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색이 있는 만하임 / 카를스루에

VIOLET

by 원성진 화가

2024/12/17/09:00


다음 날, 새벽의 여명이 창문 사이로 부서졌다. 조각들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어둠을 밀어내며 피곤한 설렘의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빛이란 언제나 시간을 열어젖히는 열쇠다. 어둠을 몰아내는 순간, 인간은 또다시 새로 태어난다. 도시는 고요했으나, 시작을 품은 잠이었다. 모든 움직임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채, 다가올 세계를 기다리고 있는 정적.


카를스루에 ZKM으로 가기 전에 잠시 만하임 대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길을 나섰다. 이 신선함은 낯선 공간이 내게 건네는 인사였다. 낯섦이 주는 불안은 동시에 새로운 사유의 자극이기도 하다.

만하임 대학교에 도착하자,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 건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인간이 건축을 통해 남기고자 한 것은 권력과 지식, 그리고 시간을 초월하려는 의지였다. 과거 팔츠 선제후의 궁전이었지만, 이제는 학문의 전당이 되었다. 권력이 지배하던 건축이 이제는 지성의 장소가 된 것이다. 권력은 사라지고, 학문은 여전히 살아있다. 이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변형시키며 공존하는 하나의 시간적 구조였다.

이 도시는 1885년, 카를 벤츠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엔진의 첫 시동은 인간의 이동, 나아감, 그리고 미래를 향한 상징적 문이었다. “달린다”라는 행위는 시간의 지평을 넓히는 인간의 선언이었다.

도서관 앞의 학생들은 긴 줄을 서 있었다. 지식 앞에 서 있는 이 줄은, 사실상 진리를 향한 인간의 오래된 순례 행렬과도 닮아 있었다. 신전 대신 도서관, 제의 대신 학문. 그러나 본질은 같다. 인간은 언제나 ‘모르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그 빈자리를 채우려 애써왔다.

중앙 광장의 동상 앞에 서니, 과거의 인물이 현재의 젊은이들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동상은 죽은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다시 말을 거는 장치다. 학생들이 그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면은 ‘시간이란 결코 직선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는 곧잘 생각한다. 몇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리고 지금의 내가 몇 년 후의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시간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교차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식당에서 마신 커피와 갓 구운 빵은 단순한 아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따뜻한 커피 향은 “나는 여기 있다”는 감각적 증명처럼 퍼져갔다. 타인의 눈빛, 스쳐가는 인사, 작은 행위 하나하나가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이제 카를스루에, ZKM 전시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음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행은 언제나 닫힌 문 앞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열려 있는 길만 따라가는 것은 단순한 이동일뿐, 여행은 언제나 닫힌 문을 두드리는 행위다. 닫힌 문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나는 여기를 왜 왔는가?”

관리사무소 직원과의 대화는 뜻밖의 재미있는 오해를 낳았다. 그러나 오해야말로 인간이 서로를 만나는 방식 중 하나다. 완벽한 소통이란 없다. 늘 남는 틈새, 미끄러짐, 잘못 이해한 단어, 그것이야말로 관계를 생성한다. 나는 그 오해 속에서 나를 새롭게 정의하는 상황에 놓였다. 어쩌면 예술이란 본래 ‘오해를 아름답게 만드는 방식’ 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툰 대화 속에 많은 행운이 따라줘서 전시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전시장은 어둡게 꺼져 있었지만, 그 꺼짐조차 하나의 전시였다. 부재가 곧 존재를 증명한다. 작품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작품이 되었다.


이제 프랑스로 향할 시간. 고속도로를 달리며 국경을 넘는 순간, 국경은 세계가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선이지만, 그 선을 넘어설 때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체험을 한다.

국경을 넘어가는 순간 나는 느꼈다. “나는 이미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다시 쓰는 텍스트다. 그 텍스트는 여행이라는 경험으로 줄곧 수정되고, 다시 인쇄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이 오래된 주문은 신에게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명령이었다. “문을 열어라. 그리고 건너가자.” 그것이 물리적 문이든, 정신적 문이든 상관없다. 닫힌 문 앞에서 주저앉는 순간, 삶은 사라진다.


삶은 닫힌 문을 두드리는 행위다.


여행이 끝나도, 일상의 또 다른 여정 속에서도 계속해서 나만의 문을 열어갈 것이라고. 진정한 여행은 삶 전체가 되는 순간에 완성된다.




열릴 것이다


문을 열어라

끊임없이 확장하라

포기하지 않은 순간들이 모여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문을 열었다

길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다

발걸음이 쌓여 길이 되었고

망설임을 넘어선 두드림이


멈추지 마라

내 손으로 문을 두드리는 일을

멈추지 마라

내 손으로 문을 여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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