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부제: 미꾸라지가 강물을 흐리기만 할까? 꼰대가 과연 악영향만 끼치는 걸까?
우리나라 말 중에 ‘미꾸라지 같이 잘도 빠져나가네’라는 말이 있다.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나 죄를 받아야 할 상황에서, 야비하고 비열하게 빠져나가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최근에 법의 교묘한 사각지대를 이용해 빠져나가는 모 정치인을 비하한 ‘법꾸라지’라는 말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생각만 해도 얄밉고, 화가 치밀고, 애꿎은 미꾸라지가 미워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미꾸라지에 쓰인 오명은 또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라는 속담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 바닥의 진흙을 헤집어 강물을 흐리게 만든다는 뜻으로, 한 개인의 말과 행동이 집단에 피해를 주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미꾸라지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사실 미꾸라지가 진흙을 헤집으며 몸을 숨기는 이유는 물이 너무 맑으면 황새 눈에 잘 띄어서 잡아 먹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미꾸라지도 살아야 하기에 오늘도 진흙탕에 몸을 숨기고 강물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물을 헤집고 다니는 미꾸라지 덕분에 물에 산소를 공급해 주고, 그 덕분에 바닥에 고인물이 썩지 않고 맑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미꾸라지에게 쓰인 오명은 ‘미꾸라지 같이 잘 빠져나가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도랑물을 흐리네’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몸보신을 하기 위해 추어탕은 그렇게 맛있게 먹으면서, 미꾸라지라는 단어에는 좋은 이미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프레임에 갇힌 생각의 오류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사회적으로 어떤 프레임이 강력하게 형성되면, 그 이면의 것을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다.
물론 프레임은 사회를 바라보고, 효율적으로 해석하는 좋은 수단이 되어준다. 하지만, 문제시하고 경계해야 할 부분은 그 프레임을 아무 비판의식이나 문제의식 없이 확대 재생산하다 보면 , 사람의 생각이 그 안에 갇히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것은 프레임이 아닌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된다. 나는 그런 관점에서 지금 시대 꼰대를 바라본다. 세상에 수많은 선배들이 있고, 상사들이 있고, 저마다의 개별적인 특징이 있는데, 그걸 그냥 ‘꼰대는 저래’, '꼰대 같네’라고 프레임을 넘어서는 사회적인 편견을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물론 진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강물을 흐리듯이, 몇 명의 특급 꼰대들이 회사 분위기를 망치고, 지금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꼰대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선배들을 향한 '확증편향'이 더해지면서 꼰대 프레임은 공고한 성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선배가 되고자 노력하는 이 시대 선한 상사들도 무슨 말만 하면 '꼰대 소리 하고 있네'라는 뭇매를 맞아야 한다. 분명 선배로서 상사로서 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 데도, ‘꼰대네’, ‘꼰대 소리하네’라고 몰아세우는 후배들의 시선에 오늘도 할 말을 못 하고 속으로만 삼킬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꼰무새로 빙의하여 선배들을 노려보는 후배들의 시선에 이 시대 상사나 선배들은 더 이상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잃어버리게 된다. 말 한마디 하는 것으로 ‘꼰대’라는 오명을 쓰는 세상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이 하고 싶을까?
*꼰무새 (꼰대+앵무새) : 인터넷 은어로 나에게 조금만 뭐라고 해도 ‘꼰대네’라고 비난하며 앵무새처럼 반복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
미꾸라지는 강물을 흐리기도 하지만, 그 미꾸라지가 없으면 강물은 썩을 수도 있다. 때론 꼰대의 잔소리가 내 기분을 상하게 하고 내 마음을 흐리게도 하지만, 어쩌면 그 쓴소리가 내게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고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무조건 ‘꼰대네’, ‘꼰대 같네’, ‘꼰대 소리’라고 선을 그어 놓고 생각하지 말자. 조금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꼰대가 아닌 선배, 멘토로 내 성장을 견인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신입사원 교육을 할 때마다 다양한 기업의 신입사원들을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창의적이고, 열정적이고,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저마다의 개성이 또렷하다. 한 마디로 광산에서 발굴한 원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만들어갈 회사의 미래가 기대되기도 한다. 다만 원석에서 보석이 되고, 귀금속이 되어 세상을 빛내기 까지는 위해서는 세공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간 선배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선배들이, 상사들이 진짜 어른이 되고 좋은 꼰대가 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겠지만,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무비판적으로 꼰대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는 요즘 세대들의 노력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낀대#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