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설명하지 마라.

칼 야스퍼스(2)

by 원성진 화가

설명이 멈추는 자리에서, 비로소 나 자신이 또렷해진다.


야스퍼스의 핵심 개념인 "실존"은 객관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이력서로도, 진단서로도, 성격 유형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자리.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고, 흔들리며 살아갈 때만 잠시 드러나는 나다.

이 실존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바로 한계 상황이다. 죽음 앞에서, 실패 앞에서, 사랑이 무너질 때, 죄책감에 잠길 때. 기술도 제도도 합리성도 이 지점에서는 속도를 늦춘다. 야스퍼스는 이 순간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에 서 있으라고 말한다. 도망치지 말고, 해명하지 말고.


야스퍼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나치 시대입니다. 그는 유대인 아내와 결혼했고, 그 사실만으로도 위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출판도 금지되었습니다. 언제 추방되거나 죽을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그는 침묵과 사유를 동시에 견뎌냈습니다. 권력에 봉사하는 이성은 이성이 아니며, 철학은 언제나 자유의 편에 서야 한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독일 사회를 향해 묻습니다.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침묵은 죄가 될 수 있는가. 그는 집단의 면죄부를 거부했고, 개인 각자의 각성을 요구했습니다. 이 질문들은 철학적 주장 이전에, 그가 살아낸 삶의 무게에서 나온 말들이었습니다.

“죄는 개인에게서 시작된다.”

집단의 이름으로 책임을 흐리는 순간, 인간은 자기 실존을 포기한다고 보았습니다. 너 자신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킵니다.


야스퍼스는 이 한계에서 허무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는 여기서 초월을 말한다. 다만 이것은 종교적 교리를 뜻하지 않는다. 초월은 대상이 아니라 방향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세계 저편을 향해 생겨나는 긴장. 붙잡을 수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감각.

그 긴장 속에서 인간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답게 선다.


야스퍼스의 삶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인간은 완성된 답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고, 질문을 견디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고.


그는 철학을 통해 위로를 주려 하지 않았고, 대신 깨어 있으라고, 서로에게 말을 걸라고, 한계 앞에서 눈을 돌리지 말라고 조용히 손짓했습니다.


요즘 작가님들의 하루에도 이유 없이 가라앉는 순간이 있나요? 그때 작가님은 그것을 밀어냈는지, 아니면 잠시 곁에 두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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