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의 시민 / 포크스톤
칼레의 아침은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옅은 푸른빛이 번지고 있었고, 하얀 구름 몇 점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막 떠오른 햇살이 도시의 지붕과 오래된 거리 위에 보랏빛을 얹고 있었다. 그 빛은 멀리 통영 언덕마을의 벽화처럼 환하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다. 긴 밤 뒤에 찾아오는 아침은 늘 그렇게 시작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아오지만,
사실은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시간과 고통을 지나 겨우 도착한 빛이다.
나는 천천히 핸들을 왼쪽으로 돌려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칼레의 시민 동상이 서 있었다. 차를 세우고 걸음을 옮기자 잔디 위의 이슬이 햇살을 받아 작은 별처럼 반짝였다. 풀잎을 밟을 때마다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났다. 세상에는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평생 듣지 못할 소리들이 있다. 인간의 마음도 그렇다. 가장 깊은 울림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순간에 찾아온다.
조각상 앞에 서자 오래된 이야기가 마음속에서 천천히 살아났다.
그들이 실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는 사실 그 자체.
어떤 인간의 선택은 결과보다 그 선택이 이루어진 순간에 이미 완성된다.
로댕은 그 순간을 청동으로 붙잡아 두었다.
나는 조각상들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위대한 용기는 두려움을 안고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에 태어난다.
레비나스는 인간의 윤리가 타자의 얼굴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혼자일 수 없다. 그 얼굴에는 고통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살아가고자 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인간의 역사는 잔혹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는 가끔 빛나는 장면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주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완전히 절망적이지 않다.
칼레의 아침은 그렇게 경건한 빛 속에서 서 있었다.
나는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오늘은 바다를 건너야 했다.
도버 해협을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배를 타는 길과 바다 아래를 지나는 길. 나는 바다 아래를 선택했다.
차를 기차에 실었다. 기차 칸 안에는 여러 대의 자동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중 바로 앞의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일곱 명쯤 되는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고 음식을 꺼내고 있었다. 빵과 과일, 음료수와 간식이 차례로 펼쳐졌다. 그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작은 잔치처럼 웃으며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이 따뜻해졌다.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다.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서로를 위해 빵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한 세대. 삼촌만 되어도 적이 되는.
영국의 포크스톤에 도착했을 때 낯선 좌측통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긴장이 이어졌다. 그러나 곧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모든 생각을 멈추게 했다.
화이트 클리프스 오브 도버였다. 햇빛을 받은 하얀 절벽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 절벽이 바다 위에 서 있었다. 그것은 마치 세월이 만든 침묵의 기념비처럼 보였다. 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잠시 겸손해진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런던으로 가는 중. 그리니치 천문대 이야기가 눈앞에 왔다. 인간이 별을 바라보며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한 곳. 사람은 시간을 재지만, 사실은 시간이 우리를 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으로 남았는지.
런던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회색 구름으로 가득했다. 공기에는 습기가 섞여 있었고 바람은 차가웠다. 나는 숙소 창가에 서서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침에는 칼레의 공원에서 조각상 앞에 서 있었고, 지금은 런던의 회색 하늘 아래 서 있다. 하루라는 시간은 이렇게 서로 다른 세계를 한 사람의 가슴 안에 담아 놓는다.
여행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칼레의 여섯 시민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질문은 아직 살아 있다.
사람은 언제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얼마나 인간다워질 수 있는가?
세상이 아직 완전히 절망적이지 않은 이유는, 어딘가에서 여전히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위해 조용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