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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소중한 무엇이다.

by 갓기획


사회에서 상호 관계를 특정 짓는 논리 중에 [갑을 논리]가 있다. 주로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갑’의 위치에 서고 그 반대가 ‘을’이 된다. 둘의 관계는 ‘주종(主從)’까지는 아니더라도 알게 모르게 ‘을’은 ‘갑’의 지배를 받거나 ‘갑’의 언행에 영향을 받고, 끌려갈 수밖에 없다.


소위 금수저나 탁월한 능력이 있지 않는 이상, 직장인이나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우 ‘을’로서의 삶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상사에게 ‘을’이고, 발주처에 ‘을’이며, 고객이나 민원인들에게 ‘을’이다. 예전에는 후배들에게나마 ‘갑’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나마도 쉽지 않다.


‘을’로서의 삶은 고단하다. 내 주장이나 의견은 무시당하기 일쑤고, ‘갑’의 주장에 언제나 예스로 화답하며 자존심을 구겨야 한다. 내 기분이나 감정보다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하다. 물론 세상 모든 관계에 ‘갑’과 ‘을’의 이분적인 논리가 통용되지는 않지만, 대부분 ‘을’로서 가지는 울분(?)을 쌓으며 삶을 살아간다.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할 곳도 딱히 없으니, 쌓이고 쌓여서 화병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이런 울분이 한방에 폭발하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우리가 절대적으로 ‘갑’의 지위를 누리는 순간이다.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을 때, 또는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다. 자연스레 ‘을’로 빙의하여 우리를 대하는 판매/서비스 직원 앞에 알게 모르게 ‘갑’으로서의 우월감이 자리 잡는다. 이런 우월감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컴플레인을 하기 위해 상담원들과 통화를 하는 순간이다.


물론 저 세상 인성을 가진 훌륭한 분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불만이 있어 전화를 하기 때문에, 화내는 것은 기본이요, 막말은 덤이며, 욕설까지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게다가 비대면 상황이나 보니 말 그대로 ‘안면몰수’하고 ‘안하무인’으로 상담원을 대하는 경우도 잦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상담원들은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사회적으로도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여러 가지 제도가 마련되었다. 기업 자체적으로도 여러 가지 자구책을 강구하였다. 그중 몇 해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음성 안내 멘트를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지금 당신의 전화를 기다리는 우리 회사의 상담원은
우리 회사가 소중히 여기는 직원이자 누군가의 소중한 딸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말이었다. 아니, 고쳐서 다시 쓴다. 솔직히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내 문제를 해결해 줄 도구나, 분풀이 대상으로 생각했을 뿐 상담원을 ‘누군가의 소중한 무언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방 맞은 기분이었고, 그만큼 큰 울림이 있는 멘트였다.


말은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상담원 목소리 뒤로 그를 응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침착하게 감정은 배제하고 이야기한다. 그게 ‘누군가의 소중한 무언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상담원은 우리 감정의 하수구가 아니다. 어느 회사의 직원이며, 누군가의 자부심이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할 권리가 없다. 이 생각을 좀 더 확장시켜 보면, 좀 더 많은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돈만 내면 당연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상점, 음식점 등에서 이용하는 서비스는 돈의 대가로 응당 받아야 할 당연한 몫일까? 동네 김밥집은 돈만 있으면 사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밥집 사장님이 그곳에서 버티고 장사를 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일 아닐까?


경비원은 그저 아파트 주민의 하수인이고, 일방적으로 우리가 이용할 대상일까? 그분이 밤늦은 시간 아파트를 지켜주지 않으면 우리는 과연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까? 그런 분들께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커녕, 요즘 벌어지는 행태를 보고 있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아니더라도, 그냥 그런 분들께 ‘고맙다’는 생각 한 번쯤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어느 구두 방 아저씨가 붙여 놓은 문구를 보고 안타까운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길을 물어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목적 달성이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행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구둣방 아저씨를 조금은 우습게 보고, 그저 길을 물어보는 수단으로 가볍게 여기고 어쩌면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알게 모르게 누군가 자행한 소소한 갑질에 구둣방 아저씨는 상처를 받은건 아닌지 안타까웠다.


갑질은 꼭 누군가를 폭행하고, 폭언을 하거나, 무시하는 것 만이 아니다. 당연함이 앞서면 고마움을 잊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소한 갑질이 될 수 있다. 당연함 이전에 감사함을 앞세우는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고마운 것만 있다. 그 고마움에는 필연 '누군가'의 노력과 시간이 담보되어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무엇'이다. 그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기대해 본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늘어간다면, 지금의 세상보다는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진 않을까 더 큰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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