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機? 결국엔 기계일 뿐.
얼마 전 휴대폰 하나로 단순 번역을 넘어서 한국어를 말 하면 실시간으로 원하는 언어로 번역이 되어서 전달되는 기능을 보면서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에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은 그저 드디어 상상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구나. 그 날이 언제 오려나? 하고 바쁜 하루를 살아가던 중 '짠!' 하고 나타났을 뿐이다.
특히나 AI와 이세돌의 대국을 기점으로 인공지능이 보여준 기술의 발전은 더 이상 놀라움을 넘어서 두려움을 느끼게 해 줄 정도였다. 허나 우리는 이를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 되어 버렸다. 다시 말 해서 이제는 그 어떤 새로운 기술과 기능의 경험이 놀라움보다는 빠르게 적용하고 활용할지 고민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은 내가 태어난 1984년에도 이미 빠르게 바뀌고 있었고, 내가 초등 교육을 받던 학교에서도 로봇, 자동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었던 터였다. 그리고 현재는 그때와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은행 창구에서 돈을 찾는 사람은 없으며, 가게에 들어가면 사람보다 키오스크를 찾아서 주문을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종이 교과서가 사라지고 있다. 물론 종이 교과서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또한 자녀 유무와 관계없이 종이 교과서가 사라지는 것에 부정적인 1인이다)
그리고 내가 우려하는 분야? 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언어' 라는 영역이다.
나는 지금도 인간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물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자연 생태계 국립공원 같은 이 영역은 바로'언어의 영역' 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기에 내 말이 맞다. 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외국에서 모국어 대신 외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면서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 ‘제 아무리 기술의 혁명이라고 할지라도 바로 이 언어 영역’ 대해서 느낀 점을 글로 옮겨 본다.
사실 언어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대화는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이면서 많은 것을 해결 할 수 있다. 가까운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제한적인 시간 속에서 빠른 설득도 대화를 통과해야 한다.
대화의 사전적 의미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음. 또는 그 이야기” 라고 정의 되어 있다. 이 말은 즉 혼자서는 대화라는 상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와의 대화? 도 가능은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것은 언어가 없이 생각만으로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언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언어라는 녀석이 종류가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힌디어 그 외 그 안에 다양한 부족들이 사용하는 토속어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스위스의 경우는 공용어로 4개 언어가 존재해서 서로 다른 지역 친인척이 만나면 언어가 달라서 서로 대화가 안 된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이처럼 언어가 다르면 어려운 점이 무척이나 많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 많은 한국 사람들은 해외 여행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을 언어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 했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스마트 폰 하나면 가벼운 의사 소통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적어도 여행객들에게는 말이다.
나는 지난 2번의 글 속에서 꾸준히 외국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언어의 중요성을 언급해 왔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무리 번역 기능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기기에만 의존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핫도그 3개' 번역기로 주문하는데 번역기의 답변은 엉뚱하게도 'Hot Dog World' 였다. 한국의 예능 프로에서 여행을 하면서 실제로 발생했던 상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3개” 가 “세계” 로 음성 인식 되어 발생하는 번역기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래도 여행객들에게는 나름대로 추억이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이야기의 대상을 정하자면 해외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번역기 사용은 대화라는 사전적 정의의 본질과 괴리감이 있는 행위이다. 왜냐고? 대화는 사람과 사람이 맞대는 행위이다. 즉, 교감이 이루어지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 사이에 기계가 자리를 하고 있으면 제대로 된 교감이 있을 수 없다. 또한 대화 도중에 번역기를 입력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대화의 흐름은 쉽게 끊기기 마련이다.
타지에서 작은 한식당 하나를 운영 하더라도 직원들과의 교감은 중요하다. 교감이 없으면 직원들은 떠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이지만 두 번째 이유는 사회에서 무리 안에 속하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인데 그 감정을 느끼지 못 한다면 당연히 새로운 무리를 찾아 떠날 수 밖에 없다. 그 감정(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이기도 하다.
직원 관리가 안 되면 해외 창업은 실패 할 확율이 높다. 중국어를 잘 하고 못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한국말도 소위 달변가가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하지만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말을 잘 해서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면 사실 생활 중국어만 익혀도 괜찮다. (이 말은 생활 언어만 할 줄 알면 생기는 문제점을 언급한 지난 글과 위배되는 내용이지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단 이 단계까지만이라도 올 수 있도록 노력 하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어를 진짜 잘 하신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구글 번역기를 사전처럼 이용하시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 대만에서 10년을 살아도 완벽하지는 않구나. 번역이나 사전의 기능이 필요로 하구나 싶었다. 어쩌면 번역기의 탄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번역기는 이전에 사용하던 전자 사전의 업그레이드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단어의 의미만 해석이 되었다면 지금은 단어를 연결하며 나름의 문장까지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다. 내 말은 번역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용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것에 의존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번역기는 대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번역기를 통한 대화는 의사 전달을 위한 방법일뿐이다. 결코 대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