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폴 대성당
다른 전시실에서는 배꼽을 소재로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가는 인간의 배꼽을 확대해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었다.
배꼽은 이상한 흔적이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와 이어져 있던 줄을 끊고 세상으로 나온다. 그 흔적이 바로 배꼽이다. 연결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단절의 기념비.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인간은 왜 서로를 찾는가.
그리고 왜 결국 혼자가 되는가.
연결을 위해 사는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 끊어질 것을 알면서도 이어 가는 것인지.
생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한쪽 전시장에서는 영상 작업이 벽 네 면을 채우고 있었다. 여러 개의 필름이 겹쳐지며 시간과 공간을 다시 조립하고 있었다.
빛은 벽을 지나 바닥으로 흐르고, 사람의 그림자는 그 위를 조용히 지나갔다.
그 순간 관객은 영상 속 시간과 같은 속도로 그 공간을 걷고 있었다.
나는 문득 한국 작가 강이연의 작업을 떠올렸다. 복잡한 기술보다 단순한 구조가 더 깊은 감동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
예술은 종종 가장 간단한 형태로 가장 깊은 울림을 준다.
미술관을 나왔을 때 밤이 내려와 있었다.
강 쪽으로 걸었다.
템즈 강 위에는 크리스마스 조명이 길게 흔들리고 있었다. 물결 위에서 빛은 부서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넜다.
다리는 곧게 뻗어 있었다. 장식도 없고 과장도 없었다. 그저 강을 건너기 위한 구조였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건물 하나가 그 다리의 끝을 붙잡고 있었다.
세인트폴 대성당.
어둠 속에서도 돔의 윤곽이 또렷했다.
성당 앞에 잠시 서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런던의 겨울은 습기가 많아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용히 따뜻해졌다.
하루의 끝에서 사람은 종종 그런 기분을 느낀다. 긴 하루가 몸을 식히고 나면, 생각은 천천히 가라앉는다.
강 건너 작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밖에서는 강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도시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그곳에서 조용히 멈춘 듯했다.
도시는 지나가지만, 그날의 공기와 빛은 오래 마음속에 남는다.
런던의 겨울밤이 바로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