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의문의 벨소리
독서실을 등록하는 회원들의 결재 패턴을 보면, 성인들은 보통 1개월 단위가 많은 편이다. 물론 3개월씩 등록하면서 소소하지만 할인의 혜택을 누리는 분들도 있고, 가끔이지만 큰 마음을 먹고 365일을 한 번에 등록하시는 회원님들도 계셨다.
반대로 학생들의 경우는 고3을 제외하면 시험 기간에 맞춰 등록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1주일에서 2주일권 등록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종종 하루만 등록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보통은' 친구를 따라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친구의 유혹? 에 함께 왔지만, 이후에 생각이 바뀌어 연장을 하는 경우도 있기에 나는 늘 최선을 다해서 모셨다. (1일권 고객을 소홀히 하는 것은 혼밥 손님을 내쫓는 식당과 다를 바 없지 않나!)
밤 11시에 '벨 소리'
하루는 어느 때처럼 퇴근 준비를 하는데 벨소리가 들렸다. (늦은 시간 벨소리는 반가움보다 오싹함이 밀려들었다) 밖을 나가보니 웬 남학생이 한 명 서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공부할 복장? 은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서울로 가는 지하철이 끊겨서... 갈 곳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찜질방도 찾아본 듯한데. (당시에 코로나 사태로 영업을 중지한 터) 결국 여기까지 온 듯하다. 나 또한 이곳이 종점이라 막차가 일찍 끊기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그는 청춘답게 엄동설한에 얇은 코트 한 벌만을 입고 있었고, 온몸은 이미 추위로 얼어 있는 듯했다. 이 상황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매정하게 내 보낼 수도 없었다.
결국 그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조건부 수락을 하기로 했다. 때마침 남자 회원 열람실 하나가 비어있었고 그곳의 문을 열어주며, 밤 사이 '절대 나오지 말 것과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것'을 당부했다. 물론 열람실마다 CCTV가 있었기에, 독서실을 나선 후에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했다. 어두운 열람실 안으로 미세한 휴대폰 불빛만이 보였고, 그 불빛마저 이내 꺼지는 것을 확인하며 나 또한 안도하기로 했다.
그리고 '담요와 바닥 난방'을 최대로 틀어주고 나왔다. '기왕 베푸는 거 확실하게!'라는 마음으로.
다음날
CCTV로 확인을 하였음에도 두 눈으로 직접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 부랴 부랴 아침 걸음을 거들었다. 다행히 그가 머물고 떠난 자리에 별 다른 흔적은 없었다. 무릎 담요는 곱게 개어있었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수밖에 없는 비밀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별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던 찰나. 이번에는 벨 소리 대신 모르는 사람으로 카톡이 왔다. '어제 그 청년이었다.' 그는 정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편의점에서 교환이 가능한 쿠폰을 하나 보내주었다. (1,000원짜리 크런치였는데, 문득 나의 20살 시절이 떠 올랐다.)
아참, 어제 그 학생에게 1일권 요금은 받았냐고?
글쎄, 받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할까? 받았던 사실을 더 불편한 마음을 품은 채 살아갈까?
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나는 둘 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돈을 받지 않아서 아쉽지도 않았고, 받은 적이 없으니 딱히 불편한 마음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베푼 호의에 그 또한 나와의 약속을 잘 지켜주어서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돈을 받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가 공부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이 공간을 그에게 베푼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번에 같은 일이 생길 경우에는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이후로 똑같은 일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