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상처와 우울증과 살기 위한 자살.
최근 백세희 작가의 작고 소식을 듣고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바로 눈앞에 뒀던(진짜 침대에 누우면 바로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을 드디어 폈다.
우울증 대부분의 경우는 어린 시절 결핍과 맞닿아 있다.
직접적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저 깊은 기저에 남아있던 결핍이 세상의 풍파에 도드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또한 완벽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결함이 1도 없는 완벽한 어린 시절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몇 프로나 될까..)
눈에 띄게 금 간 부분은 3군데 정도가 있는데
유아 시절 동네 초등학생 고학년쯤 된 오빠들이 내 팬티를 벗기려고 했던 게 하나고,
또 하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유괴될 뻔한 경험.
그리고 또 하나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의 상처가 있다.
첫 번째 경험은 만 3세 정도 무렵의 일이라 흐릿한데
그 기억이 내 유치원 시절 내내 거북하고 불편한 잔상으로 남아있던 것까지 기억난다.
태초의 인간 본성에 '성'에 대한 무언가 지켜져야 할 개념이 있는 느낌이다.
두 번째 경험은 큰 탈 없이 무사히 기지로 빠져나왔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1학년임에도 이걸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혼날 것 같은 두려움에
중학생인가 고등학생 때 첫 고백을 했었다.
이 경험은 사람을 사랑하지만 인간 본성을 근본적으로 믿지 않는 나의 한 부분을 만들었을 것 같다.
세 번째 경험은 세상에 온전히 100%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나 자신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이외에도 어린 시절의 자잘한 실금들은 무수히 많겠지만
파편으로 깨진 적은 없으니 겉보기에는 온전한 어찌 보면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내가 튼튼한 항아리라 안 깨지고 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0~10살 사이의 경험과 기억이 얼마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무서울 정도다.
365일 24시간 부모가 케어를 하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이 부모에게 깨어진 항아리도 무수히 많으니..
예전에 본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가 떠오른다.
20대 캐나다 여성의 안락사였는데
어릴 적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이 그녀의 삶을 죽음보다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동의 하에 꽃이 피기도 전에 진 그녀의 인생이
너무나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어딘가에서 본
우울증로 인한 자살은 병사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터널 선샤인에 나온 기억 삭제 기술이 깊은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진짜 존재하면 좋겠다.
두서없이 나열했다.
인간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인간의 정신은 왜 이리도 안쓰럽게 설계되어 있을까.
이러니 사랑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