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기념비
크리스마스이브의 런던은 흐린 겨울 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새벽 공기는 금속처럼 차가웠다. 뜻밖의 장애물은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택가의 좁은 길목에 세워진 한 대의 차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새벽의 정적은 얇은 유리판처럼 섬세하다. 한동안 망설였지만 결국 경적을 울렸다.
짧은소리가 고요한 골목을 가볍게 흔들었다. 잠시 뒤, 졸린 눈을 비비며 내려온 차 주인이 묵묵히 차를 옮겼다.
시동을 걸자 엔진이 낮게 울렸다. 차는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와 크리스마스이브의 런던 속으로 스며들었다.
런던의 새벽은 어딘가 무대와 닮아 있다. 거리의 건물들은 장막처럼 서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아침을 조용히 연기한다. 여행자는 그 무대 위를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배우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래된 도시에서는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종종 흐려진다.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역사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차를 세운 곳은 임페리얼 칼리지 앞 길가였다.
차 문을 닫는 소리가 겨울 공기 속에서 짧게 울렸다. 숨을 들이마시자 서늘한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하이드 파크 쪽으로 걸어갔다.
겨울 아침의 공원은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 엷은 안개가 잔디 위에 낮게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서리가 은빛 가루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발 밑에서는 젖은 낙엽이 사각거리며 부서졌다. 그 소리는 오래된 서류철을 넘길 때 나는 마른 종이의 숨결과 닮아 있었다.
몇 마리 새가 낮게 날아올랐다. 날개짓이 안개를 가르자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물결이 잠시 흔들렸다가 사라졌다.
안개는 세상의 윤곽을 흐린다. 사물은 그 속에서 단단한 실체를 잃고 하나의 이미지로 변한다. 인간의 기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사실은 희미해지고 장면만 남는다. 그래서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다기보다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기억이란 사라지는 것들을 조용히 다시 그려보는 기술인지도 모른다.
공원 입구를 지나 왼편으로 시선을 돌리자, 안개 사이로 거대한 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버트 기념비였다.
금빛 장식이 흐린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교한 조각들이 탑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알버트 공의 조각상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치 시간을 넘어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 기념비는 빅토리아 여왕이 사랑했던 남편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사랑은 때때로 개인의 감정을 넘어 하나의 역사적 형식으로 남는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념비는 그 대화를 이어가는 하나의 문장과도 같다.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그 침묵 속에서 의미를 읽어낸다.
아마도 역사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는 게 아닐까?
말하지 않는 것들이 오래도록 말을 걸어오는 방식으로.
나도 이렇게 글로 남긴다. 독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