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알프스
리옹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겨울의 해는 회색 빛 속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 있는 듯했고, 도시는 마치 말을 잃은 사람처럼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펼쳐진 도심은 예상과 달리 놀라울 만큼 단정하고 차분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긴 여정을 통과해 온 몸과 마음의 피로를 비로소 또렷하게 느꼈다.
리옹에 있는 에르메스 매장을 일부러 들렀다.
매장 앞에 도착했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어긋남이 먼저 느껴졌다. 내부는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커다란 유리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안내문도, 공지도 없이, 그저 닫혀 있는 상태로.
한동안 그 앞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듯 보였지만,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공간. 그 순간, 매장뿐만 아니라 그날의 리옹 전체가 깊은 겨울잠에 잠긴 듯 느껴졌다.
거리 위를 스치는 사람들조차 소리를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존재의 흔적을 최소화한 채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보였다.
이후 어렵게 찾아간 한인 식료품점마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리옹의 중심에서 조용히 밀려나듯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길 위에 올랐다.
샹베리를 향해.
우리가 좇던 화려한 빛은 결국 닿지 못한 채 저물었지만, 여행의 가장 또렷한 순간들은 언제나 계획의 바깥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샹베리에 가까워질수록, 알프스 산맥의 윤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수평선 위에 떠 있는 희미한 그림자처럼 보였지만, 거리가 좁혀질수록 그것은 점점 명확한 형체를 갖추며 다가왔다.
그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자리 잡은 거대한 의지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
산맥은 하늘을 가르며 서 있었고, 대지를 눌러 앉힌 채 움직이지 않는 힘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그 묵직한 기운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다.
몇 개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사이, 저녁의 어스름이 산을 천천히 감싸기 시작했다. 빛은 물러나고, 어둠이 조용히 자리를 채웠다.
알프스의 실루엣은 점점 더 깊어졌다.
도로 위 가로등의 희미한 빛 사이로, 창밖의 풍경은 하나씩 지워지고 있었다. 결국 남은 것은 검은 윤곽뿐. 그 단순한 형상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 적막은 절대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가에서 말하는 "있음이 없음이요. 없음이 있음이다" 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 빈공간 자체가 스스로 비어서 존재하는것보다는 꽉차서 비어있다고 표현해야 할듯 하다. 말로 표현하기엔 나의 문장력에 한계를 느낀다.
나는 그 앞에서, 인간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경계에 다가서고 있음을 느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선. 그 선 앞에서 나는 스스로의 크기를 가늠하게 되었다.
얼마나 작고,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그러나 동시에, 그 연약함 속에서도 인간은 멈추지 않는다. 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 다가가고,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밀어내려 한다. 그 모순된 욕망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샹베리의 숙소에 도착한 이후에도, 알프스는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낡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의 윤곽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떠 있었다.
그 거대한 형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마치 숙소 전체가 그 존재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적막은 무겁고, 날카로웠다.
호흡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순간.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의 무게가 마음 위로 내려앉았고, 그 압도적인 정적 속에서 나의 감각도 서서히 얼어붙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차를 세웠다.
길가에, 아주 조심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