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의 예술은 신앙의 색으로

CRIMSON RED

by 원성진 화가

2024/12/29/07:00


로마 지하철의 오렌지 라인, Cipro역 미팅 장소에 버스를 타고 도착했을 때, 아침 햇살도 딱 붙어서 뒤 따라오고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시내 투어는 되도록이면 버스를 이용했다. 지하철은 땅 속이라 주변을 볼 수 없어 싫었다. 근처 카페에서 급하게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며 바티칸 투어를 준비했다. 이곳에 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탈리아의 달콤한 크로와상과 강렬한 에스프레소의 조화는, 마치 곧 마주할 바티칸의 예술과 신앙처럼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가이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가장 큰 이야기를 품고 있는 바티칸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바티칸 시티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입구에서 본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의 조각상은 표지판처럼 다가왔다. 종교와 예술, 그리고 역사가 완벽히 융합된 세계로 들어가는 국경이었다. 이곳은 인간이 창조한 아름다움의 정점과 신에 대한 숭고한 헌신이 녹아든 장소다. 오늘의 투어는 바티칸 박물관에서 시작해 회화관, 시스티나 성당, 그리고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매 순간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

바티칸 박물관은 인류가 창조해 낸 위대한 유산을 마주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미술품과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이곳은 수집된 작품의 공간이 아니라, 신앙과 예술, 그리고 역사가 어우러진 거대한 이야기의 장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얼떨떨하게 두리번거리다 끝난 듯하다.

입구에서 대기열을 지나며 벨베데레 궁전으로 들어가는 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벽과 천장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처음 마주한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품이었다. 미켈란젤로가 발굴팀을 이끌었고, 티치아노와 루벤스가 창작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라오콘 군상’이 생생한 자태로 나를 맞이했다. 헬레니즘 조작의 정수인, 대리석의 이 작품은 아이네이아스의 시와 같이,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이 뱀에게 휘감겨 고통받는 모습을 극도로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후 발견된 조각으로 수정된 팔 부분이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되지만._뱀인가?_ 조각상은 살아있었다. 분명히. 라오콘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들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살아 있었다. 이 작품은 고대 조각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고통과 운명이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예술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된다는 가이드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까지 너무 큰 건축물들만 보고 와서인지 생각했던 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면 아주 거대한 작품이다. 물론, 근자에 많은 논쟁은 이어지고 있지만, 1500년이나 묻혀 있던 조각상이 발견한 르네상스 시대는 화려한 부활을 했다고 판단된다. 여기서 잠시 합리적 의심을 해보면, 유행은 시간을 두고 반복될 수도 있지만, 예술의 표현력이 1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두고, 다시 되풀이되었다? 생각해 볼 일이다.


지도 갤러리는 벽 전체를 뒤덮은 수 십여 개의 고대 지도가 전시되어 있는 긴 복도였다. 이곳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지도 속 이탈리아 반도는 세부적인 지형과 도시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었고, 당시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지도가 단순한 항해의 도구가 아니라, 신앙과 예술적 감각이 결합된 걸작이라는 사실이었다.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계를 이루는 산맥, 강, 그리고 바다까지도 예술적 섬세함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는 지도가 가지는 기능으로서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의 창조물을 기념하기 위한 작업처럼 느껴졌다. 대동여지도나 이런 지도가, 물론 대항해 시대 나침반이나 이런 장비들이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 그렸을까 신기하기만 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과거의 예술품과 유물을 통해, 인간이 이룩한 창의성, 신앙, 그리고 역사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각 갤러리를 거칠 때마다 이 위대한 유산들의 일부가 된 듯한 경험을 했다. 바티칸 박물관을 지나 회화관으로 가면서, 이곳 박물관은 신과 인간이 예술과 신앙을 통해 나눈 대화의 기록이었고, 그 기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대화는 반복되지 않는다. 같은 대화는 있을 수 없었다. 시간에 따라 여행객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했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바티칸 회화관(Pinacoteca Vaticana)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전통적인 회화의 정수를 감상하기 위한 여정에 들어섰음을 직감했다. 이곳은 예술가들이 신앙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남긴 영혼의 흔적들이 모여 있는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넓고 고요한 전시실은 빛을 완벽하게 조율하여 캔버스의 색채와 질감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라파엘(Raphael)의 작품들이 회화관의 중심을 차지했다. 라파엘이 표현하는 마리아의 얼굴에서 신성과 인간성이 공존하는 듯했다. 그녀가 떠 있는 듯한 구도도 신비롭고. 빛을 통해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었다. 진정한 사랑은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존재를 존중하고 자유롭게 하려는 노력이다. 성모가 아기 예수를 보호하듯, 우리 모두는 사랑을 통해 서로를 지켜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또 다른 라파엘의 걸작인 ‘성모의 대관’은 천상과 지상의 교감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천상에 앉은 성모의 모습 아래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성인들의 자세와 표정은 경건해 보였고, 대비되는 색들은 신비로운 성스러움을 만들었다.

'아테네 학당’은 특히 압도적 크기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심에 서서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인류의 지적 유산을 기념하는 듯했다. 미켈란젤로는 상상 이상으로 크게 그려져 있었고, 인물들의 세밀한 표정, 정교한 자세, 그리고 건축적 배경은 하나하나가 완벽했다. 이렇게 큰 작품일 줄은 몰랐다.

또한 사방에 그려진 그림들도 충격으로 와닿았다.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 나누는 교류는 나에게도 이어지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했다. 철학과 예술이 만나, 인간의 지성과 감각을 동시에 깨우는 순간인 듯하다. 색채와 명암의 대조, 그리고 인물들의 표정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카라바조(Caravaggio)의 작품들 앞에 선 순간, 내 안의 감각이 새로운 차원으로 깨어났다.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그림은 영혼 깊숙한 곳을 찔렀다.

그의 캔버스는 빛과 어둠의 전장이었다. 극적인 명암의 대비는 시각적 기교를 넘어, 구원과 절망, 선과 악이 빛과 어둠이라는 표현으로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인간 내면의 심연을 드러내는 도구였다. 그림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림 속 그리스도의 육체는 죽음을 상징하는 고요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피폐한 살결의 질감 하나하나가 마치 손끝으로 느껴질 만큼 생생했고, 그 빛은 단순히 육체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어딘 가에 존재하는 신적 구원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이 하나의 성스러운 현존이라는 사실까지 생각이 도달했다. 상투적 표현이지만, 카라바조의 붓끝에서 태어난 이들은 마치 그림을 뚫고 나와 현실 속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인물들은 현실의 한복판에서 신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사실감 느껴지는 손톱, 상처 난 발, 그리고 말하는 눈빛과 눈의 모습까지, 그것들은 인간의 본질이었다. 빛은 늘 어둠 속에서 피어 나왔고, 그 빛은 고통을 넘어 구원을 상기시켰다. 그랬다. 빛은 어둠의 색이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죄악과 구원을 동시에 직시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카라바조라는, 그의 불안한 인간성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죄악에 찌든 사람이었으며, 그의 삶은 어둠으로 점철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가 그린 구원의 빛은, 그래서 더 처절했고 깊었다. 그는 벌 할 수 없는 악인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빛은, 숭고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고통스럽다. 그리고 다시 찾게 된다. 그것은 인간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그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직면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직면의 끝에서, 그는 숭고의 빛을 낸다.

나쁜 남자의 매력이란 이런 것일까? 그의 그림 앞에서 나는 무너졌고, 동시에 새로워졌다. 그것은 한 예술가가 초대한 어둠과 빛의 서사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경험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악인이었지만, 그 악인의 손을 통해 신의 빛을 훔쳐왔다. 그리고 나도, 그 훔쳐온 빛을 보고, 빛에 매료된 또 하나의 죄인이 되어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작품 앞에 선 순간, 익히 알고 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실재하는 그의 붓자국은 그동안 접했던 모든 평론과 자료를 지워 버렸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예상과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미완성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의 천재성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레오나르도의 사고의 흔적이었다.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의 신체는 완결된 형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고뇌를 가장 생생하게 전달했다. 심오한 내적 갈등이 깊게 배어 있는 얼굴에는 피로감과 철저한 고독이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그림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내 생각이 교육에 이미 세뇌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림 속 근육의 긴장감은 다빈치의 해부학적 통찰을 완벽하게 보여 주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갈애의 절정인지, 해탈의 경지 인지, 포기의 모습인지 모를 모습으로 있다. 그리고 몸의 일부는 거칠게 미완으로 묘사되어 있다. 미완성 작품인 데도 이렇게 강렬할 수 있다. 미완성이라는 점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다 빈치의 창작 과정과 그의 천재적 사고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었다. 물론 내가 그의 천재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완성된 형태의 아름다움은 관람자로 하여금 결과에만 집중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미완성된 작품은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완성된 형태보다 이 과정의 흔적이 더 진실하게 느껴지며,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삶은 완성될 수 없는 여정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불완전함과 고뇌는 성장의 흔적이다.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그 과정 속에서 인간 다움과 진정한 자유를 발견해야 한다. 철학자들 마다 표현의 방법도 달랐다. 논문으로 집필한 철학자, 말로 설파한 철학자, 소설로 표현한 철학자 등등. 그는 그림으로 철학을 말하고 있었다. 그의 붓자국은 마치 철학적 사유의 결과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남은 선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이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미완성의 불완전함 이야말로 이 작품의 본질이었다.

그 본질은 평생 간직할 또 하나의 성스러운 충격으로 남았다.

예술은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직면하고 성찰할 기회를 주는 힘을 가진다. 바티칸 회화관은 인간의 신념과 내면의 투쟁을 탐구하는 영적 여행의 장소였던 셈이다. 이곳을 걷는 동안 느꼈던 감동은 오래도록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삶의 새로운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시스티나 성당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교황님을 선출한다고 한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미켈란젤로의 걸작을 마주할 준비를 하면서 기대에 부풀었고, 성당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어리둥절한 혼돈감이 온몸을 눌렀다. 성경 속 이야기를 직관적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공간에 압도되었다. 단순한 직사각형 구조였지만, 벽과 천장 전체가 그림으로 뒤덮인 이 공간은_물론 다른 공간도 다 같았지만_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발소리도 이 공간의 경건함을 깨뜨리지 못했다. 관람자 모두가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시스티나 성당의 또 다른 면을 장식한 ‘최후의 심판’은 천장화와는 다른 차원의 강렬함을 선사했다. 심판이라는 것은 받는 자에게 늘 긴장을 만든다. 이 작품은 천사와 악마, 구원받은 영혼과 심판받는 자들이 뒤엉킨 혼란 속에서도 완벽하게 분리된 구도를 보여주었다. 심판을 내리는 그리스도의 표정은 단호함을 품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심판을 알리는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있었고, 그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옥으로 가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몸짓은 믿은 자와 믿지 않은 자의, 또는 인간의 죄와 구원이란 성경을 무섭게 가르치고 있었다.

시스티나 성당의 작품들은 영화 스크랩처럼 장면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클라이맥스에서 아주 큰 화면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시스티나 성당을 나서며 신앙과 인간 믿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했다.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들을 통해 던진 질문들은 종교적인 경계를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와 한계, 그리고 구원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시스티나 성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성한 대화의 장 이자,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적 한계를 넘어선 성취의 상징이었다. 이곳에서 느꼈던 경외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티칸 투어의 마지막은 성베드로 대성당이었다. 대성당의 거대한 문을 통과하자, 거대한 돔 천장이 하늘처럼 펼쳐져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은 대성당의 중심이자 정수였다. 그의 의도대로 돔은 위엄과 신성함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었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베르니니의 발다키노(Baldacchino)였다. 거대한 청동 기둥이 성베드로의 무덤 위를 지키고 있는 발다키노는 신과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로 천상으로 가는 가마처럼 느껴졌다. 그 조각은 성스러움의 무게를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베르니니의 손길은 무거움을 우아함으로 승화시켰다.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à)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따뜻하고 매끄러운 대리석 속에 담긴 성모와 예수의 형상은 고요함과 슬픔,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성함을 온전히 품고 있었다. 예수의 늘어진 몸은 죽음의 무게를 담고 있었고, 성모의 얼굴에는 사랑과 신성함이 절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설정된 존재의 한계 상황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래도 성모는 인간의 비극을 넘어선 어떤 숭고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작품을 마주하며 나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인간의 손이, 단단한 대리석에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을까? 그것도 약관의 나이에. 고통이 단순히 비극에 머무르지 않고, 신성한 경지로 승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피에타는 신앙과 미술, 대리석과 천재가 만들어낸 미스터리다.


바티칸 시티를 둘러보는 하루는 그 시절 예술과 종교가 분리될 수 없었음을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펼쳐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라파엘로의 방을 채운 정교한 프레스코화들, 그리고 기억에도 담지 못한 수많은 조각들까지.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창의성과 신에 대한 헌신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이곳에서 예술은, 신성한 메시지를 담아 영혼을 울리는 역할을 했다. 특히, 바티칸의 예술에서 느껴지는 미학적 깊이는 조형의 구조적 아름다움과 완성도에 갇히지 않았다. 그것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종교 부활의 신학적인 체험이었다. 대리석의 섬세한 굴곡과 색채의 조화는 감각을 자극했지만, 그 이상의 어떤 본질적 믿음을 향해 나아가게 했다.


바티칸을 떠나며, 이곳이 과거의 예술이 보존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빛나는 종교의 뿌리임을 확인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이 남긴 유산은 바티칸의 높이와 깊이를 증명하는 증거였다. 또한, 바티칸은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창의성을 통해 초월적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공간으로 중세와 현재를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곳이었다. 평생 간직할 미학적 깨달음의 절정으로 남을 순간은 피에타를 마주했던 때 일 것이다. 갖지 못한 재능에 대한 부러움도 있겠지만, 넘을 수 없는 절벽을 마주한 숭고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근처 유명한 식당에서 오랜 시간 기다려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다시 로마의 거리로 나왔다. 연말의 로마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 명품 매장과 세련된 카페, 거리 곳곳을 채운 여행객들의 웃음소리가 도시 특유의 활기를 더했다.

짧은 하루였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로마는 나를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길 위로 이끌었다. 내가 걸었던 길은 단순한 거리의 경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걷는 여정이었다. 로마는 늘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 현재는 언제나 지난날의 흔적들로 짜여 있다. 그곳에서 나는 역사의 한 조각이 되어, 이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조용히 귀 기울여 들었다.

로마에서의 하루는 긴 시간이다. 결코 양적 하루만이 아니라는 것을.


바티칸, 빛과 신의 대화


대리석 바닥 위로, 숨결처럼 남은 발자국들.

시간은 천장의 금빛을 타고 흘렀다.

라오콘의 몸부림은 대리석 속에 갇힌 인간의 운명,

고통마저 조각이 되었다.


성체 위로 천상과 지상이 겹쳐질 때,

그림은 색이 아니라 기도였다.

어둠과 광명이 교차하는 그 순간,

화폭 위에서 걸어 나온 신.


바티칸의 영역에서는,

시간도 신도 그림이 되었다.

그 앞에서 침묵했고,

침묵이야 말로 가장 깊은 대화였다.


바티칸 회화관, 빛의 성전

라파엘로의 붓은 구름을 가르고

시스티나의 성모를 띄워 올렸다.

카라바조, 빛과 어둠의 사제여,

인간은 피 흘리며 기도한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침묵한다.

완성되지 않은 신의 조각,

그 결핍 속에서 진리가 깃들었다.

다 빈치의 미완성 선율


그의 손은 심판의 날을 그리지만

그 끝에는 구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신과 인간의 투쟁,

그 치열한 붓질 속에서 피어난 빛. 미켈란젤로


빛과 색이 서로를 껴안으며

예술의 시간도 멈추지 않는다.

믿음을 노래하는 성스러운 공간.

바티칸에 새겨진 보석


신과 인간의 손끝 사이


어둠과 빛이 처음 나뉘던 날,

신의 숨결은 천장 위에 머물렀다.

창조의 손끝이 아담을 부를 때,

흙은 숨을 얻고, 인간은 신을 닮았다.


시간은 구원과 심판 사이에 멈추고,

그리스도의 시선은 영원 속을 꿰뚫는다.

부름 받은 자와 버려진 자의 외침이

벽화 속에 새겨진다.


그러나 그 손끝은 닿지 않았다.

신과 인간 사이,

찰나의 거리에

믿음이 있었다.


영원의 석상 앞에서


청동 기둥은 바람을 휘감고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선다.

움직이지 않으나 흐르고,

고요하나 노래하는 신의 손길.


돔은 하늘을 품고,

빛은 돔 위에 머문다.

시간을 두드리며 울리는 발걸음,

성스러움의 무게가 공기 속에 스민다.


대리석 속 슬픔이 잠든 곳,

어머니의 품에 안긴 무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사랑이 마른 눈물로 남긴 형상.


여기, 돌은 돌이 아니고

예술은 인간을 넘어선다.

손끝으로 빚어낸 영원의 순간,

믿음과 창조가 맞닿은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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