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드라마를 보는 일이 없어졌다. 나이를 먹어가고 세상이 좋아짐에 따라 꼭 TV가 아니더라도 할 것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그게 주 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천성이 게으른 나에게 매번 드라마 시간에 맞춰서 TV를 켜는 일 자체가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비현실적인 등장인물들의 예상되는 전개와 결말이었다.
게다가 2013년 이후로는 한국에 있었던 시간이 거의 없었고, 그 나라의 '사회적 이슈' 혹은 '드라마'를 보는 것이 현지인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중요했기에 한국 드라마는 필수적인 요소에서 멀어져만 갔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흘러 2020년 4월 8일 나는 길고 길었던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입국을 하였고 동시에 자가 격리 대상자에 포함이 되어서 14일간 집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던 그때. 나는 오랜만에 한국에서 TV를 실컷 볼 기회가 생겨버렸다. 최근 7 ~8 년동안 한국에 안 온 것은 아니었지만 짧게 체류하는 기간에 TV를 볼 여유도 없었고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지 못해 영혼 없이 채널을 돌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드라마를 안 볼 것은 형님? 께서 슬기로운 자가 격리를 위해서 추천해 준 드마라가 2편 있었는데 바로 "스토브리그"와 "이태원 클라쓰"였다. 다행인 사실은 2개의 드라마 모두 무료 시청 LIST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 드라마에 빠져 들다.
<스토브리그를 먼저 봐야 했던 이유>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처음에는 '스토브리그'만! 보고 싶었다. 변명을 좀 남기자면 '스토브리그'는 야구를 주제로 하는 내용이라고 짐작이 되었음에 반해 '이태원 클라쓰'는 제목만 보고는 내용이 짐작이 가질 않았다. 게다가 이태원이라는 동네에 대해서 좋지 않은 (언론을 통해 접한 이태원의 이미지는 좋은 점보다 그렇지 못 한 일로 더욱 익숙한 곳이었다) 하지만 스토브 리그를 2일 만에 다 봐버린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또다시 시간뿐이었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고집스러움으로 안 보고 버티고 버티다가 뒤늦게 이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의 방향성이 현재 내가 한국에 온 이유가 비슷했다는 누군가의 한마디가 있었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
<결코 불가능하지 않은 목표 설정>
간혹 남자인데도 남자가 참 멋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번에 두 드라마 속 주인공이 딱 그러했다. 그 이유에는 '백승수와 박새로이의 현실적인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만년 꼴찌팀의 리그 우승과 개인이 대기업과의 비즈니스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목표 말이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이자 내가 응원하는 팀의? 목표이기도 했다. 물론 대한민국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표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선을 정확히 구분하고 있다. "재벌 2세와 우연히 마주쳐서 연인이 되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 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사회 부적격자, 부적응자 캐릭터들의 반전>
사회 부적격 혹은 부적응이라는 기준은 없다. 다만 다수가 어리둥절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건 조금 문제가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속 두 주연 배우는 모두 사회 부적격자 이미지가 짙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지 못해서 걱정스러운 그들이 결국에는 구심점이 되고 원하는 목표를 성취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엔 그들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One team이 되었다. 초반에 보이는 우려스러움을 말끔히 해결한 것이다. (사실 나도 어릴 때는 사회 부적응자? 는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어서 더욱 몰입했던 거 같다)
<독서의 중요성과 악역으로 등장하는 재벌 2세들>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삶의 모든 지혜는 책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주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독서를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 2세들은 잘 생겼는데 성격도 좋은 기존의 이미지들과 상반되는 비교적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악역으로 등장했다는 점도 신선했다.
비슷하지만 엄연히 달랐던 두 사람.
<스토브리그는 협상, 이태원 클라쓰는 전략>
스토브리그에서 선수 영입 과정과 각 역할에 맞는 인재들을 채용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드라마이기에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기에 결말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들은 현실 속에 어떻게 대입할 수 있을지 사고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다시 보기 시청이 가능했기에 놓친 부분은 다시 돌려보면서 드라마에서 학습 효과를 얻기도 했다.
예를 들면 구단 운영팀은 부족한 예산으로 최고의 영입을 위해서 기존에 스타 트레이너에게는 꿈과 명예를 위하여!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생활하는 투수 코치에게는 현실보다는 만족할 만한 연봉을 제시하며 팀을 꾸려 나가는 점들이다. 그 외에도 선수 트레이너 협상 등등 스토브리그는 비니지스 관점에서 관찰하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드라마였다. 그에 반해 이태원 클라쓰는 협상보다는 전략적인 관점에서 관찰할 것이 많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협상'과 '전략'이라는 이 두 단어들은 자석처럼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늘 함께 공존해야 한다. 협상을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고 전략을 위해서 협상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백승수가 한겨울의 빙하 같았다면 박새로이는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둘이 만난다면 결국 빙하는 태양에 의해 녹고 말 것이다.
<이태원 클라쓰에는 있지만 스토브리그에는 없던 것>
눈치 빠른 분들이라면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Love line, Some 이런 것들을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 아셨을 것이다. 물론 이태원 클라쓰에는 도저히 풀리지 않은 것 같은 실처럼 얽히고 얽힌 캐릭터들의 감정들이 사실 뒤로 갈수록 보는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했다(어랏, 그저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그에 반해 스토브리그는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결국에는 없었던 그 외에 이야기들에 좀 더 집중했었다.
<스토브리그에는 자주 있었지만 이태원 클라쓰에는 자주 없었던 것>
이 또한 이미 예측한 분들이 계실 수도 있는데 내 시각에서 비교가 되었던 것은 바로 PPL(간접 광고)이었다. 스토브리그에서는 수 없는 PPL이 대 놓고 등장한다. 선수들 보양식은 늘 '홍삼'이었고 모임 장소는 늘 '특정 브랜드가 노출되는 곱창집'이었다. 그 외에 크고 작은 PPL까지 꽤나 많이 등장했다. 반대로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내가 눈치 채지 못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PPL이 적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PPL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대 놓고 아니 고의 차이일 뿐.
두 영화가 내게 남긴 것들.
<백승수가 현실주의자라면 박새로이는 이상주의자>
나는 앞서 백승수를 한 겨울의 빙하 박새로이를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라고 표현을 했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사상으로 분류한다면 '백승수는 현실 주의자이라면 박새로이는 이상주의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게 둘 중 하나의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나는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듯하다.
현실주의자가 되고 싶은 이상주의랄까?
- 불 필요하면 해고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넓게는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
- 자신의 생각을 누구보다 믿지만 동시에 자기의 사람을 믿는 사람.
- 비즈니스는 돈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열정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돈을 가졌을 때
할 수 있는 거라고 믿는 사람.
- 나는 무엇이든 잘 해낼 자신이 있지만 더 큰 비즈니스 성공을 위해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훗날 기대가 되는 리더의 모습 즉,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이다>
한국 드라마를 안 봤던 이유
1. tv가 없었던 대만의 집들.
대만에서 5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거주하면서 도합 9번의 이사를 했었는데 이 중에 집에 tv가 있는 집은 절반도 채 안 되었다. 대부분의 집에는 tv가 없다 보니 나중에는 tv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더라도 실제로는 거의 켜는 일이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나는 tv 대신 노트북을 켜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2. 언어 학습을 위한 '대만 드라마' 시청
대만 아니 해외 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아니 기본적인 것은 그 나라의 모국어라고 이 전 글에서도 수차례 언급했듯이 나 역시 현실에서 제일 중요하고 급한 녀석은 언어 학습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한국 드라마 혹은 예능 시청은 독이 든 달콤한 칵테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tv를 볼 시간이 있으면 항상 그 시간을 대만 드라마 시청에 투자했다. 게다가 드라마로 언어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반복 시청이 중요했으므로 노트북에 저장(아직도 있음)을 해 두고 반복 학습을 했는데 그 드라마가 대만에서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한국에서는 '너를 사랑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아가능불회애니 我可能不會愛你'였다.
아가능불회애니를 직역하자면 '나는 아마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인데 결과론에 초점을 둔 제목이고 한국 제목의 경우는 현재에 초점을 두고 있다. 결국은 같은 말인 듯하다.
3. 드라마니까 가능했던 '비 현실적 소재'
이것은 나의 고정관념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번에 내가 소위 정주행 했던 한국 드라마가 나의 퀴퀴 묵은 생각으로부터 탈피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내가 어릴 적 챙겨봤던 드라마들은 대게 그러했다. '가을 동화, 파리의 연인, 천국의 계단, 그리고 눈사람 등등'
사랑 이야기는 나름 현실에 투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잘생기고 성격 좋은 재벌 2세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절대 현실에 투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게다가 드라마 '눈사람'의 소재는 현실에서는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도 남을 설정이었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단순히 대리 만족만을 위해서 드라마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 이전의 나의 모습이었다.
4. 한류 속에서 한글을 가르치던 사람이기에
앞서 말 한 비 현실적인 드라마 내용들은 대만 친구들에게도 크나큰 환상을 심어준 듯하다. 대만에서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한국 드라마의 경우. 그 시초는 대장금이었고 최근 5년을 기준으로 보자면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이 있다.
그래서 대만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것들은 대만에서는 한국 드라마 때문에 어린 친구들이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에게 식스팩(복근)을 보여달라거나? 한국 남자에 대한 이미지를 드라마를 통해서 학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돌 가수들의 경우 대부분 마르고 하얗고 뽀송뽀송하다던지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그나마 희미한 형태만 남아 있는 복근뿐이다.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였을까. 사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대만에서 소위 한국 드라마 덕분에 혜택 아닌 혜택을 봤으면서도 나에게 한국 드라마는 사실 멀리하고픈 대상이기도 했다. 뻔한 내용에 비현실적인 허구에 대리 만족을 느낄 시간에 대만 드라마 보고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드라마를 보기 전부터 나도 모르게 편견이 자리 잡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위 덕질을 안 하겠다고 다짐했던 나의 주변 여자 친구들이 BTS 덕질에 푹 빠진 것을 보면서 느꼈다. 좋으면 그냥 좋다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이전에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 것처럼 그때의 드라마와 지금의 드라마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