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 두오모
토리노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오자 풍경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알프스의 차갑고 무거운 그림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이 도로와 건물, 사람들의 얼굴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제노바에 가까워질수록 공기는 달라졌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는 소금기 어린 바다 냄새가 섞여 있었고, 햇빛은 유리창 위에서 부서지며 눈부신 흔적을 남겼다.
제노바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다였다.
짙고 선명한 파란색의 바다는 도시를 품고 있었고, 수면 위에는 수천 개의 빛 조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결코 멈춰 있지 않았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흩어지며, 저마다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차창을 내리자 깨끗하고 짭짤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바람은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갔고, 햇살 아래 반짝이는 수면은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빛났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고가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아래로는 오래된 항구가 펼쳐졌다. 녹이 슨 철제 크레인, 색이 바랜 낡은 배들, 좁은 골목과 오래된 건물들이 뒤엉켜 있었다. 언덕 위로는 올리브 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가 검은 실루엣처럼 서 있었고, 은빛 올리브 잎들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잔잔하게 흔들렸다. 햇빛은 풍경 전체를 한 겹 얇게 감싸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오래된 유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이 왜 이곳을 지중해의 진주라고 부르는지, 그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노바를 지나 다시 길을 달리자 풍경은 조금씩 더 부드러워졌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 위로 낮은 언덕들이 나타났고, 그 위에는 포도밭과 올리브밭이 길게 이어졌다.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날카롭고 검은 선처럼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햇살은 한낮의 열기를 품고 있었지만 바람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차 안에는 음악 대신 바람 소리와 엔진 소리만 가득했다. 이상하게도 그 적막이 더 좋았다. 여행은 오래 쌓여 있던 생각들을 비워내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탑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탑은 햇살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곁의 두오모 성당과 세례당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함께 지켜온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치와 기둥, 벽면마다 새겨진 섬세한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건축물들은 여전히 우아했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사탑 앞 광장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누구는 탑을 손으로 떠받치는 포즈를 취했고, 누구는 탑을 밀어내는 척하며 웃고 있었다. 모두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같은 놀이를 공유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섞였다. 두 손을 뻗어 사탑을 떠받치는 자세를 취하자, 옆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낯선 사람들과 같은 장면 안에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즐거웠다. 피사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 사이에 짧고 가벼운 공감을 만들어내는 도시였다.
한참을 걷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골목 안쪽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햇빛은 천천히 기울고 있었고, 돌바닥 위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주문했을 때만 해도 작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은 기대를 오래 붙잡아두지 못했다. 파스타는 이미 식어 있었고, 스테이크는 지나치게 익어 질겼다. 소스는 평범했고, 음식에는 이탈리아 특유의 생기나 개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많이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실망이 하루 전체를 망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식사는 이 도시를 더 현실적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여행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 눈부신 풍경 뒤에는 별것 아닌 음식이 있고, 오래 기다린 명소 옆에는 평범한 골목과 무심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어긋남 덕분에 여행은 더 오래 기억된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순간보다,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빗나간 순간들이 오히려 더 진한 감각으로 남는다. 물론 오늘의 음식은 많이 부족했다.
해가 서서히 기울 무렵 다시 차에 올랐다. 피렌체는 아직 남아 있었다. 하늘은 짙은 파란색에서 조금씩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고, 언덕 위 작은 마을들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도시가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어쩌면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아직 닿지 않은 풍경을 상상하며 그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