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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간 Feb 03. 2022

줍깅하며 걸어본 인천 둘레길 11코스

봉사하며 맡은 인천의 향기

 

 1년에 봉사를 얼마나 하는가? 솔직히 나는 봉사를 그리 자주 하지 않았다.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한 봉사, 필요에 의한 봉사 외에 마음에서 우러나서 했던 봉사는 거의 없던 것 같다. 봉사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뿌듯함과 행복한 감정을 느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봉사에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반성하는 마음과 함께 봉사 후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답답한 일상에 지쳐 걷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인천 둘레길 11코스 + 줍깅이다. 

 



 '줍깅' 혹은 '플로깅'이라고도 불리는 이 신조어는 스웨덴어의 줍다(plocka up) 영어단어 달리기(jogging) 합성어인 ‘플로깅(plogging)’ 봉사활동으로 걷거나 뛰면서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뜻하는 단어이다. 운동효과와 더불어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어 인기 있는 행위로 떠올랐다. 요즘 운동과 환경정화에 모두 관심을 두고 있는 나에게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고 싶은 둘레길도 있던 찰나 줍깅을 바로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인천 둘레길 11코스에 발을 내디뎠다. 


 인천 둘레길 11코스는 도원역에서 배다리 헌책방을 지나 동인천역까지 가는 코스로 재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옛 골목을 돌며 추억하는 코스이다.

 도원역→우각로 문화마을 구 전도관→인천세무서→금창동주민센터→창영초등학교→배다리 헌책방거리→송현근린공원→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동인천역 



 줍깅을 위한 쓰레기봉투, 집게, 추운 겨울의 보온을 책임져줄 장갑까지 야무지게 챙기고 길을 나섰다. 도원역에 나서자마자 보이는 쓰레기들, 평상시에는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걷기 때문에 주위를 살피며 걷지 않았으니 알 수 없었다. 자연스레 바닥을 보며 걸으니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쓰레기가 눈에 들어왔다. 자주 걷던 길들에 이렇게 쓰레기가 많았나 생각하며 몇걸을 떼지도 못하고 쓰레기를 주워나갔다. 최근에 버려진 것 같은 깨끗한 쓰레기, 얼마나 오래된 역사를 가졌는지 모를 형태 없는 쓰레기까지 소재, 목적, 행방이 묘연한 다양한 종류의 것들이 바닥 한구석에서 외면받고 있었다. 땅속에 묻혀버린 그것들을 꺼내어 내가 가진 쓰레기봉지에 담았다. 가끔 너무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고집이 세진 녀석들은 담을 수 없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나는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넓은 하늘을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드넓게 수놓아진 건물들을 보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풍경을 감상하는 행위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번에 이 쓰레기들을 보고 정리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사랑하는 풍경들이 사라지겠다고 생각했다. 드넓은 푸른 하늘도, 나무도, 초원도 모두 병들어 저마다의 특징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내가 오늘 한 이 행위는 환경 지킴에 큰 도움이 되리라 다짐하며 걸음을 옮기고, 또 옮겼다.



 굴을 지나 걷다 보면 우각로 문화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은 개항기 시절 조계지에서 밀려난 조선 사람들이 몰려 형성된 마을로 4월이면 재개발이 시작된다고 한다. 알록달록 외관을 가진 아름다운 집들과는 다르게 사람 사는 느낌 없는 빈집이 대부분이라 사실 지나가기에 조금 무섭기도 했다. 개 짖는 소리, 새가 날아다니며 반겨주기는 하였지만, 사람이 주는 생기를 잃어버린 골목은 아주 쓸쓸해 보였다. 이 골목은 드라마 미세스캅, 보이스를 촬영한 곳으로 드라마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잘 드러났다. 이 골목은 꼭 낮에, 혼자가 아닌 2명 이상 함께 걷는 것을 추천한다. 



 다음 코스인 인천 세무서를 지나 바로 앞에 있는 창영복지회관과 여선교사 합숙소를 둘러보았다. 여선교사 합숙소는 19세기 미국의 선교사가 조선인의 기독교 포교를 위해 숙소가 필요해 지어진 건물이다. 미국의 저택같이 생긴 이 건물은 이국적인 느낌이 예뻤다. 오래된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고풍스러운 듯 차분한 건물을 바라보며 역사의 현장을 상상해보며 길을 나섰다.



 위의 리본은 인천 둘레길을 표시하는 표지판이다. 처음에는 눈에 잘 안들어와 지도만 보며 걷다가 저 리본을 발견하곤 저 리본만을 찾아 따라다녔다. 걷고 또 걸으니 보이는 금창동 주민센터가 보였다. 아직 반도 오지 않았지만 조금씩 힘들기 시작했다. 운동 좀 할걸 짧은 한숨과 함께 땅이 아닌 하늘을 보며 기지개를 피고 다시 출발했다.


 

 다음 행선지인 창영초등학교를 가기 전 인천의 3.1 운동 발상지를 기념하기 위해 꾸며놓은 공간이 있었다. 인천의 개항기 시절 역사를 정리해놓은 장소도 있었고 3.1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귀여운 그림도 있었다.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며 바로 옆 창영초등학교로 향했다. 



 창영초등학교는 1907년에 개교했으며 3.1 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창영초등학교 내에 총동창회에서 세운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있고 이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역사적 의미가 보통이 아닌 곳임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건물같이 보이기보다는 유적지를 보는 것처럼 외관이 아름다웠다. 고정관념 속 초등학교와는 약간 다른 이미지를 풍겼다. 

 창영초등학교까지 왔으면 이제 반 정도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줍깅을 하면서 걸었기에 운동효과도 배가되어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다시 힘내서 걸어 나갔다.



 리본을 따라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배다리 헌책방거리이다. 길을 따라 쌓여있는 헌책들을 구경했다. 이 헌책방거리는 꽤 자주 와서 익숙했는데, 줍깅을 하며 돌아보니 낯섦을 느꼈다. 익숙하다 느껴졌던 것들이 관점을 달리하니 이리도 다르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대로변을 중심으로 봤을 때는 쓰레기가 거의 없어 깨끗해 보였지만 거리 구석구석을 자세히 보니 쓰레기가 많아 열심히 주워 담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올랐다. 겉으로는 멋져 보이는 오래된 골목이지만, 그 속은 세월을 머금은 만큼 고스란한 아픔을 가진 듯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인 둘레길, 그리고 함께하는 줍깅. 다음 행선지는 송현근린공원이다. 그다음 행선지인 수도국산 박물관이 바로 옆에 있었다. 공원 안에는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 에너지를 충전하기 좋은 곳이었다. 정리된 자연풍경을 보며 힐링을 느꼈지만, 곳곳에 쓰레기가 너무 많이 보여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운동하고 걷는 것은 좋지만 길거리에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자연이 아프다는 말이 딱 맞는 곳이었다. 자연과 쓰레기가 대비되어 다른 길거리보다 이곳 공원에서 속상함을 더욱더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종착지인 동인천역을 마지막으로 투어를 마쳤다. 텅텅 빈 쓰레기 봉지가 언제 다 찰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꽉 차게 되어 놀랐다. 이번 줍깅을 하면서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몸소 체감했다. 꽉 찬 쓰레기를 버리고 나니, 나의 무거운 걱정, 근심도 버려진 듯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환경을 지키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작은 부분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약 2시간의 코스를 줍깅과 함께하니 3시간 가까이 걸렸다. 하지만 그만큼 뿌듯함도 배가 되었다. 

 봉사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천 둘레길 11코스를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길거리에 쓰레기는 절대 버리지 맙시다. 제발!



ⓒ로컬스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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