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가장 가까운 '독서실' 이야기
2021년 10월. 코로나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르던 시기, 과감하게 독서실을 인수하였지만 곧이어 찾아온 12월은 너무나도 추웠다. 날씨도 지독하리만큼 추웠지만, 더 큰 문제는 점점 줄어드는 매출이었다. 수능은 지난달에 끝났고, 성인들의 공무원 시험붐도 꺼져가는 터였다. 초반에 자리 잡는 시기라며 어느 정도 예상 했지만 등록 문의 한건 없는 날이 길어질 때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개의치 않고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가끔 크리스피 도넛이 1+1 행사할 때면 20km 떨어진 지점(북한 근처? 여서 그런지 몰라도, 그 흔한 맥도널드도 없다)까지 가서 사 온 도넛으로 소소한 파티를 열면서 내실을 다지기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현재 공부하는 회원님들의 불편함이 없게끔 하도록 집중했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면 난방을 켜고, 밤이 되면.
틈틈이 전단지를 돌렸다.
물론 전단지를 돌린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들이 공부를 계획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들의 방문을 기다리며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사실상 내 인건비는 나오지 않는 수준이었고, 겨울 난방으로 관리비는 10월 대비 2배 가까이 청구되었다. 특히, 춥기로 유명한 파주에서 히터나 난방은 쉼 없이 돌아가야 했다.
돌이켜 보면 '이곳의 겨울은 늘 한 박자 빠르게 다가왔고, 반대로 가장 늦게 떠나가는 곳'이었다.
많은 변수들이 나를 기운 빠지게 한 채로. 그 해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1월 1일
새해 첫날, 어느 때처럼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거리는 거센 바람이 피부를 쉼 없이 괴롭혔지만 도시를 벗어나 느껴지는 적막함과 평화로움 사이. 문득,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하늘 아래 조금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잠시마나 북한과 가장 인접한 이곳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거친 삶 사이로 되려 마음의 휴식을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한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날을 즐길 여유도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새해 첫날, 예상대로 모든 자리가 불이 꺼져 있었지만, 오직 한 곳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루에 몇 번 마주치는 것이 전부였지만 알게 모르게 내적 친밀감이 생겨난 걸까? 나는 속으로 반가움을 표한 후. 조용히 열람실 문을 열어 내부 온도를 피부로 확인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생각했다.
"아, 다행히 따뜻해"
이내 다른 열람실들도 난방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새해 첫날이라서 많이 안 올 거라고 예상하면서도,
"누군가 들어왔을 때 부랴 부랴 난방을 켜는 모습보다는, 들어왔을 때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고정비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집을 나오기까지 근심 가득과 마음의 노력이 필요했을 회원들에게, 이곳만큼은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엇보다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첫날부터 인상 찌푸려지는 일이 없길 바라며.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여전히 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오랜만에 벨소리가 들렸다. 새해 들어 첫 등록 문의는,
이제 고2가 되는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남학생이었다. 어린 친구였지만 나는 친근한 반말보다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 듯 존대를 해가며 안내부터 등록까지 마쳤고 다음날은 어머니도 시설을 둘러보고 가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신규 등록한 남학생은 어느 날 놀부와 흥부에 등장하는 제비처럼, 학교 친구들을 한두 명씩 데려오기 시작했고, 적막감이 감돌던 독서실에 오랜만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원장님, 저 잘했죠?"라고. 마음 같아서는 안아주고 싶었지만 VIP 고객에게 함부로 할 수 없어서 속으로만 연신 소리를 질러댈 따름이었다.
파주의 겨울. 날씨는 여전히 추웠지만 내 마음속 겨울은 그렇게 아주 조금씩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