목길을 나이가 들어 다시 찾았을 때처럼 그랬다. 그렇다. 장소는 변하지 않았지만, 변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우리는 공간을 기억 속에서 확대하거나 왜곡한다. 결국 낯선 것은 언제나 ‘현재의 나’이지, 결코 ‘장소’가 아니다.
그때의 나는 젊고 서툴렀으며, 세상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떨림이 나를 감쌌다. 그것은 설렘이었을까?
공항 터미널의 공기는 독특했다. 어디선가 읽은 듯한 공항의 냄새가 있다. “제트 연료의 날카로운 냄새”, 오랜 세월을 머금은 공기의 흔적, 그리고 수많은 여행자들의 호흡이 뒤섞인 듯했다. 독특함 속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순간, 도시와 공간이 주는 미묘한 낯섦을 통해 현재를 재발견하고, 과거의 기억과 새로움이 뒤섞인 감각을 깊이 음미했다. 그 공기 속에는 떠남과 돌아옴, 이별과 만남, 시작과 끝이 겹쳐져 있었다. 공항은 그래서 언제나 ‘시간의 관문’이다. 공항의 조명은 딱 알맞게 차분했고, 여행객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천천히 걸으며 렌터카 업체를 찾았다. 머릿속에는 여행을 준비하며 보았던 공항의 지도와 경로가 스쳐 지나갔지만, 생각보다 길은 멀었고 발걸음은 점점 소극적으로 느려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통로, 많은 간판과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 그리고 과거의 내 모습이 이 공간을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 길을 잃은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며들 때쯤, 렌터카 데스크를 발견했다. 그 순간, 희미하게 자리 잡았던 긴장이 풀리며 현실감이 다가왔다. 여행이 드디어 시작된다는 사실이 가까이 왔다. 안내 데스크 앞에 서는 순간부터 먼발치 일행들의 시선 속에서, 아주 능숙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다. 미리 예약해 둔 사항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체크하고 사인을 한 후에 자동차 키를 받아 들고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차를 확인하고 짐을 실은 후, 운전석에 앉았다. 차 안은 또 다른 공기로 가득했다. 가죽 시트의 냄새, 차가운 핸들의 감촉, 그리고 새 차 특유의 낯설지만 매력적인 분위기. 시동을 거는 순간, 손끝을 타고 미세하게 전해지는 진동이 긴장감을 더했다. 낯선 조작법에 잠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미리 준비한 핸드폰 거치대와 차량용 충전기를 설치하고 사이드 미러를 조정하는 동안 천천히 익숙해졌다.
공항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실감했다. 새로운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운전경력 30년이 넘는데, 우회전이 늦다고 뒤차가 빵빵거린다. 낯선 세상은 모두를 초보로 만든다. 인간은 늘 어딘가에서 초보다. 낯섦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 순간, 삶은 또 다른 배움의 얼굴을 드러낸다. 도로 위에 낮게 깔린 구름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회색 빛 하늘 아래 겨울바람은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갔고, 차창 밖의 풍경은 속도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 지나갔다.
20년 전, 나는 바람처럼 유연했고 세상의 색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젊음은 감각의 예민함이었고, 삶의 파도에 흔들릴 자유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시간에 마모된 흔적을 지닌 채, 딱딱해진 발꿈치의 굳은살을 보호막 삼아 살아간다. 그러나 진정한 보호막은 굳은살이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고 싶어 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상처는 반복될수록 층을 이루고, 경험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무감각하게도 했다. 그러나 이 굳은살만이 나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아래, 여전히 부드러운 내면이 남아 있는가 하는 점이다. 딱딱함이 나를 지켜주지만, 그것이 영혼을 잠식해 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아직도 흔들릴 수 있을까? 삶은 점점 더 단단한 형태를 요구하지만, 그 안에서도 흔들릴 수 있을까? 흔들린다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다. 흔들림 없는 삶은 이미 죽음에 가깝다. 흔들림은 불안이자 동시에 생명이다. 시간은 나를 둔탁하고 거칠게 만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감성을 지울 수는 없다. 눈물이 많은 중년 남자의 속은 물과 같다. 형체를 가지지 않지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것.
나는 다시 묻는다. 단단함을 지닌 채, 부드러움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 욕심이라면, 차라리 산산이 부서져 가루 같은 부드러움이라도 가질 수 있을까?
구글 맵의 네비를 따라 해가 저물 무렵, 만하임에 도착했다. 깔끔한 겨울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도시의 어둠 속에서 대형마트의 불빛이 어색한 듯 익숙하게 다가왔다. 오랜 비행과 낯선 환경의 긴장감이 피로로 밀려왔지만, 이상하게도 그 무게가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숙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복잡한 거리와 낯선 지명들 속에서 잠시 주변을 왔다 갔다 했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길을 찾았다. 마치 어릴 적 보물 찾기를 하듯이. 삶의 방향도 마찬가지다. 확신은 없다. 다만, 더듬거리며 찾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발견’이 된다. 그렇게 숙소의 문을 열었을 때, 작은 모험을 끝마친 듯한 뿌듯함이 마음을 채웠다.
짐을 풀고 난 뒤, 창밖을 바라보았다. 낮게 깔린 도시의 불빛과 그 사이로 흐르는 겨울 공기가 차분한 고요를 전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라인 강이 근처 식당을 찾아갔다. 골목길의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이 돌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메뉴판에 맛있는 요리가 얻어걸리겠지’라는 마음으로 주문했다. 따뜻한 수프와 고소한 빵, 그리고 익숙한 향의 요리 굴라쉬가 편했다. 주변 사람들의 낮은 대화 소리는 이곳의 공기가 되어갔다. 언어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온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언어를 초월한 감각적 교류에 대해 사유했다.
식사를 마치고 골목길을 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반려견과 산책하는 이들, 그리고 창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바버샵 안의 풍경. 과일이 진열된 식료품점의 모습들이 도시의 일상으로 내게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철학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빵집 앞의 빵 냄새, 차가운 공기에 섞여드는 웃음소리, 그 속에서 철학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여행자로서 만하임의 골목과 겨울밤의 정취를 거닐며, 평범한 풍경 속에서 삶의 단편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있었다.
자동차에 올라 숙소로 향하는 길, 속력을 조금 더 늦췄다. 이 밤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길 바랐다. 그것이 지금을 기억하고 픈, 내게 줄 수 있는 소심하지만 큰 선물이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런 소심한 바람들이다.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마음, 그 작은 욕망이야말로 삶을 이어가는 힘이다. 속도의 느림이 가져온, 이 순간은 힐링과 여유의 기회였다. 숙소에 도착해 샤워를 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오늘 하루를 되새겼다.
비행기의 이륙, 기내의 풍경, 공항의 공기, 첫 운전의 떨림, 따뜻한 식사, 그리고 겨울밤의 정취. 모든 순간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 여행을 기억과 현실의 접점, 그리고 낯섦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여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도시와 시간의 흔적을 관찰하고, 그 파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이 여행은 자신과의 조우이자, 기억과의 대화였다.
익숙함과 낯섦,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길 위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의 어색한 렌터카의 시동 소리와 함께.
시동은 단순히 차의 출발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문을 여는 소리였다.
단단하다는 것은
부서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닫아버리는 것일까?
단단함이 나를 지탱하되
결코 나를 가두지 않기를.
살아있는 모습으로
흔들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
흔들릴 수 있어야 한다.
나약함이 아닌,
살아 있음으로
흔들릴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