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가르니에
파리의 아침은 대체로 비슷하다. 조금 흐리고, 조금 조용하고, 커피 냄새가 어디선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그날은 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목과 어깨가 굳어 있었고, 이마에는 열이 얹혀 있었다. 애매한 열이었다.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세상을 전속력으로 통과하기에는 무리인 상태.
파리는 조금은 지친 신체의 속도로 스며들었다. 세계는 언제나 몸의 상태만큼만 열리니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오페라 가르니에로 향했다. 황금빛 샹들리에와 천장 벽화를 직접 보고 싶었다. 기대라는 것은 흥미로운 감정이다. 아직 보지 못한 장면을 이미 기억처럼 품고 있다. 인간은 미래의 이미지를 현재에 끌어와 미리 감동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극장 앞에 도착했을 때 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한 단어가 또렷하게 들렸다. 파업. 기대는 현실과 마주할 때 비로소 자기 성격을 드러낸다. 우리는 세계를 계획하지만, 세계는 우리를 계획하지 않는다. 닫힌 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의 기대를 자각한다. 기웃거려도 소용없었다.
발길을 돌려 백화점으로 향했다. 반짝이는 쇼윈도, 잘 정돈된 상품들, 무언가를 고르는 사람들의 진지한 얼굴. 소비는 선택을 통해 나를 구성하려는 시도다. 무엇을 손에 쥐느냐에 따라 오늘의 내가 조금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오래 걷자 다리가 풀리고, 머릿속은 흐려졌다. 욕망은 활발했지만 몸은 동의하지 않았다.
인간은 항상 두 개의 리듬 위에 서 있다. 욕망의 속도와 신체의 속도. 둘이 어긋날 때 우리는 피로를 느낀다. 어쩌면 여행은 이 두 속도를 조율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 유명한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갔다. 높은 천장 아래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한 모금 마시자 따뜻한 산미가 천천히 퍼졌다. 위로는 아주 사소한 감각의 회복으로 온다.
점심 무렵, 퐁피두 센터 근처의 작은 상점 CASO에 들렀다. 나무 선반 위의 가방과 소품들, 손으로 만든 쿠션, 바랜 색의 인형. 나는 물건을 하나씩 들어 보았다. 우리는 사물을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사물이 우리의 기억을 붙잡는다. 훗날 그 작은 인형을 꺼내 들면, 파리의 공기와 그날의 미열, 닫힌 극장의 문까지 함께 떠오를 것이다. 기억은 추상적이지만, 항상 구체적인 것에 기대어 살아남는다.
늦은 오후, 역으로 향했다. 역은 흥미로운 장소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도착한다. 서로 다른 시간표가 한 플랫폼에서 교차한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닮았다. 각자의 서사가 병렬로 흐르다가 잠시 스친다. 그리고 다시 흩어진다.
익숙한 얼굴이 광장 끝에 나타났을 때, 묘한 안도가 밀려왔다. 타인의 존재는 세계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든다. 혼자일 때는 배경이 흐릿해지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장면은 선명해진다.
저녁은 작은 레스토랑 2층에서 먹었다. 바깥 풍경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식탁 위의 음식은 분명했다. 따뜻한 접시, 잔에 부딪히는 소리, 웃음이 겹쳐졌다.
파리는 커피 한 잔, 작은 상점의 냄새, 어둡고 아늑한 조명. 해 질 무렵 도시는 시에나 브라운 색으로 가라앉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색이다. 어쩌면 삶의 색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눈부신 황금빛보다, 하루 끝에 남는 잔향 같은 색.
계획은 어긋났고, 몸은 끝내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완성되었다. 우리는 의도라는 선을 그어 놓지만, 세계는 그 위에 예상치 못한 무늬를 새긴다. 그 무늬가 모여 하나의 삶이 된다.
밤이 깊어지자 거리는 조용해졌다. 천천히 걸었다. 생각해 보면 여행은 낯선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읽는 일이다. 닫힌 극장의 문 앞에서, 따뜻한 커피 잔 위에서, 작은 물건의 촉감 속에서.
파리는 나의 기대를 조금 비켜 갔다. 대신 다른 장면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그러나 충분히 살아 있는 감각으로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