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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완짹슨 May 13. 2021

대한민국 부자가 오늘도 침묵하는 이유.

이유는간단하다.' 할말이 없으니까'

오랜만에 서울보다 북한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친척형을 만났다. 

그렇게 멀지 않았음에도 오랜만에 만난 우리의 대화에는 잠시의 쉼도 없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가족들의 안부로까지 이어졌고 나는 문득 궁금함을 참지 못 하고 질문을 던졌다.  


"형은 이모부(형의 아버지)와 하고 대화 자주 해요?" 

형은 갑자기 수다스러운 모습을 감추더니 짧게 한마디 뱉었다. 


"아니".. 

나는 곧바로 따지듯이 물었다. 

"왜요?" 형? 

나는 정말이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아는 형은 수다쟁이였고 남일에 참견도 좋아해서 할 말이 항상 많은 사람이고, 내가 기억하는 이모부는 항상 친근함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러나 형의 답변은 내 예상을 훨씬 빗나가 버렸다. 

그럼에도 너무 공감이 되어서 나의 배를 아프게 만드는 답변이었다. 

반박할 틈이 없는 간단명료한 답변이었다. 

 

'할 말이 없으니까'



나는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던 이유는 심각하게 공감이 되어서였지만 왠지 모를 안도감 또한 느꼈다. 

왜냐하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운전을 하고 있던 형의 뒷모습이 갑자기 든든하게 느껴졌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형은 이제 내 편이야')


가끔 아버지와 대화를 할 때 같은 공간 속 다른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동감' 이 생각난다. 나와 아버지는 같은 공간에 거리상으로는 그 누구보다 가까이 있지만 대화의 간격은 그 누구보다 멀게 느껴지기 때가 있다. 어쩌면 할 말은 많음에도 '할 말이 없으니까'라는 한마디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가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할 말이 없는 것이 대화가 없는 이유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할 말이 많음에도 어색해서 혹은 괜히 말 꺼내서 '잔소리나 들을까 봐'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그럴까? 적어도 나한테 혼나거나 잔소리 들을 위치는 아니신 분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또한 내가 어렵고 어색한 걸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때로는 침묵이 '그나마 평화는 유지하는구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가끔 평화라는 핑계로 침묵하는 시간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처음엔 어색하더라도 '안부라도 묻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라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오랜만에 만나면 습관처럼 "잘 지냈어?" 라며 안부로 대화를 시작하고는 한다. 

우리 부자도 대화의 시작은 남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문제는 그 대화가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시작이 곧 종료이고 끝이다. 정말이지, 할 말이 많지만 참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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