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테이트 모던으로 갔다.

런던

by 원성진 화가

숙소에 짐을 내려놓았을 때, 이미 해는 낮은 곳으로 기울어 있었다.
도시는 낯선 사람을 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거리의 빛은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거리로 나왔다.

잠시 뒤 빨간 이층 버스가 천천히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런던이라는 도시를 설명하는 데 길고 복잡한 말은 필요하지 않다. 이 버스 한 대면 충분하다.

차창 밖으로 벽돌 건물들이 지나갔다. 오래된 벽에는 세월이 남긴 색이 배어 있었고, 가로수 사이에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희미한 빛을 뿜고 있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색이었다.

도시는 파리와 닮은 점도 있었지만, 기질은 전혀 달랐다.
파리가 빛의 도시라면, 런던은 어떤 도시 일까?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풍경이 조용히 바뀌었다. 그것은 오래된 필름을 천천히 넘길 때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변화였다.


강 쪽에서 내려걸었다. 목적지는 테이트 모던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건물은 묵직했다.
한때 전기를 만들던 발전소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무게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철과 벽돌로 이루어진 산업의 육체가 지금은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사물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다만 다른 역할을 맡길 뿐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람의 감각은 금세 사라졌다.


터빈 홀이 눈앞에 펼쳐졌다.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이 사람을 작게 만들었다. 인간이 만든 공간이지만, 그 안에 서 있으면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홀 중앙에는 거대한 설치 작업이 걸려 있었다.
한국 작가 이미래의 작품이었다.

얇게 찢어진 갈색 천들이 높은 곳에서 내려와 있었다. 그것들은 완전히 움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멈춰 있지도 않았다. 공기의 미세한 흐름 속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저것은 상처일지도 모른다.
건물이 지닌 오래된 시간의 상처, 혹은 인간이 남긴 산업의 흔적.

어떤 폐허는 파괴의 결과로 생기지만, 어떤 폐허는 시간이 만든다. 그리고 시간의 폐허는 묘하게 아름답다.


전시장 안에는 여러 작품이 흩어져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다소 기이한 것이었다. 혹독한 겨울의 야외에서 작가가 자신의 배설물을 얼린 뒤 석고로 떠낸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자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철학자 칸트 아름다움과 숭고를 말했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경계는 흐려졌다. 또 다른 철학자 아서 단토는 예술의 문이 이미 완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도 그 문 밖에 있는 것일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작품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두지 않았다.

그리고 때로 예술은,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시작된다.


나의 삶도 늘 불편함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편안함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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