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칼바람이 불었다.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22년 하반기 조짐이 보였다.
우리 회사도 구조조정을 했다.
호시절의 자신감으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했던 탓이었다.
모든 사업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어떤 사업은 엥? 갑자기 이런 사업을 한다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업도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왜 스타트업이겠는가. 빠른 실행 아닌가.
이미 사업팀이 꾸려지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상태(이미 뭔가 팔아보고 있기도 함)에서 이제 마케팅을 하자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식으로 일이 빠르게 돌아갔다.
코로나의 작은 버블이 가라앉고 우리 회사도 매출이 안 나오는 사업부를 정리했다.
구조조정. 직장인이, 회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비극 중 하나가 시작됐다.
구조조정 비율이 있었고 비율은 반의 반도 안될 정도였기에
마케팅 부는 괜찮을 줄 알았다.
우리는 이미 채용 공고가 여러 개 떠있었고 그것만 클로즈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표님과도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근데 구조조정 전날 갑자기 대표님 호출이 왔다.
회사의 모든 부서가 하니 마케팅부만 안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갑자기 따귀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퇴사 예정이던 직원이 둘 있으니 이 사람들로 대신해 달라고 했다.
언제나 내 이야기면 열에 아홉은 말씀대로 하세요 라는 대표님이 이번엔 완강했다.
비율 미달이라고.
도저히 정할 수가 없었다. 빠른 의사 결정이 내 주특기인데 결정 장애가 온 것 같았다.
그렇게 단박에 이 사람이요 떠오르는 팀원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 팀원들은 하나 같이 선했고 다들 열심히였다.
이제까지의 성과 평가와 정성적, 정량적 자료와 코멘트를 공유했다.
대표님에게 칼자루를 넘긴 셈이었다.
빠르게 한 명이 정해졌다. 애교가 많아 속으로 예뻐라, 귀여워라 하던 팀원.
이 때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래 침몰하는 배에서 물건을 내리지 않으면 배에 있는 모든 게 가라앉아 버리는 거라고.
모두가 이 일에 책임이 있는 거라고.
하지만 멍청한 원망들도 들었다.. 왜 반년 전에 내가 숫자가 흔들린다. 보수적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은 사뿐히 건너뛰었는지.
왜 나는 더 강경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물론 내가 용한 점쟁이도 아니고.. 사업이 접힐 일은 없었겠지만)
왜 자존심과 자존감을 바닥 치는 일을 그 친구가 겪게 했는지. 내가 팀원 하나 못 지키는 무능력자였나. 회사에서 내 입지가 고작 이건가. 등등
못난 리더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일자리를 함께 찾아봐주는 것뿐이었다.
그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소개한 면접 자리들보다 더 크고 안정감 있는 회사로 입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구조 조정을 안 한 부서가 두 갠가 있었다. 물론 내 조직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비율을 논할 정도의 사이즈는 되었다.
대표님.. 나한테 했던 얘기랑 다르잖아요.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었다.
나에게도 화가 났다.
얼마 전 그 친구에게서 안부 톡이 왔다. 보고 싶다 생각이 많이 난다는 말에
취업을 잘했다는 걸 알면서도 먼저 안부 물을 용기가 없었는데 고마워서 또 눈물이 났다.
아직 흉이 크게 지기 전에 연고가 발라졌길 바란다.
나도 흉이 생겼다.
팀원들을 더 사무적으로 대하고 곁을 안 내주는 리더.
상향 리뷰를 받고 아.. 구조 조정이 내게도 상처가 됐구나. 내 흉은 연고가 없을 텐데 어쩌지.
또 조직원에게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던 대표님. 대표님 흉은 누구보다 클테다.
원망을 소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