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향수병일까? 외로움일까?
지난해 겨울 친동생이 결혼을 했다. 한 살 터울인 동생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나에게 “형이 가야 나도 가지” 라면서 부모님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역할을 해 오더니 어느 날 뜬금없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행님 내 결혼한데이”
싱글 라이프를 즐기던 나에게 동생이 나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것 같아서 괜한 죄책감을 느껴 왔기에 동생의 소식을 듣던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싶으면서도 부담과 걱정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번에 밀려왔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해야 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형으로서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은(현실은 결혼식 당일 날까지 할 일이 없었지만) 생각과 해외 살이를 하면서 자유롭게 하고 다니던 묶음 머리였다. 한국의 결혼식 문화를 고려하면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노란색 묶음 머리를 결혼식에서 그것도 하객이 아닌 친형으로서 민폐가 아닐 수 없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동생 결혼식이 끝난 후에? 3년 가까이 지켜오던 사랑하는 나의 묶음 머리를 다 밀어 버렸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냐고?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결혼식 날짜를 확정하고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은 약 3개월. 나는 한국을 떠나 살고 있었기에 그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카카오 톡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서 동생의 결혼식 준비를 지켜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동생과 당시 미래의 제수씨는 대만에서 방송 및 유튜브 활동을 하는 나의 입장을 고려하여 머리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게 해 주었고 오히려 해외 생활을 응원해 주었다. 모든 것이 훈훈했다.
- 결혼식을 3일 전 -
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한국으로 입국했다. 뭔가 도울 것이 없을까 싶어서 일찍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할 일이 없었다.
- 결혼식 당일 -
결혼식 당일 나의 친동생이 진짜로 결혼을 한다. 입장을 앞둔 동생이 행복한 표정으로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동생이 입장을 할 때 나는 눈물이 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이건 질투의 감정이 아니었다. 어릴 때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고 원수처럼 지내던 동생이라는 이름보다는 평생의 짝을 만나서 새로운 가정의 가장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이때까지는 꽤 감동적이었다)
- 결혼식 이후 -
동생 결혼식이 끝난 후에 동생 신혼여행 후에 가족끼리 식사도 할 겸 한국에 좀 더 머무르며 2019년 새해를 한국에서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비가 오면 조금 춥기는 하지만 일 년 내내 봄, 여름, 가을 하지만 겨울은 거의 없는 이 곳. 하지만 내 마음 한편은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1년 중에서 며칠 정도는 감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처럼 이 또한 그런 감기처럼 잠시 나를 괴롭히다 곧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쉽게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누군가가 와서 이 녀석을 밀어내야만 떠날 것만 같았다. 외로움일까? 아니면, 알콩달콩 행복해 보이는 새신랑 동생에 대한 부러움일까? 더 이상 가족이 아닌 약간은 남이 된 듯한 느낌을 주는 씁쓸함일까? 뭔가 답답한 마음에 또다시 항공권을 검색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좀 나아질 것만 같았지만 여행은 더 큰 숙제만 내게 남겨 주었다. 아니, 이제 여행이 재미 없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문득 다시 한국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게 살 땐 비행기 타면 3시간이면 닿는 거리를 1년 넘게도 안 들어가고 살았던 나의 조국 한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결혼이 결혼을 한지 불과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 원인 -
혹시 이런 게 향수병이라는 것일까?라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전에 이런 증상이 전혀 없었기에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향수병은 질병이라고 하기도 어렵기에 병원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히 어딘가 아픈데 그 증상을 알 수가 없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답답한 증상을 호소하면 그 순간에는 좀 괜찮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알 수 없는 우울함이 나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마도 이거는 향수병이다. 다만 향수병의 원인이 친동생의 결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사실 내 멋대로 결론을 내리긴 했는데 향수병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서 사전 검색을 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시름을 병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중국어로는 鄕愁病이다. 처음에는 진짜 향수가 들어있는 용기를 나타내는 한자어 香水甁이 검색이 되었다. 나는 고향이 그리운 걸까? 지속적인 싱글 라이트와 친동생의 결혼이 맞물려 찾아온 부러운 감정일까? 만약에 후자라면 이걸 향수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해결 방안 -
첫번째, 일단 1주일의 휴가를 얻어 냈다. (대만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휴가를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를 다녀오고 가족들과 밥을 같이 먹으면 좀 나아질까? 다음 글의 주제는 향수병? 극복 후기로 글을 쓸 수 있을까?
두번째, 그렇다. 예상들 했겠지만 나는 미용실로 가서 애지 중지 관리하던 머리를 다 밀어버렸다. 당분간은 신경 쓸 일이 하나 줄어든 셈이다.
마무리
이번 글은 내가 실제로 겪고 있는 상황을 가감 없이 글로 옮겼다. 한국 나이로 30살이 된 이후로 중간중간 한국에 머물렀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해외에 머물렀다. 짧게는 1주일부터 몇 개월, 몇 년씩 말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냐고 묻는 인도를 떠날때는 귀임에 대한 기쁨보다는 더 이상 인도 카레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고 대만에서의 4년을 돌이켜 보면 늘 바쁘게 살아왔기에 다른 감정을 느낄 여유도 없었던 거 같다.
오히려, 누군가가 마음 약해지는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늘 독하게 말하고는 했다. ‘그렇게 마음 약한 소리 할 거면 한국에서 살아라’ 고 말이다. 문득 그 모든 나의 생각들이 미안함이 밀려왔다.
비로소 내가 겪고 나서야 상대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해외 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있게 마련인 듯하다. 비록 한국이 싫어서. 그게 이유일지라도 말이다. 어느 날 떡볶이가 먹고 싶고 짜장면이 먹고 싶다면 그것 또한 향수병이 아닐까? 근데 이번에는 단순히 짜장면이 먹고 싶은 것 이상의 감정이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조금은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놈의 향수병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으면 해외 거주를 말리고 싶다. 이거 생각보다 힘들더라. 그래도 향수병은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포기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