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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완짹슨 May 30. 2020

서울 '건대입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부산 남자의 두 번째 서울 살이. '그런데 말입니다'

4월 8일에 입국하여 부산 집에서 자가 격리를 끝낸 후 서울로 올라온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서울이라는 大도시의 경이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에서 적응 중이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지난 5년이라는 대만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시간을 상쇄시키기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아직 가봐야 할 곳도 많고 먹어봐야 할 것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도 담아 내지 못 해 서랍장에 쌓여 있는 대만 이야기들까지. 


2014년 11월 마지막 날. 짧았던 첫 서울살이를 하면서 살았던 방을 정리하고 대만에서 사용할 짐들을 보내던 날이다. 그때 이후로 나에게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그대로 멈춰 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대만에서 나름의 성장을 했을지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그저 한국말을 좀 하는 외국인이 한국을 가끔 여행 오는 기분 그런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말 바쁘게 대만 생활이 이어질 때는 비행기 타면 2시간 만에 도착하는 한국을 1년 넘게 못 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을 억지로라도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사건이 있었는데 대구에서 살고 있는 가까운 지인과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지인이 계산을 하겠다며 꺼낸 것은 다름 아닌 휴대폰이었다. 그리고 그 휴대폰을 기기에 갖다 대니 결재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순간 3초 정도 얼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던 지인은 웃으면서 "이제 대만 현지인 다 됐네"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그때 내가 보고 놀랜 시스템은 지금은 보편화된 삼성 페이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한동안 정체되어도 괜찮을 정도로 발전한 2020년에 이런 소리를 하면 좀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눈 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환경 시스템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나름 뉴스를 보면서 한국의 동향을 예의 주시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한국을 전혀 모르는 한국인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만에서 외식업을 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한국을 모른다는 것은 심히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변화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면 외식업도 한국어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나는 한국에 1년에 2번 이상은 방문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중 한 번은 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1 ~ 2일이라도 머문 다음에 고향 부산으로 가곤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혼동스러웠다.

한 가지에 익숙해질 찰나에 다시 한국을 찾으면 한국은 이미 저 멀리 앞서 나가고 있었다. 이건 경쟁에서 밀리는 느낌과는 다른 것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즉,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내가 5년이 넘는 대만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다른 이유들은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목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020년, 나는 왜 '건대입구역'에서 살고 있을까?>

제목만 봐서는 지하철에서 살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을 갖게 할지도 몰라서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건대 입구역에서 6번 출구로 나오면 연결되는 '양꼬치 거리'가 있는데 그쪽에 위치한 주택가 중 한 군데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이 곳에는 내가 전혀 몰랐던 오래되어 보이는 주택들이 많은데 현재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대만에서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집을 구하기는 해야 하는데 사진만 보고 집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부동산 계약서 작성을 하려면 결국엔 한국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시기적(코로나)으로 오고 가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 단기로 거주가 가능한 셰어 하우스 위주로 알아보게 되었고 집을 보지도 않고 건대 주변이라는 이유만으로 6개월 계약에 전자 서명을 했다.


건대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초대형 상권중 한 곳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빠른 트렌드 변화를 매일매일 실시간으로 오가며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입주 계약을 하는데 한몫했다.


사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홍대&신촌에서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셰어 하우스 입주도 고려를 했지만 최종적으로 홍대를 포기하게 된 이유가 있는데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바로 출근 거리였다. 현재 내가 출근하고 있는 지역은 Blue Botttle 1호점 오픈으로도 알려진 HOT한 카페거리가 있는 '성동구 성수동'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건대역에서 성수동까지 걸어서 출근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이전에 서울에서 출근길 지옥철을 경험한 나로서는 홍대보다는 건대였다. 그래서 나는 사진과 위치만 보고 집을 선택하고 말았다. 물론 실제는 사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충분히 한 채로 말이다.



<서울 살이 한 달째에 접어들다>

3월에 입주 예정이었던 집은 4월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입주하게 되었고 시간은 어느덧 한 달 가까이 지나 버렸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이 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우선 집에 대해 평가를 하자면 나쁘지 않다. 우선 회사까지 걸어갈 수 있었기에 시간과 비용(게다가 지옥철 스트레스도 없음)을 절감할 수 있었고 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셰어 하우스였기 때문에 웬만한 살림살이들이 잘 구비되어 있어서 당장 새롭게 살 것들이 많지 않았다. 물론 셰어 하우스라서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들은 이미 대만에서 익숙한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요즘 건 대살 이를 하면서 적응하기 힘든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다.


- 적응 안 되는 생활 속 충격 -

대부분의 시간을 부산에서 생활해 온 탓에 서울은 언제나 낯설게 느껴지곤 했는데 약 7년 전 처음 와 본 건대의 첫인상은 잠시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던 곳이었다. 특히 맛의 거리 입구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네 인 사인들은 한참 동안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 중곡동에서 청담동으로 출근을 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건대는 알게 모르게 익숙한 동네가 되어 버렸고 자세히 보니 술집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대학로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늦은 시간에 맨바닥에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대학생들부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길거리 음식까지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때의 건대는 현재와 많이 다른 듯하다. 물론 빠르게 변화는 것이 한국의 특징이지만 아쉬운 것은 그때의 낭만적이던 모습들은 순식간에 다른 것들로 인해 밀려나고 있었다.


헌데 그때도 문제 기는 했었지만 지금은 진짜 더욱 거대한 사회적 이슈가 되어버린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금연 구역에서 흡연 그리고 버스킹 & 카공족

<건대 입구역 맛의 거리 입구에 있는 청춘 뜨락>  이곳은 비공식 흡연 장소가 된지 오래인 듯하다.

이곳은 지하철역을 나오면 건대 맛의 거리 초입 부분과 연결이 되는 공간인데 평수로 약 80평 정도 되는 야외 공간이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곳은 금연 지정 구역이고 군데군데 금지 표시 말이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자욱한 담배 연기로 가득한 곳이다. 주말 같은 경우에는 겨울에 얼핏 보면 눈이 왔었나?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하얀 담배꽁초로 가득하다. 나는 사람들이 한창 붐비는 이 시간에 이 곳을 지나가다 결국 숨을 참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연기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뱉어대는 침 때문에 코로나를 조심해야 하는 이 시기에 나는 더욱 이 곳을 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다들 술에 취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조심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 곳을 '맛의 거리'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 의미를 상실한 채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듯하다.


<청춘 뜨락, 한쪽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버스킹을 하고 있다. 이게 이곳의 본래 모습이다>

하루는 웬일로 깨끗한 거리를 보고 놀랬었는데 알고 보니 흡연 단속반 분들이 계셔서 가능했다. 두 분으로 구성된 단속반은 누군가가 흡연을 하고 있으면 경고를 주는 형태(실제로는 벌금 10만 원)로 관리를 하셨다. 하지만 이 마저도 단속반이 퇴근하시는 밤 10시 이후부터는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건대에서 밤 10시는 청춘들에게 이제 시작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이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에서 흡연 장소로 바뀌는 것이다. 사진 왼쪽 상단에 보이는 버스킹 하는 친구들은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흘려보낸 담배 연기를 마셔야만 한다. (한때는 나도 흡연자로서 담배 필 곳이 부족한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이 되기에 집단 속에서 정해진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개인의 권리는 '이기적'이라는 형태로 변질되고 만다.  


게다가 사진에는 없지만 비가 오는 날은 비를 피해서 건물 안쪽 혹은 문 쪽으로 붙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의 담배 연기와 대화 소리는 건물 1층 안으로 다 들어오게 된다.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이 적응이 되지 않아서 때마침 지구대에서 순경으로 근무를 하는 아는 동생을 만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흡연 문제는 이미 손대기도 어려울 정도이고 사실은 버스킹이 더 문제예요. 버스킹의 경우 구청의 허가를 받기 때문에 청춘 뜨락이라는 장소에서 노래를 하는 것은 괜찮지만 문제는 구청에서 허가만 해 줄 뿐이지. 소음이나 시간에 대한 규제가 없어요. 그래서 가끔 버스킹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주변 거주자들의 민원이 자주 들어오는데 구청에서 허가는 내주었고 세부 규정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중간에서 어려워요"


구청에서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지만 구청은 경찰의 수차례 건의에도 여전히 묵묵 부담이라고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우리가 아는 상식 선에서 조심하는 것이다. 금연 구역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고 거리에서는 상대방에게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충분하고 허락된 공간에서 시간이 늦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정리를 하는 것이 옳다. 우리 인생에서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인 것은 맞지만 어디 인생이 오늘이 마지막은 아닌데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중국 단체 관광객들 때문에 시끄럽다는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서 들었던 기억들이 문득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한번 뒤돌아 볼 필요는 있을 듯하다)


사실 내가 불편하고 적응이 안 되는 그것은 단순히 담배 연기로 느끼는 신체적 고통이 아니다. 담배 연기 이외에도 개개인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 너무나 적응이 안 된다. 이기주의가 점점 심해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싶다.  


그 외에도 건대 스타벅스 매장에서 전공 서적과 노트북을 올려놓고 자리를 비운 지 한 시간 넘게 나타나지 않았던 비매너 대학생들은 서울에 온 첫날 새로운 생활의 시작으로 설레던 나의 기대를 깨 놓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평소에 스타벅스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서울에 온 첫날에 스타벅스 사용권이 생겨서 지인과 방문을 했었는데 내가 앉아 있던 자리 옆에는 1시간이 넘게 비워져 있었는데 1층에 있는 직원들도 별 다른 대처가 없는 것을 보면 흡연 단속반 아주머니들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건대 주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100% 건대생들은 아니겠지만 이곳의 연령대가 20대가 많고 대학생들의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현재 셰어 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식구들 중에 건대 학생들도 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건국대학교의 일원이 된 자부심들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부심을 느끼기에는 너무 부끄러울법한 모습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도 건대가 좋은 점>

그래도 나는 건대를 쉽게 떠나지 못할 듯하다.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지나는 이곳은 서울의 웬만한 곳을 금방 갈 수 있고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생활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다양한 상점과 맛있는 식당들이 있다. 게다가 나의 일터는 걸어서 금방 도착하는 거리에 있으니 아직은 떠날 생각을 함부로 못 하고 있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조금만 걸어서 나가면 언제든지 한강변을 달릴 수 있으니 가끔 스트레스받으면 한강을 실컷 달리고 오면 될 터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건대? 아 거긴 어쩔 수 없어" , "대학교 쪽은 다 그래" 사실 나의 대학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도 흡연자였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도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의 생각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리다면 나는 이 이야기를 멈추려고 한다. 처음부터 큰 변화를 기대하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나의 새로운 생활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에 대해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단지 오늘은 안 좋은 이야기가 좀 더 부각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오늘 이후로 서로를 위한 배려가 무엇이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만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면 누군가의 작은 변화라도 그렇게 조금씩 자연스럽게 나아질 수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할 것 같다. 반대로 내가 이 거친 상황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라면 그 또한 괜찮다. 나는 그것이 개인이 집단에 녹아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집단에 녹아드는 게 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한국이 낯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마치려고 한다. 걸어서 출근을 하고 트렌드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이 곳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한국 뉴스에서 보던 사회적 인식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동시에 경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브런치에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나도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부족하고 가끔은 진상 같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누가 잘했고 못 했고를 나누는 의도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고 있고 세대별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 달라서 세대 간 오해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말아야 하는 것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건 바로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도덕책에서 배운 아주 간단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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