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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완짹슨 May 01. 2020

대만과 한국, 두 번의 자가 격리

그 두 번째 이야기. <인천공항에서 부산까지> 

대만과 한국에서 각각 14일씩 총 28일. 어쩌면 나에게 2020년은 한 달이 적은 11개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가 격리하는 한 달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무엇인가에 미쳐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기엔 내 마음이 다소 허무하기 때문이다. 자의적으로 사회와 단절한 채 지내는 것과 타의적으로 지내는 것은 심리적인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우리는 시간이 있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시간이 많으면 대게는 나태해진다. 


생산에 대한 압박 '즉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입장에서 최소한의 목표는 아무 일 없이 자가 격리를 끝내는 것이었고 추가적으로 이 시간들을 달력에서 사라져 버린 죽은 시간으로 보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가 격리는 10점 만점에 7점 정도를 주고 싶다. 일단 나라에서 요구하는 기준에는 부합했으니 절반은 해낸 셈이다. 그러나 시간 활용 부분에 대해서는 글쎄다.


대만에서는 14일간 세 권의 책을 읽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아직 한 권을 채 못 넘기지 못했다. 아무래도 시야에 들어오는 TV 영향이 컸던 탓이다. 한동안 글쓰기에 집중을 못 하다가 저녁에 TV를 켰는데 한국에서 매주 일요일 저녁 꼬박꼬박 시청하던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가 금요일 저녁으로 이동하여 방영 중이었다. 몇 년 만에 시청하게 된 개그 콘서트는 나를 다시 책상으로 이끌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번 기회에 푹 좀 쉬어라'라고 말이다. 하지만 "쉼" 이란 무언가를 열심히 한 후에 보상으로 주어 졌을 때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는 시간까지 끊임없는 "쉼"은 우리가 아는 쉼이 아니다. 손을 뻗으면 리모컨이 바로 잡히고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이 넘쳐 나고 전화 한 통에 모든 것이 다 되는 한국에서 자가 격리는 그저 게을러져 가는 나를 쉼 없이 지켜볼 뿐이다.


물론 이 시기에 나의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아서 조심스럽기는 하다. 이 시기에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가까이는 학원 수업이 없는 동생과 소비와 없어서 팔리지 않는 농작물들을 보면서 속상해하는 부모님. 그리고 멀리는 손님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전국의 수많은 소상공인 사장님들, 열심히 사회에 구성원으로 살아가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린 수많은 직장인들에게도 이 시간은 똑같이 힘들 것이다.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들고는 군대를 전역한 남자들끼리 술자리에서 자기 군부대가 제일 힘들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뿐이지만 나는 그래도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속 이야기들과 공항에서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에 대한 뒷 이야기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몰라도 되는 내용이지만 혹시나 궁금하다면 스크롤을 계속 내려주기를 바란다.



오늘의 이야기는 지난번에 다루었던 이야기의 후속 편이기도 하지만 끝은 아니다. 이번 이야기는 3편에 나누어서 기고 할 예정이다.


https://brunch.co.kr/@kingka840625/31

'대만과 한국, 두 번의 자가 격리' 이야기의 후속 편 첫 번째 이야기는

지난번에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인천 공항에서 부산에 오기까지')를 숨김 없이 풀어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전 세계 입국자를 대상으로 의무 격리를 실시하던 4월 1일부터 대만발 한국 비행기는 하루에 딱 1편 만이 있었다. 나라마다 차이점이 있겠지만 한인이 그렇게 많지 않고 한국으로 가기엔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대만에서 전세기를 띄울 이유도 없었고 전세기를 탈 사람도 없었다.


대만 출발 한국 항공권은 편도 기준으로 약 45만 원 전후였다. 저가 항공 편도가 10만 원 전후임을 고려하면 무척이나 비싼 가격이다. 일부 한국분들은 어차피 승객도 없는 비행기에 왜 이렇게 비싸냐고들 하시는데 사실 1일 1편으로 사실상 경쟁사가 없는 상황이고 양국이 의무 격리를 하는 상황에서 출국을 하는 분들은 단순 여행이 아니라 꼭 떠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의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일정을 미루거나 변경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즉, 떠나는 자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출발 당일>

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 직행은 1시간 4편에서 2편으로 줄어들었지만 내가 탑승한 칸에서 내린 승객은 나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나를 제외한 2명은 짐도 없을 것을 보아서 다른 일로 공항에 온 듯했다. 공항 내 식당에는 일부 손님들이 있었지만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발권을 하고 출국 심사를 마치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공항 내부는 밝았지만 고요했다. 일부 구역은 이 시기에 공사를 하기도 했고 공항 내 면제점은 운영은 하고 있었지만 직원들은 나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해 보였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금방 도착한 게이트 내에는 나 말고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혹시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했지만 나 같은 처지(꼭 출국을 해야 하는)에 놓인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전체 승객은 9명 정도 되었던 거 같다. 특이했던 건 서양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도 있었다는 것이다.


탑승객이 적어서 비행기도 작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3-4-3 배열의 큰 비행기였다. 게다가 기내 승무원이 승객수와 비슷한 정도로 대기 중이었다. 승무원 수와 승객수가 거의 비슷해서였을까? 생각보다 할 일이 없는 그들은 텅텅 비어있는 짐칸을 수차례 확인할 뿐이었다. 몇 년 만에 기내식이 무료로 제공되는 국적기를 탑승했지만 기내식은 항공사 유니폼 위에 노란색 봉투로 무장하고 고글과 마스크를 착용한 어느 한 승무원분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는 황토색종이 봉투를 주었는데 군고구마가 들어있을 것 같은 봉투 안에는 작은 빵 몇 개와 물이 들어 있었다. 사실 이 상황에서 기내식에 대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문제는 오후 약 4시에 비행기에서 먹었던 작은 빵 몇 개가 이날 섭취한 마지막 음식물이 될 줄이야.



<인천 공항 도착>

예상 비행시간은 2시간 30분이었지만 이륙한 지 예정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다. 비행기 시동이 꺼지는 소리? 가 들리고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표시등이 사라졌을 때 수십 명이 동시에 일어나서 가방을 꺼내고 앞자리 승객이 나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몸이 편하게 기내를 빠져나간 건 처음이다.

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비행기를 벗어나 입국 수속을 하기도 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검사관들의 하얀 방호복은 무거운 마음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더해 주었다. 적막이 감돌았지만 구수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그렇구나. 여기가 나의 조국 한국이구나.



<집까지 꼬박 8시간 소요, 부산행>

대만 시간으로 오후 3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한국 시간으로 오후 6시경에 도착을 했다. 시차로 인해 발생하는 1시간을 제외하면 비행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다. 미국 유럽에서 오는 사람들에 비하면 승객도 없는 비행기에서 편하게 온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공항 내에서는 자가 격리 어플을 설치하고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한 후에 3일 이내에 보건소로 가야 한다는 답변을 받고 나왔다. 기다릴 것도 없이 이미 대기 중이던 수화물을 챙긴 후에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흰색 방호복을 입은 분들은 잊을만하면 어딘가에서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버스(KTX 광명역으로 가는)가 오는 곳으로 대기를 하였다. 출국장은 예상대로 한산했지만 알 수 없는 삼엄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마지막 방문이 2019년 11월 약 5개월 전인데 오랜만에 들리는 구수한 한국어들이 이 곳이 한국이 맞기는 했지만 내 입가를 맴도는 공기는 차가웠다. 국내선 비행기를 탑승하면 1시간 만에 부산에 도착을 할 수 있었지만 4월 1일부터 입국자들은 선택권이 없었다. 그저 정해진대로 움직여야만 했다.


저녁 7시 티켓 구매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한 채 광명역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을 했다. 운전기사님의 복장도 하얀 방호복이었다. 왠지 이 버스를 타면 어디론가 끌려가는 건 아닐까? 실험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그런 복장이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광명역에 도착해서 깨 달았다.  


광명역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티켓은 인터넷에서 사전 발권도 불가능했고 철도 회원의 할인 대상에도 미포함이었다. 나는 부산에 구포역에서 내리고 싶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편도 티켓 57,000원과 버스 티켓 12,000원을 함께 결재했다. 국내선 비행기보다 비싼 KTX 요금에 놀랐지만 더 놀라게 한 것은 기차 시간이었다. 버스가 광명역에 도착한 시간은 약 7시 40분이었는데 다음 기차는 9시 46분이라고 들었다. 순간 나는 시차 때문에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 2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지만 좁은 대합실에서는 앉을자리도 부족했다. 비행기가 일찍 도착해서 좋았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어떤 아저씨는 현장 직원분과 고성이 오고 가기도 했는데 워낙 조용했던 터라 의도치 않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저씨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되었지만 담당 직원은 도와줄 힘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조용히 하기로 했다.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달라지는 것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어 보였다. 입국자에 대한 여론은 그저 좀 과장해서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로 비칠 뿐이었다.


밤 8시가 넘어가자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지만 먹을 것. 아니 먹으러 갈 수가 없었다. 정해진 공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무료함과 추위에 화장실을 오고 갔지만 먹은 것이 없으니 나올 것도 없었다. 작은 자판기가 있었지만 과자가 들어있는 헬륨 봉지와 배고픔에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은 탄산음료 몇 개 있었다. 자판기 옆에 전자레인지가 있었지만 데워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추워서 점점 떨리는 나의 다리나 좀 데웠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2시간 동안 먹을 것이 마실 것도 없이 기다렸다.


사실 이때부터 화가 나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곳의 직원들에게 엄한 화풀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 또한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일을 하는 직원일 테고 혹은 자발적인 마음으로 해외 입국자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해외 입국자들에 대한 싸늘한 여론 때문에 나의 불만은 대중들에게 물어 뜯기기 좋은 싸구려 고기 덩어리 같은 존재였다.

계획에 없던 대기여서였을까? 나의 순진한 생각과 다르게 2시간은 무척이나 더디게만 흘러갔지만 그래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 법이다.



<부산행 KTX 탑승> 

9시 46분에 탑승한 입국자 전용칸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아까 대합실부터 느낀 것이지만, 제주도에서 폭설이 내려서 갇혀 계시던 분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기차는 출발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앉지 못했다.

아무래도 다들 큰 마음먹고 들어오는 길이었기 때문에 짐들이 많았지만 공간은 한정적이었고 대부분의 짐은 무거워서 위쪽 수납대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결국 의자의 절반과 통로는 크나큰 가방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이 상황을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여주고 싶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린 후 물 한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해 지친 상태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입국자들의 표정들도 지쳐 있었다. 기차 안은 또다시 적막감만 감돌았다. 몇 칸 건너의 한숨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나마 나는 비행시간이 2시간 남짓이었지만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오신 분들은 장거리 비행과 시차로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다음날 0시 17분 부산역 도착, 그리고 합승 택시> 

9시 46분에 광명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말 많은 오송역을 시작으로 김천, 경주, 울산 등 대부분의 역을 정차한 후 밤 12시가 넘어서 부산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곳도 방역복을 입은 분들이 대기 중이셨고 이들의 안내로 또다시 몇 가지 서류를 반복적으로 작성한 후에 이번에는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간단하지만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긴 솜 막대기를 코에 넣고 입에도 한번(물론 다른 녀석으로) 넣었다. 검사 결과는 기다려 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청정 국가 대만에서 왔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큰 걱정은 않았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시간이 늦었기에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온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택시를 타야만 했는데 부산의 경우는 시에서 운영하는 두리발(장애인 전용 택시)이 대기 중이었다. 일반 승용차가 아닌 스타렉스 같은 승합차량이었고 뒤에는 휠체어를 옮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 많은 귀국짐들을 넣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걸 나 혼자서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권역 사람들과 합승하는 형태였다. 택시 탑승자는 나를 포함해서 총 3명이었다. 차량이 출발한 후에 나는 자연스럽게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질문에 다들 힘 없이. 아니요.라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다들 너무나 지친 기색이 역력해서 더 많은 질문을 하기도 미안했다.


나는 3명 중에 중간에 앉았는데 양쪽에는 미국에서부터 20시간째 마스크를 못 벗고 있는 남자분과 중동에서 오신 여자분이셨다. 사실 이 상황이 다소 당황스럽지는 했지만 시에서 정한 규정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요금 제도> 

다들 같은 권역이었지만 세부 주소지는 달랐기에 우리는 각자의 목적지를 이야기했는데 기사님이 길을 잘 모르시는 듯하였다. 우리는 중동에서 도착하신 여성분을 내려드린 후 내가 내리는 순서로 합의를 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여성분이 하차할 때는 택시비로 약 15,000원이 나왔는데 나 보고는 23,000원을 달라 늘 것이었다. 나와 미국에서 오신 남자분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예?라고 외쳤더니 그 사이에 1,000원이 내려간다.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입국자는 무슨 말을 해도 욕을 먹을 것만 같아서 참았지만 나는 결국 화가 폭발했다. 그때가 새벽 2시였다.


탑승할 때는 본인은 시에서 선발된 인원이고 택시비는 규정에 의해서 받는다더니 그런 규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까 여성분이 내린 곳에서 요금을 합산? 해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그럴 거면 조금 이기적으로 생각해서 나부터 내렸을지도 모른다. 화가 폭발했지만 몇천 원 때문에 그나마 남은 힘조차 빼기 싫어서 22,000원을 결재하고 집에 오기는 했지만 기분은 찝찝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몇천 원 때문에 말이다.


인천 공항에서 부산 집까지 도착하는데 약 8시간이 소요되었다. 시간도 비용도 몇 배로 소요되었지만 안전하게 집에 도착을 했다. 이제 후반전 시작이다. 한국에서 자가 격리 14일!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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