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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완짹슨 Apr 13. 2021

결국 '나홀로' 떠난 여행

처음부터 원해서떠난 건아니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늦은 나이에 시작한 여행은 나의 30대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25살 되던 해 생애 처음으로 여권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한국을 떠날 수 있었고, 30대를 몇 개월 앞둔 29살 여름에 비로소 유럽에 발을 디뎠다. 그것을 계기로 이듬해에는 유럽에서 반년 정도를 보내며 아프리카 오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아시아 주요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했고 그러다 우연히 가게 된 대만에서는 무려 5년을 더 머물렀으니 내 30대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 셈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는 첫 해외여행과 첫 유럽 여행 사이에 있었던 '나 홀로 일본 여행' 이야기 즉 내가 30대의 절반 이상을 외국에서 버틸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서 적고자 한다.



혼자서 여행을 가야만 했던 이유.

내가 혼자서 여행을 가게 된 이유는 단순하게도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였다. 이렇게 말하면 "친구도 없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사실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 준 계기 또한 친구가 선물로 준 크루즈 티켓 때문이었다. 친구는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본인이 일하는 곳에서 상여금 대신 받았다는 '부산 - 오사카를 오가는 크루즈 티켓' 2장을 내게 주었다. 먹는 것도 아닌 것이 유효 기간은 짧았기에 나는 다가오는 여름휴가에 오사카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나는 여행 전까지 같이 갈 사람을 찾지 못했다.

<저가 항공이 없던 시절, 부산과 오사카를 오가는 크루즈의 여름은 만석이었다>

부산 국제 여객선 터미널에서 오후 3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9시에 도착하는 즉 배에서 1박을 하는 일정이었지만 배 안에서는 식사도 나오고 작은 선상 파티도 즐길 수 있는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는 공간이었다. 내가 머무른 디럭스 룸의 당시 가격은 2인실 기준 80만 원(이걸 혼자 써야만 해서 속이 쓰렸다)이었다. 친구 덕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에서 잠을 자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나 홀로 여행에서 얻은 것들

칠흑같이 어둡던 창문 밖 풍경은 어느덧 하얀 햇살이 반겨주었고 배는 어느덧 일본 해역으로 진입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여행 일정이 시작된 것인데 지하철은 어찌어찌 탔지만 숙소를 찾는 것부터 난관의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말 그대로 오는 길을 알려주는 설명서 하나만 가지고 2시간 정도를 헤맨 끝에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습한 날씨가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숙소 사장님이 내어주는 시원한 보리차 한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낯선 땅에서 나는 첫 번째 미션을 해낸 것이다! 혼자이기에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시작했지만 그것은 점점 '묘한 설렘'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온전히 혼자였기에 용기를 내야만 했고 그래야만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한 장이면 충분한 지하철 티켓을 세장 끊었다가 바디랭귀지로 환불받기도 하고, 늦은 밤 지하철이 끊겨서 중간에 1시간 정도를 길을 묻고 물어 겨우 숙소에 도착을 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지는 않았기에 간혹 외국인으로서 서운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혼자서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들을 계속 극복하면서 느끼는 쾌감 속에 그 정도는 문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행을 다녀온 후의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나는 분명히 달라졌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로 말이다. 눈으로 보기에는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내 삶 곳곳에서 나타나는 태도와 삶을 대하는 자세들까지.

<나라현에 유적지에서 만난 축구부, 감독으로 보이는 분에게 바디랭귀지로 부탁을 했더니 한 번에 집합을 시켜주었다>


P.S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들의 다양한 사연

당시에는 혼자 여행을 하는 한국인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나 보다. 내가 머물던 한인 민박에서 같은 방을 사용하던 분들이 혼자 여행 중이라는 내게 호기심을 보였고 그런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었는데 알고 보니 각자의 사연들이 있었다.


첫 번째 분은 사귄 지 얼마 안 된 여자 친구와 여행을 왔는데 자기는 유적지 답사를 가고 싶은데, 여자 친구는 쇼핑을 하고 싶어 해서 싸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분은 같이 온 일행이었는데 유니버설 스튜디오까지 들어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막상 안에서 타고 싶은 놀이기구가 달라서 싸웠다고 한다. 하나를 타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보니 더운 날에 짜증이 날 수밖에. 두 남자는 서로 씻으러 간 사이에 돌아가면서 나를 찾아와서 똑같은 이야기를 풀어놓고 갔다. (속으로 왠지 내가 승리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난 오늘 나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다 했다' 뭐 이런 거)  

<오사카에서 머물렀던 한인 숙소, 방 하나에 4 ~ 5명 정도가 대충 이불 깔고 자는 그런 곳이다>

여행 속에서 의견이 어긋나 발생하는 다툼은 동성과 이성의 구분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처음 본 내게 속상한 마음을 풀어놓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에 혼자 여행 중인 나를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였기에, 나는 그들에게 혼자 온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굳이 그들의 환상을 깰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는 늘 혼자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여행을 떠날 때, 더 이상 누군가를 찾지 않게 되었다

여행 이후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혼자여도 괜찮아'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내 삶 전체에도 큰 변화를 끼쳤다. 이전의 나는 혼자이길 싫어했던 것 같다. 주말에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소외받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혼자 영화를 보면 쓸쓸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을 했다. 생각해 보면 같이 봐도 어차피 영화만 볼 텐데 말이다. 웃지 못할 과정이야 어찌 되었던 '혼자 떠난 여행' 은 그런 것들을 내려놓게 만들어 주었다. 그 이후로 대부분의 여행은 늘 혼자였음은 물론이다. 그 이후로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걷고 혼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생활들이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 속에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여행 중간중간 새로운 사람들과 가까워질 기회가 많은 것이 큰 장점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지도를 들고 헤매고 있을 때 누가 도와주거나 사진을 찍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면서 생기는 상황들이다.

"여행하면서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어요?" 라고 물어본 분이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누군가 다가오길 기다리기보다 먼저 다가가라고 말이다. 상대도 똑같이 가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인연은 나의 용기에서 비롯된다."

<한국으로 돌아가던 크루즈 안에서 만난 일본 친구들, 말 한마디 통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밤새 같이 맥주를 마셨다>


그래도 가끔은 혼자여서 아쉬울 때가 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처음으로 아쉬웠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건 필리핀 세부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보홀섬'에서 나 홀로 조용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발견한 조용한 해변가를 거닐며 주변에 아무도 없는 분위기를 즐기면서도 나는 동시에 약간의 이 순간을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인간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혼자이면 외로움을 느끼는 사회성을 가진 동물이 아닐까.



<나 홀로 여행에 대한 나의 고찰>

결과적으로 혼자 간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몰랐기에 중요한 문장 몇 개만 한글 발음으로 옮겨 적어서 필요할 때마다 지나가는 현지인들을 붙잡고 물어보고는 했다. 지금이야 휴대폰만 있으면 사전에 알아둔 맛집을 찾아가고 여행 중에 문제가 생기면 관련 후기를 검색해서 해결하지만 당시에는 전적으로 현지에 모든 사람과 사물에 의지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었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의 용기들이 지금의 나를 완성시킨 것이라 믿고 있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었던 경험들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도 '글쎄'라고 답하고 싶다. 왜냐하면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그렇게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안 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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