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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했지?'가 아니라 '내가 제대로 설명한 거니?’

상대에게 설명하는 언어

by 갓기획

어느 날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앞에 미팅이 끝나지 않았는지 커피숍 귀퉁이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여튼 시간관념 하나는 제대로 없는 놈이다. 이럴 거면 천천히 오라고 할 것이지, 왜 빨리 오라고 한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어디서 기다려야 하나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나를 발견한 친구가 다급하게 손짓을 하며 자기 옆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딱히 앉을자리도 없기에, 잠시 친구 옆에 앉아 듣지 않아도 될 친구와 상철 씨의 대화를 들어본다.


상철 씨는 친구의 후배 또는 멘티 정도 되는 관계 같다. 친구가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업무를 전달한다. 약 20분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설명이 끝나고, 친구가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상철아. 이해했지? 다 알아들었지?”


상철 씨는 약간 당황하는 것 같더니, 곧 대답을 하고 자리를 일어선다.


“넵… 일단 제가 한번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다급하게 상철 씨가 자리를 떠나고, 인사 대신 내가 친구에게 따지듯이 묻는다.


“야 저게 다 알아들은 표정이냐? 난 아무리 봐도 ‘네 말이 뭔 말인지 모르겠소’ 하는 표정이라고 생각 하는데...”


“야 ‘넵’이라고 했잖아. ‘넵’은 강한 확신의 표현 아니냐?”


“야 요즘 다 ‘넵넵넵’ 해. 오죽하면 ‘넵 병’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러냐? 그럼 어쩌냐? 다시 불러? 에잇..하다가 모르면 다시 전화하겠지?”


친구는 그렇게 성급하게 마무리를 하고 우리 이야기로 대화를 돌리려고 했지만, 내가 그걸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네가 일부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 네가 ‘이해했지?’라고 말하는 순간 상철 씨는 일종의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꼈을 거야. 네 말속에 '나는 제대로 설명했으니 그걸 이해 못하면 네가 바보'라는 식의 전제가 깔려있거든. 그 이해의 책임 때문에 ‘아니오.’,’ 모르겠는데요 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지. 특히 네가 다그치듯이 몰아세우 듯이 말하고, 게다가 전혀 모르는 제삼자까지 앉아 있는데 모른다고 하기가 쉽지 않았을 걸?


친구가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또다시 뭔가를 갈구하는 눈빛을 보내온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되라는 표정으로 해답을 구해온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가 명쾌한 해답을 전한 바 있다. 김경일 교수는 한 칼럼에서 인칭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이해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설명의 책임을 내가 지는 방식이다. "내 설명이 확실한 거야?" 혹은 "내가 명확하게 설명을 한 것입니까?" 등으로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책임의 무게를 덜 지게 되면서 조금은 더 쉽게 부담 없이 ‘아니오, 한번 더 설명해주세요’라고 질문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다. 왠 또 호들갑인가 했더니, 친구가 신기한 일을 발견했다며 끝도 없는 이야기를 전해온다.


“야 진짜 신기한 게 뭔지 알아? 생각해 보니까 내가 강의를 하면서 뭔가 설명을 끝내고 사람들 한테 ‘이해했죠? 알아들었죠?’라고 물으면 한 명도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거든. 근데 표정을 보면 다 모르겠다는 표정인 거야. 그래서 항상 궁금했어. 저게 알았다는 거야 모르겠다는 거야. 한마디로 얼굴과 말이 따로 놀고 있는 거지. 근데 네가 알려준 데로 말을 좀 바꿔봤어. '제가 제대로 설명한 건가요? 제가 충분히 알아듣게 설명한 건가요?' 그러니까 신기하게 그때부터 한 두 명씩 손을 들고 좀 더 설명해 달라고 이야기하더라고. 한 번 더 설명해야 하니까 내가 힘들기는 한데, 뭔가 제대로 강의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더라. 고맙다 친구야.


내심 내 얘기를 잘 듣고 실천에 옮겨준 친구가 대견하고 고맙기는 하지만, 아직 갈길이 뭔 친구 놈에게 칭찬은 금물이다.


“네가 나한테 고마운 게 한 두 가지냐.”


사람은 기본적으로 말을 할 때 ‘나는 잘 설명했고 이제 다음은 니 책임이야’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내가 설명한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것이라는 지식의 저주가 발동한다. 그러나 개떡은 어디까지나 개떡일 뿐이다. 찰떡같이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 마지막 말 한마디만 바꿔보자.


'이해했지'가 아니라 '내가 잘 설명한 거니?'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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