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아름다움은 태양빛이 색을 태웠다

DARK BROWN

by 원성진 화가

2024/12/31/10:00


시간을 거슬러 가는 발걸음으로 걷는 새벽의 로마는 고요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하늘 아래, 한껏 부푼 마음으로 트레비 분수를 다시 찾았다. 분수는 어김없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른 시간 덕분인지 분수 주변은 몇몇 여행객들로만 조용했다.

시간의 초입에 서면,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처음으로 세상을 발견한 사람처럼 느낀다. 그러나 그 감정은 착각이 아니다. ‘다시’ 찾은 분수 앞에서도 ‘처음’의 감정이 살아나는 이유는, 우리가 반복을 통해서만 진정한 변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원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흐르되, 돌아온다.


분수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분수와 우리 사이에는 얇고 선명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마치 로마가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신비로움을 선뜻 내어주지 않으려는 듯했다. 한쪽 옆에서 동전을 던지며 다시 로마로 돌아오기를 염원했다. 분수에 떨어진 동전이 파문을 일으키는 순간, 그 파문은 물 위에서 마음 깊은 곳까지 와닿았다. 파문은 기억의 형상이다. 그것은 사라지는 듯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인간이 소원을 빌며 던지는 동전은 시간을 향한 작은 저항이다. 물결은 그것을 삼키지 않고, 되새긴다.

로마가 품고 있는 고대의 시간들이 우리의 현재와 교차하는 것 같았다. 또한 물속에서 찾을 수 없는 내가 던진 동전은 로마의 전설에 스며들어, 내 마음 한 조각을 고이 간직했을 것이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에스프레소 한잔의 여유를 즐긴 후, 진실의 입을 보기 위해 걸었다. 하지만 이른 시간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입구에서 트릭을 넣어 사진을 찍으며 만족했다. 문이 닫혀 있을 때, 인간은 오히려 그것을 더 열렬히 갈망한다. ‘닫힘’은 부재가 아니라, 사유의 여백이다. 진실의 입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지 않는 아침, 우리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그 입을 찾아야 한다.

고대 로마인들이 이 돌조각을 두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진실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우리에게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


바로 옆 길로 접어들어 대전차 경기장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길 위에는 여전히 고대 로마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수많은 전차와 말발굽 소리로 가득했을 이 도로가 지금은 아침의 정적 속에서 쉼 없이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았다. 길은 늘 그 자리에 있으나 걷는 이는 다르다. 우리는 모두 ‘길’ 위를 걷지만, 같은 길은 없다. 땅이 기억하는 것은 발자국과, 그 발걸음의 무게다. 존재는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이 새기며, 이 세계 위를 지나간다. 과거의 발걸음이 남긴 흔적과 지금 내가 내딛는 걸음은 모두 같은 길 위에 있지만, 그 순간은 영원히 다르다.


마침내 콜로세움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햇빛에 비친 그 위엄 있는 모습은, 인류가 축적한 시간의 예술이었다. 로마의 건축은 의지의 조형이다. 인간이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남기려 했던 ‘형태’의 의지. 그 의지가 오늘의 우리에게 감탄이라는 감정을 일으킨다. 감탄은 시간의 가장 아름다운 변주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을 거슬러 그 시대를 체험하고 있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어제와 오늘이 정말 다른 건가?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시대 속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흐른다고 느낄 뿐이지. 시간은 인간의 의식이 빚어낸 가장 거대한 환상이다. 그 환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사랑하고, 사라진다. 그러나 진실한 순간은 언제나 ‘지금’이다. 지금이라는 무한한 찰나에 모든 과거와 미래가 포개진다.


콜로세움에 서서 12월의 맑은 오전 햇살을 마주한다. 눈부신 빛줄기가 오래된 돌기둥과 아치 사이로 쏟아져 내려오며, 무언가 신성하고도 잔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빛은 언제나 잔혹하다. 그것은 감춘 것을 드러내며,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함께 비춘다. 고통이 없는 아름다움은 표면의 장식에 불과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잔혹함을 품은 빛이다.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씨다.’, ‘죽기 싫은 날씨다.’라는 생각이 나를 채웠다. 이 햇살은 모든 것을 드러낸다. 깊은 균열, 날카로운 가장자리,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시간의 흔적까지. 그러나 그런 잔인한 사실마저도 이 빛 아래에서는 아름답게만 보인다.

햇살 속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푸른 하늘은 모든 것을 담담히 내려다보는 것처럼 차분하다. 이 거대한 원형 경기장 안에는 예전의 비극과 환희가 뒤엉켜 있다. 잔혹한 검투사들의 싸움, 몰락해 가는 제국의 흔적, 그리고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서 있는 시간의 흔적들. 비극은 역사가 인간에게 남긴 가장 깊은 교사다. 승리의 환호보다 패배의 침묵이 오래 남는 이유는, 고통 속에서만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역사의 무덤이면서도 생명의 박물관이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느껴지는 돌바닥의 질감은 그 자리에 서 있던 수많은 발걸음의 무게를 담고 있었다. 존재란, 세계 위에 남긴 발자국의 흔적이다. 그것이 사라진다 해도, 세상은 그 압력을 기억한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이 땅 위에는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 환호와 비명이 뒤섞인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돌기둥 하나하나마다 남아 있는 깊은 흠집과 부서진 흔적들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그리고 역사의 힘이 만들어낸 조각들이었다.

이곳에서는 계속해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햇살은 여전히 따스했고, 하늘은 한없이 깊었다. 고개를 든다는 행위는 곧 희망을 품는 일이다. 인간은 언제나 절망의 바닥에서도 하늘을 본다. 그것이 생의 본능이다. 인간의 시선은 늘 위를 향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스스로보다 큰 존재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하늘은 그 갈망의 상징이고, 건축은 그 욕망의 형상이다.

햇살은 하늘에서 직선으로 내려오기보다는 사선으로 스며들어, 이 경기장의 관중석에 서 있는 나를 감쌌다. 한없이 푸른 배경 위로 콜로세움의 둥근 아치가 조화롭게 이어져 있었다. 이곳의 하늘은 고대 로마인들에게도, 중세를 지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같은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콜로세움은 단지 잔혹한 역사의 무대였던 것만은 아니다. 이곳은 인간이 가진 창조의 힘과 파괴의 본능이 함께한 곳이었다. 창조와 파괴는 서로의 그림자다. 인간은 무너뜨리기 위해 세우고, 세우기 위해 무너뜨린다. 문명은 그 반복의 리듬 속에서 진화한다. 영화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수한 로봇들이 파괴되는 장면에서 또 다른 창조를 기다리듯. 창조와 파괴는 같은 단어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는 이 경기장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만들어낸 긴장감은 눈부신 햇살에 의해 상쇄되었고, 그 균형은 마치 인간의 본성과도 같았다. 인간의 마음에도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쪽도 빛을 잃는다.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없는 세계에서, 균형이야말로 진실이다.


콜로세움의 중앙, 한때 검투사들의 결투가 벌어졌던 장소는 이제 완전한 침묵 속에 있었다. 침묵은 소리의 부재이지만, 소리의 기억이기도 하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공기는 그 진동을 품고 있다. 인간의 마음도 그렇다. 그 침묵은 모든 소리를 담아내는 깊이 있는 고요함이었다. 여러 소리의 파장이 만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공간처럼. 침묵이야말로 가장 깊은 소리다. 그것은 모든 소리를 삼키고, 다시 되돌려준다. 이 침묵을 들어야 한다.


콜로세움 2층을 한 바퀴 다 돌았다. 벽의 틈새 사이로 빛이 흘러드는 모습을 보았다. 그 빛은 마치 과거로 통하는 문 같았다. 과거는 빛처럼 스며들어 현재의 틈새에서 우리를 비춘다. 과거를 본다는 것은 곧 현재의 자신을 보는 일이다.


콜로세움의 아치 하나하나는,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창문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이곳이 도시의 심장이었음을 알았다. 문명은 심장을 가진다. 그것은 권력이 만들어 내지만, 인간의 열정이 뛰던 자리다. 당시의 로마인들에게 이곳은 오락의 장소뿐만 아니라, 제국의 권력과 영광을 상징하는 중심이었다.


지금, 이곳은 역사의 무덤이자 생명의 박물관이었고, 파괴이자 창조이고, 과거이자 미래가 되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시간을 초월한 인간의 흔적을 느낀 것이었다. 콜로세움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이었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한계를 마주하기 전까지 나만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그 길 위에서 빛을 받아들이며,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겠다. 인간은 결국 ‘자기 서사’를 쓰는 존재다. 시간의 강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이 충동이야말로, 예술의 시작이다.


콜로세움을 뒤로하고 다시 조국의 제단 쪽으로 길을 걷는 동안 작은 공원과 유적지의 모습에서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일상처럼 다가왔다. 오랜 세월의 건축물의 일부였던 돌들이 아무렇지 않게 공원의 테이블로 있을 정도였다. 과거의 잔해는 일상의 일부가 된다. 그것이 문명의 방식이다. 우리는 늘 잔해 위에서 살아간다.


애써 찾아온 매장에는 원하는 옷이 없어서 다시 며칠 전 갔던 그 의류매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의류를 구매하고, 숙소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해가 지고, 로마 공항으로 오늘 도착하는 일행을 마중 나갔다. 일행은 숙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혼자 나갔다. 공항은 아주 아담했다. 로마의 공항이 이렇게 작을 수 있나 싶었다. 로마는 육로와 바다를 통해서도 접근할 수 있는 도시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지리적으로 대륙에 속한 한국이지만, 섬나라 같은 느낌으로 살아온 세월이 못내 안타깝다.


콜로세움의 빛


12월의 햇살이

콜로세움의 아치 사이로 흐른다.

깊은 균열 속으로 스며들어

무너진 돌기둥 위에 시간을 새긴다.


빛은 잔인하다.

숨겨둔 상처를 드러내고

역사의 틈마다 어둠을 밀어낸다.

밀려 나온 어둠이 여기 있다.


발 밑의 돌바닥은 기억하고 있다.

승리와 패배, 환희와 절망,

붉게 스며든 시간의 무게를.

한때 생이었으나 침묵이 된 이야기들.


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풀처럼

흔적을 남기며

바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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